전영택, 「화수분」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첫겨울 추운 밤은 고요히 깊어 간다. 뒤뜰 창 바깥에 지나가는 사람 소리도 끊어지고, 이따금 찬바람 부는 소리가 ‘휙― 우수수’ 하고 바깥의 춥고 쓸쓸한 것을 알리면서 사람을 위협하는 듯하다.
“만주노 호야 호오야.”
길게 그리고도 힘없이 외치는 소리가 보지 않아도 추워서 수그리고 웅크리고 가는 듯한 사람이 몹시 처량하고 가엾어 보인다. 어린애들은 모두 잠들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눈에 졸음이 잔뜩 몰려서 입으로만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다. 나는 누워서 손만 내놓아 신문을 들고 소설을 보고, 아내는 이불을 들쓰고 어린애 저고리를 짓고 있다.
“누가 우나?”
일하던 아내가 말하였다.
“아니야요. 그 절름발이가 지나가며 무슨 소리를 지껄이면서 그러나 보아요.”
공부하던 애가 말한다. 우리들은 잠시 그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으나, 다시 각각 그 하던 일을 계속하여 다시 주의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우리는 모두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자다가 꿈결같이 ‘으으으으으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잠깐 잠이 반쯤 깨었으나 다시 잠들었다. 잠이 들려고 하다가 또 깜짝 놀라서 깨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물었다.
“저게 누가 울지 않소?”
“아범이구려.”
나는 벌떡 일어나서 귀를 기울였다. 과연 아범의 우는 소리다. 행랑에 있는 아범의 우는 소리다.
‘어찌하여 우는가. 사나이가 어찌하여 우는가. 자기 시골서 무슨 슬픈 상사의 기별을 받았나? 무슨 원통한 일을 당하였나?’
나는 생각하였다. ‘어이어이’ 느껴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아범이 왜 울까?”
“글쎄요, 왜 울까요?”
<중략>
그 이튿날 아침이다. 마침 일요일이기 때문에 내게는 한가한 틈이 있어서 어멈에게서 그 내용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밤에 아범이 왜 그렇게 울었나?”
하는 아내의 말에 어멈의 대답은 대강 이러하였다.
“어멈이 늘 쌀을 팔러 댕겨서 저 뒤의 [쌀가게] 마누라를 알지요. 그 마누라가 퍽 고맙게 굴어서 이따금 앉아서 이야기도 했어요. 때때로 ‘그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나 지내나’ 하고 물어요. 그럴 적마다 ‘죽지 못해 살지요.’ 하고 아무 말도 아니 했어요. 그러는데 한번은 가니까, 큰애를 누구를 주면 어떠냐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데리고 있다가 먹이면 먹이고 죽이면 죽이고 하지, 제 새끼를 어떻게 남을 줍니까? 그리고 워낙 못생기고 아무 철이 없어서 에미 애비나 기르다가 죽이더라도 남은 못 주어요. 남이 가져갈 게 못 됩니다. 그것을 데려가시는 댁에서는 길러 무엇합니까. 돼지면 잡아나 먹지요.’ 하고 저는 줄 생각도 아니 했어요. 그래도 그 마누라는 ‘어린것이 다 그렇지 어떤가. 어서 좋은 댁에서 달라니 보내게. 잘 길러 시집보내 주신다네. 그리고 젊은이들이 벌어먹고 살아야지. 애 들을 다 데리고 있다가 인제 차차 날도 추워 오는데 모두 한꺼번에 굶어 죽지 말고…….’ 하시면서 여러 말로 대구 권하셔요. 말을 들으니까 그랬으면 좋을 듯도 하기에 ‘그럼 저 희 아범보고 말을 해 보지요.’ 했지요. 그랬더니 그 마누라가 부쩍 달라붙어서 ‘내일 그 댁 마누라가 우리 집으로 오실 터이니 그 애를 데리고 오게.’ 하셔요. 해서 저는 ‘글쎄요.’ 