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복덕방」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딸이 평양으로 대구로 다니며 지방 순회까지 하여서 제법 돈냥이나 걷힌 것 같으나 연구소를 내느라고 집을 뜯어고친다, 유성기를 사들인다, 교제를 하러 돌아다닌다 하느라고, 더구나 귀찮게만 아는 이 애비를 위해 쓸 돈은 예산에부터 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얘? 낡은 솜이 돼 그런지, 삯바느질이 돼 그런지 바지 솜이 모두 치어서 어떤 덴 홑옷 이야. 암만해두 샤쓸 한 벌 사 입어야겠다.”
하고 딸의 눈치만 보아 오다 한번은 입을 열었더니,
“어련히 인제 사 드릴라구요.”
하고 딸은 대답은 선선하였으나 ㉠샤쓰는 그해 겨울이 다 지나도록 구경도 못 하였다. 샤는커녕 안경다리를 고치겠다고 돈 일 원만 달래도 일 원짜리를 굳이 바꿔다가 오십 전 한 닢만 주었다. 안경은 돈을 좀 주무르던 시절에 장만한 것이라 테만 오륙 원 먹은 것이어서 오십 전만으로 그런 다리는 어림도 없었다. 오십 전짜리 다리도 있지만 살 바에는 조촐한 것을 택하던 초시의 성미라 더구나 면상에서 짝짝이로 드러나는 것을 사기가 싫었다. 차라리 종이 노끈인 채 쓰기로 하고 오십 전은 담뱃값으로 나가고 말았다.
“왜 안경다린 안 고치셨어요?”
딸이 그날 저녁으로 물었다.
“흥…….”
초시는 말은 하지 않았다. 딸은 며칠 뒤에 또 오십 전을 주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아버지 보험료만 해두 한 달에 삼 원 팔십 전씩 나가요.”
하였다. 보험료나 타 먹게 어서 죽어 달라는 소리로도 들리었다.
“그게 내게 상관 있니?”
“아버지 위해 들었지 누구 위해 들었게요, 그럼?”
초시는 ‘정말 날 위해 하는 거문 살아서 한 푼이라두 다우. 죽은 뒤에 내가 알 게 뭐냐.’ 소리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오십 전이문 왜 안경다릴 못 고치세요?”
초시는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아버지가 좋고 낮은 걸 가리실 처지야요?”
그러나 오십 전은 또 마코 값으로 다 나갔다. 이러기를 아마 서너 번째다.
“자식도 소용없어. 더구나 딸자식……. 그저 내 수중에 돈이 있어야…….”
초시는 돈의 긴요성을 날로날로 더욱 심각하게 느끼었다.
“돈만 가지면야 좀 좋은 세상인가!”
심심해서 운동 삼아 좀 나다녀 보면 거리마다 짓느니 고층 건축들이요 동네마다 느느니 그림 같은 문화 주택들이다.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물에서 갓 튀어나온 메기처럼 미끈미끈한 자동차가 등덜미에서 소리를 꽥 지른다. 돌아다보면 운전수는 눈을 부릅떴고 그 뒤에는 금시곗줄이 번쩍거리는, 살진 중년 신사가 빙그레 웃고 앉았는 것이었다.
“예순이 낼모레…… 젠장할 것.”
초시는 늙어 가는 것이 원통하였다. 어떻게 해서나 더 늙기 전에 적게 돈 만 원이라도 붙들어 가지고 내 손으로 다시 한번 이 세상과 교섭해 보고 싶었다.
<중략>
초시는 이날 저녁에 박희완 영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딸에게 하였다. 실패는 했을지라도 그래도 십수 년을 상업계에서 논 안 초시라 출자를 권유하는 수작만은 딸이 듣기에도 딴사람인 듯 놀라웠다. 딸은 즉석에서는 가부를 말하지 않았으나 그의 머릿속에서도 이내 잊혀지지는 않았던지 다음 날 아침에는, 딸 편이 먼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었고, 초시가 박희완 영감에게 묻던 이상으로 지지콜콜히 캐어물었다. 그러면 초시는 또 박희완 영감 이상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듯 소상히 설명하였고 일 년 안에 청장을 하더라도 최소한도로 오십 배 이상의 순이익이 날 것이라 장담 장담하였다.
딸은 솔깃했다. 사흘 안에 연구소 집을 어느 신탁 회사에 넣고 삼천 원을 돌리기로 하였다. 초시는 금시발복이나 된 듯 뛰고 싶게 기뻤다.