하 고 돌아왔지요. 돌아와서 그날 밤에, 그젯밤이올시다. 그젯밤 아니라 [어제 아침]이올시다. 요새 저는 정신이 하나 없어요. 그래 밤에는 들어와서 반찬 없다고 밥도 안 먹고, 곤해서 쓰러져 자길래 그런 말을 못 하고, 어제 아침에야 그 이야기를 했지요. 그랬더니 ‘내가 아나, 임자 마음대로 하게 그려.’ 그러고 일어서 지게를 지고 나가 버리겠지요. 그러고는 저 혼자서 온종일 이리저리 생각을 해 보았지요. 아무려나 제 자식을 남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어떻게 합니까. 아씨 아시듯이 이제 [새끼 또 하나] 생깁니다그려. 지금도 어려운데 어떻게 둘씩 셋씩 기릅니까. 그래서 차마 발길이 안 나가는 것을 오정 때가 되어서 데리고 갔지요. 짐승 같은 계집애는 아무런 것도 모르고 따라나서요. 앞서 가는 것을 뒤로 보면서 생각을 하니까 어째 마음이 안되었어요.”
하면서 어멈은 울먹울먹한다. 눈물이 핑 돈다.
“그런 것을 데리고 갔더니 참말 알지 못하는 마누라님이 앉아 계셔요. 그 마누라가 이걸 호떡이라 군밤이라 감이라 먹을 것을 사다 주면서 ‘나하고 우리 집에 가 살자. 이쁜 옷도 해 주고 [맛난 밥]도 먹고 좋지, 나하고 가자, 가자.’ 하시니까 이것은 먹기에 미쳐서 대 답도 아니하고 앉았어요.”
이 말을 들을 때에 나는 그 계집애가 우리 마루 끝에 서서 우리 집 어린애가 감 먹는 것 을 바라보다가, 내버린 감꼭지를 쳐다보면서 집어 가지고 나가던 것이 생각났다.
어멈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
“그래, 제가 어쩌나 보려고 ‘그럼 너 저 마님 따라가 살련? 나는 집에 갈 터이니.’ 했더니 저는 본체만체하고 머리를 끄덕끄덕해요. 그래도 미심해서 ‘정말 갈 테야, 가서 울지 않을 테야?’ 하니까, 저를 한번 흘끗 노려보더니 ‘그래, 걱정 말고 가요.’ 하겠지요. 하도 어 이가 없어서 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러고 돌아와서 저 혼자 가만히 생각하니까, 아범이 또 무어라고 할는지 몰라 어째 안 되었어요. 그래, 바삐 아범이 일하러 댕기는 데를 찾아갔지요. 한번 보기나 하랄려고, 염천교 다리로 [남대문통]으로 아무리 찾아야 있어야지요. 몇 시간을 애써 찾아댕기다가 할 수 없이 그 댁으로 도루 갔지요. 갔더니 계집애도 그 마누라도 벌써 떠나가 버렸겠지요. 그 댁 마님 말씀이 저녁 여섯 시 차에 광핸지 광한지로 떠났다고 하셔요. 가시면서 보고 싶으면 설 때에나 와 보고 와 살려면 농사짓고 살라고 하셨대요. 그래 하는 수가 있습니까. 그냥 돌아왔지요. 와서 아무 생각이 없어서 아범 저녁 지어 줄 생각도 아니 하고 공연히 밖에 나가서 왔다 갔다 돌아댕기다가 들어왔지요. 저는 눈물도 안 나요. 그러다가 밤에 아범이 들어왔기에 그 말을 했더니, 아무 말 도 아니 하고 그렇게 통곡을 했답니다. 여북하면 제 자식을 꿈에도 보두 못하던 사람에게 주겠어요. 할 수가 없어서 그렇지요. 집에 두고 굶기는 것보다 나을까 해서 그랬지요. 아 범이 본래는 저렇게는 못살지는 않았답니다. 저희 아버지 살았을 때는 벼 백 석이나 하 고, 삼 형제가 양평 시골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답니다. 이름들도 모두 좋지요. 맏형은 ‘장자’요, 둘째는 ‘거부’요, 아범이 셋짼데 ‘화수분 ’이랍니다. 그런 것이 제가 간 후부터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그리고 맏아들이 죽고 농사 밑천인 소 한 마리를 도적맞고 하더니, 차차 못살게 되기 시작해서 종내 저렇게 거지가 되었답니다. 지금도 시골 큰댁엘 가 면 굶지나 아니할 것을 부끄럽다고 저러고 있지요. 사내 못생긴 건 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아범이 어제 울던 까닭을 알았고, 이때에 나는 비로소 아범의 이름이 ‘화수분’인 것을 알았고, 양평 사람인 줄도 알았다.
어휘 풀이
*화수분: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01 윗글을 통해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① 어멈은 화수분의 외모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다.
② ‘나’는 화수분의 이력을 아내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③ 어멈은 큰애가 싫어하는 것을 달래어 남의 집에 양녀로 보냈다.
④ ‘나’는 밤에 들리는 울음소리가 화수분의 울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⑤ 어멈은 시골 큰댁의 도움을 받으면 생활이 좀 더 여유로울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02 윗글의 어휘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쌀가게]는 가난으로 인해 화수분의 가족이 해체되는 공간이다.
② [어제 아침]은 어멈이 화수분과 큰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다.
③ 어멈은 [새끼 또 하나]로 인해 가정 형편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④ 큰애는 [맛난 밥]을 먹고 싶을 때마다 [쌀가게]를 떠올렸다.
⑤ 화수분은 [남대문통]에서 하는 일로는 [맛난 밥]을 구할 수가 없었다.
03 <보기>는 윗글에 대해 학생들이 탐구한 내용이다. ⓐ~ⓔ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지영 : 나는 시대상에 주목해 봤어.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인 1925년에 발표되었어.
( ⓐ )
영철 : 나는 소재에 주목해 봤어. 서술자의 자식이 ‘내버린 감꼭지’를 화수분의 큰애가 주워 갔잖아.
( ⓑ )
수연 : 나는 서술자의 위치에 주목해 봤어. 서술자가 작품 속에 위치하면서도 사건을 직접 전달하지 않고 어멈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 있어.
( ⓒ )
재곤 : 나는 사건 전개에 주목해 봤어. 화수분이 통곡하는 사건을 먼저 제시하고 통곡의 원인인 큰애를 양녀로 보낸 사건을 제시하고 있잖아.
( ⓓ )
연주 : 나는 인물의 이름에 주목해 봤어. 주인공인 화수분이라는 이름도 특이하지만 그 형들도 장자(長者), 거부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모두 돈이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 ⓔ )
① ⓐ: 아마도 친일을 하며 부자가 된 사람과 하층민 간의 갈등을 보여 주려고 한 것 같아.
② ⓑ: 이 소재를 통해 화수분 가족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환기해 주려고 한 것 같아.
③ ⓒ: 화수분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을 통해 그에 대해 상세한 묘사를 하려고 한 것 같아.
④ ⓓ: 독자의 호기심을 끈 후에 중심 사건을 배치하여 극적 효과를 주려고 한 것 같아.
⑤ ⓔ: 반어적 명명을 통해 가난한 주인공의 처지를 비극적으로 보여 주려고 한 것 같아.