“서 참의 이놈, 날 은근히 멸시했것다. 내 굳이 널 시켜 네 집보다 난 집을 살 테다. 네깟 놈이 천생 가쾌지 별거냐…….”
그러나 신탁 회사에서 돈이 되는 날은 웬 처음 보는 청년 하나가 초시의 앞을 가리며 나타났다. 그는 딸의 청년이었다. 딸은 아버지의 손에 단 일 전도 넣지 않았고 꼭 그 청년이 나서 돈을 쓰며 처리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팩 나오는 노염을 참을 수가 없었으나 며칠 밤 을 지내고 나니, 적어도 삼천 원의 순이익이 오륙만 원은 될 것이라, 만 원 하나야 어디로 가랴 하는 타협이 생기어서 안 초시는 으실으실 그, 이를테면 사위 녀석 격인 청년의 뒤를 따라나섰다.
일 년이 지났다.
모두 꿈이었다. 꿈이라도 너무 악한 꿈이었다. 삼천 원어치 땅을 사 놓고 날마다 신문을 훑어보며 수소문을 하여도 거기는 축항이 된단 말이 신문에도, 소문에도 나지 않았다. 용당포와 다사도에는 땅값이 삼십 배가 올랐느니 오십 배가 올랐느니 하고 졸부들이 생겼다는 소문이 있어도 여기는 감감소식일 뿐 아니라 나중에, 역시, 이것도 박희완 영감을 통해 알고 보니 그 관변 모 씨에게 박희완 영감부터 속아 떨어진 것이었다. 축항 후보지로 측량 까지 하기는 하였으나 무슨 결점으로인지 중지되고 마는 바람에 너무 기민하게 거기다 땅을 샀던, 그 모 씨가 그 땅 처치에 곤란하여 꾸민 연극이었다.
돈을 쓸 때는 일 원짜리 한 장 만져도 못 봤지만 벼락은 초시에게 떨어졌다. 서너 끼씩 굶어도 밥 먹을 정신이 나지도 않았거니와 밥을 먹으러 들어갈 수도 없었다.
“재물이란 친자 간의 의리도 배추 밑 도리듯 하는 건가?”
탄식할 뿐이었다. 밥보다는 술과 담배가 그리웠다. 물론 ㉡안경다리는 그저 못 고치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십 전짜리는커녕 단 십 전짜리도 얻어 볼 길이 없다.
추석 가까운 날씨는 해마다의 그때와 같이 맑았다.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리었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빛이 눈이 부시다. 안 초시는 이번에도 자기의 때 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매 끝을 불거나 떨지는 않았다. 고요히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 더러운 소매로 닦았을 뿐이다.
*마코: 담배 상표.
*청장: 장부를 청산한다는 뜻으로, 빚 따위를 깨끗이 갚음을 이르는 말.
*금시발복: 어떤 일을 한 뒤에 이내 복이 들어와 부귀를 누리게 됨.
*가쾌: 집 흥정을 붙이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
01 a~c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a는 돈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② a는 투자의 실패를 b의 탓으로 돌렸다.
③ a는 c로부터 얻은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④ b는 a에 비해 경제적 사정이 나은 편이다.
⑤ c는 a의 몰락에 원인을 제공했다.
02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작품은 부동산 투기를 통해 한몫 잡으려는 인물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합리적인 이성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 근대에 대한 지향이 이성적이지 않은 요소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으로 인해 전통적 가치관이 해체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자본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새롭게 도입된 제도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근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① 아버지를 보살피는 것에 소홀한 딸의 모습을 통해 전통적 가치관이 점점 사라져 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군.
② 하루아침에 큰돈을 벌어 세상과 교섭하려는 모습을 통해 안 초시가 가진 전통적 가치관의 단면을 알 수 있어.
③ 투자 이익을 얻기 위해 집을 담보로 돈을 마련하여 땅을 사는 모습을 통해 부동산 투기에 휩싸인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군.
④ 항구 개발이라는 불확실한 풍문을 믿고 투기를 하는 모습은 합리적인 이성에 기반하지 않고 근대를 지향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⑤ 안 초시가 자신의 이름으로 든 생명 보험이 자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말하는 것은 새롭게 도입된 제도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군.
03 ㉠과 ㉡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안 초시가 과거에 집착하는 인물임을 보여 준다.
② 딸이 안 초시의 투자 권유를 수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③ 안 초시가 딸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④ 안 초시가 허황된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임을 보여 준다.
⑤ 안 초시가 서 참의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된다.