도움자료
[2015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01 전영택, 「화수분」
01 ⑤ 02 ④ 03 ①
이 작품은 일제 강점하 하층민의 가난하고 비극적인 삶과 혈육의 정을 묘사한 단편 소설이다. 1인칭 서술자가 주인공의 행동과 심리를 관찰하여 서술하고 있다. 가난 속에서도 인정을 잃지 않는 화수분의 가족을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 주며 부부의 죽 음 속에서 살아난 아이를 통해 구원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가난한 부부의 비참한 삶과 자식에 대한 사랑
전체 줄거리
‘나’는 행랑채에 살고 있는 화수분의 울음이 가난으로 인해 큰딸을 양녀로 보낸 슬픔 때문임을 알게 된다. 얼마 후 화수분은 형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형을 돕기 위해 양평으로 떠난다. 화수분을 기다리다 못한 어멈도 둘째 딸 옥분을 업고 양평으로 떠난다. 이 무렵 어멈의 편지를 받은 화수분이 서울로 향하다가 높은 고개에서 어멈이 옥분을 안고 떨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이를 껴안고 밤을 지새운 부부는 결국 추위를 이기지 못해 얼어 죽고 부부의 사랑으로 살아난 옥분을 나무장수가 데리고 간다.
01 인물의 심리 파악 ⑤
‘지금도 시골 큰댁엘 가면 굶지나 아니할 것을 부끄럽다고 저러고 있지요.’라는 말을 통해 어멈은 화수분이 가난하게 살면 서도 부끄러움이 많아 형들에게 기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시골 큰댁의 도움을 받으면 생활이 좀 더 여유로울 것이라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① ‘사내 못생긴 건 할 수가 없어요.’라는 부분은 외모가 못났 다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모자라다는 의미이다.
② ‘나’는 화수분의 이력을 어멈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음 을 알 수 있다.
③ ‘그래, 걱정 말고 가요.’라는 부분을 볼 때, 큰애는 양녀로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④ ‘어찌하여 우는가, 사나이가 어찌하여 우는가.’라는 부분을 볼 때, 그 울음소리가 화수분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02 배경과 소재에 대한 이해 ④
‘쌀가게’는 큰애에게 ‘맛난 밥’을 줄 수 있다는 사람을 만나는 곳으로 큰애가 ‘맛난 밥’을 먹고 싶을 때마다 떠올린 곳은 아니다.
① 화수분의 가족은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쌀가게’에서 큰애를 남의 집에 입양을 보내고 있으므로 ‘쌀가게’는 가족이 해체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② ‘어제 아침에야 그 이야기를 했지요.’라는 어멈의 말로 보아 ‘어제 아침’은 어멈이 화수분에게 큰애를 다른 집으로 입양을 보내도 되는지 의견을 물어본 시간이다.
③ 어멈은 또 태어날 아이 때문에 가정 형편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⑤ 화수분은 ‘남대문통’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일으로는 ‘맛 난 밥’을 구할 수가 없어서 큰애를 남의 집에 입양을 보내 게 된 것이다.
03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①
이 글에서 집주인인 ‘나’는 행랑에 사는 화수분 가족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화수분 가족도 ‘나’의 가족과 갈등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화수분 가족이 쌀가게 마누라나 큰애를 양녀로 데려가는 집의 사람과 갈등하는 장면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친일을 하여 부자가 된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친일로 부자가 된 사람과 하층민의 갈등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② 화수분의 큰애는 ‘나’의 자식이 다 먹고 ‘내버린 감꼭지’를 주워 갔다. 이것은 그만큼 화수분의 큰애가 배가 고팠다는 것을 의미하는 사건으로 화수분 가족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③ 화수분이 우는 이유를 독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화수분의 처지와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까지 잘 알고 있는 인물은 어멈뿐이다. 그러므로 서술자는 어멈을 내세워 화수분에 대한 정보를 보다 상세하게 독자에게 전달함으로써 개연성과 신뢰감을 동시에 얻고 있는 것이다.
④ 서술자가 화수분의 울음소리에 대한 궁금증을 제시하며 그 원인을 찾아가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도 화수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사건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⑤ 삼 형제의 이름은 화수분의 처지와 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화수분의 처지가 더욱 비극적으로 제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