도움자료
[2015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04 이태준, 「복덕방」
01 ② 02 ② 03 ③
1930년대 서울 외곽의 복덕방을 배경으로, 땅 투기에 실패 하여 파멸하는 한 노인을 통해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세대의 궁핍 함과 좌절, 세대 간의 갈등 등을 그린 작품이다. 안 초시는 경제적으 로 딸에게 종속된 인물인데, 부동산 투기로 딸의 재산을 탕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며 아버지를 박대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는 모습 대신에 자신의 사회적 명예가 훼손될 것만을 염려하여 안 초시의 죽음을 경찰에 알리지 않고 조용하게 처리하려고 하는 딸 안경화는 새로운 세대의 이기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안 초시의 영결식장에서 서 참의와 박희완 영감이 내뱉은 탄식은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의 분노와 슬픔을 대변하고 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소외된 세대의 좌절과 비극
전체 줄거리
안 초시, 서 참의, 박희완, 이 세 노인이 복덕방에서 무료하게 소일한다. 안 초시는 수차례의 사업 실패로 몰락하여 서 참의의 복덕방에서 신세를 지고 있지만, 재기의 꿈을 안고 살아간다. 무용가로 유명한 딸 경화가 있으나, 그녀는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이 없다. 재기를 꿈꾸던 안 초시에게 박 영감이 부동산 투자에 관한 정보를 준다. 일확천금을 꿈꾸던 안 초시는 딸에게 투자를 권유하고, 딸은 투자 과정에서 안 초시를 배제하고 자신이 마련한 돈을 몽땅 부동산에 투자한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 그 모든 일이 사기극임이 밝혀지고, 투자 실패에 따른 좌절과 미래에 대한 꿈의 상실로 안 초시는 음독자살하고 만다. 아버지의 자살로 자신의 사회 적 명예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안경화는 서 참의의 권유를 받아들여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른다. 장례식에 참석한 서 참의와 박 영감은 안경화와 조문객들의 위선적인 모습에 실망하여 장례식장을 떠난다.
01 인물의 성격, 태도 파악 ②
안 초시가 투자의 실패를 누구의 탓으로 돌리거나 하는 모습이 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① 안 초시는 누구보다도 돈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인물로 부동산 투자를 통해 큰돈을 벌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③ 안 초시는 박희완 영감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딸에게 투자를 권유하게 된다.
④ 안 초시는 경제적 형편이 서 참의에 비해 좋지 못한데, 부동산 투자를 계기로 서 참의보다 더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고 싶어 했다.
⑤ 안 초시는 박희완 영감으로부터 얻은 부동산 투자 정보를 맹신하여 투자의 실패를 맛보았으므로 적절하다.
02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②
안 초시는 부동산 투기로 큰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안 초시가 전통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① 부동산 투자가 실패로 돌아간 후 안 초시는 딸 안경화로부터 이전보다 심한 박대를 당하게 되는데, 이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역시 전통적 효 사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돈에 의해 좌우되는 모습으로 전통적 가치관이 점점 사라져 가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③ 안경화는 집을 담보로 돈을 융통하여 투자를 하게 되는데, 이는 부동산 투기에 휩싸인 사회의 단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④ 근대는 합리적인 이성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투자 정보를 맹신하여 경제적 실패를 맛보는 것은 합리적 이성에 기반하지 않은 근대 지향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⑤ 딸인 안경화는 부친의 사망을 대비하여 부친 이름으로 생명 보험을 들었고, 부친인 안 초시는 그것이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생명 보험은 자본주 의 체제의 확립 과정에서 도입된 새로운 제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03 소재의 기능 파악 ③
‘샤쓰’와 ‘안경다리’는 모두 안 초시가 입고 싶거나 고치고 싶은 것으로 안 초시는 스스로 경제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딸에게 ‘샤쓰’를 입고 싶고 ‘안경다리’를 고치고 싶다고 말한다. 따라서 ‘샤쓰’와 ‘안경다리’는 안 초시가 딸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① 안 초시는 과거에 집착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현재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인물이다.
② 딸이 안 초시의 투자 권유를 수용하게 된 것은 아버지인 안 초시가 항구 개발과 관련하여 그럴싸하게 한 말에 귀가 솔깃해졌기 때문이다.
④ 새로운 ‘샤쓰’를 입고 ‘안경다리’를 고치는 것은 안 초시의 소박한 바람으로 이것조차 이루어지지 못하는 모습은 안 초시의 경제적 궁핍함을 알 수 있게 한다.
⑤ ‘샤쓰’와 ‘안경다리’는 서 참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