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치숙」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그러니깐 그게 밉살머리스러워서, 더러 들렀다가 혹시 마주 앉아도 위정 뼈끝 저린 소리나 내쏘아 주고 말을 다잡아 가지골랑 꼼짝 못하게시리 몰아세 주곤 하지요.
저번에도 한번 혼을 단단히 내주었지요. 아, 그랬더니 아주머니더러 한다는 소리가, 그 녀석 사람 버렸더라고, 아무짝에고 못쓰게 길이 들었더라고 그러더라나요.
[A][내 원, 그 소리를 듣고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대체 사람도 유만부동이지, 그 아저씨가 나더러 사람 버렸느니 아무짝에도 못쓰게 길이 들었느니 하더라니, 원 입이 몇 개나 되면 그런 소리가 나오는 구멍도 있누? 죄선 벙어리가 다 말을 해도 나 같으면 할 말 없겠더구면서도, 하면 다 말인 줄 아나 봐?
이를테면 그게 명색 훈계 비슷한 거렷다? 내게다가 맞대 놓고 그런 소리를 하다가는 되잡혀서 혼이 날 테니까 슬며시 아주머니더러 이르란 요량이든 게지?
기가 막혀서……. 하느님이 사람의 콧구멍 두 개로 마련하기 참 다행이야.
글쎄 아무려면 내가 재갸처럼 다 공부는 못 하고 남의 집 고조[小僧〕노릇으로, 반또[番頭〕노릇으로 이렇게 굴러먹을 값에 이래 보여도 표창을 두 번이나 받은 모범 점원이요, 남들이 똑똑하고 재주 있고 얌전하다고 칭찬이 놀랍고, 앞길이 환히 트인 유망한 청년인데, 그래 재갸 눈에는 내가 버린 놈이고 아무짝에도 못쓰게 길이 든 놈으로 보였단 말이지?
하하, 오옳지! 거 참 그렇겠군. 재갸는 재갸 하는 짓이 옳으니까 남이 하는 짓은 다 글렀단 말이렷다?
그러니까 나도 재갸처럼 그놈의 것 사회주읜지 급살 맞을 것인지나 하다가 징역이나 살고 전과자나 되고 폐병이나 앓고 다 그랬더라면 사람 버리지도 않고 아무짝에도 못쓰게 길든 놈도 아니고 그럴 뻔했군그래! / 흥! 참…….
제 밑 구린 줄 모르구서 남더러 어쩌구저쩌구 한다는 게 꼭 우리 아저씨 그 양반을 두고 이른 말인가 봐. ]
<중략>
“왜 그래?” / “내가 딱하다구 그러셨지요?”
“아니다, 나 혼자 한 말이다.” / “그래두…….”
“이애?” / “네?”
“사람이란 것은 누구를 물론허구 말이다, 아첨하는 것같이 더러운 게 없느니라.”
“아첨이요?”
“저, 위로는 제왕, 밑으로는 걸인, 그 모든 사람이 위선 시방 이 제도의 이 세상에서 말이다, 제가끔 제 분수대루 살어가는 데 있어서 말이다, 제 개성을 속여 가면서꺼정 생활에다가 아첨하는 것같이 더러운 것이 없고, 그런 사람같이 가련한 사람은 없느니라. 사람이란 건 밥 두 그릇이 하필 밥 한 그릇보다 더 배가 부른 건 아니니까.”
“그건 무슨 뜻인데요?”
[B][“네가 일본인 여자와 결혼을 해서 성명까지 갈고 모든 생활 법도를 일본화하겠다는 것이 말이다.”
“네, 그게 좋잖어요?”
“그것이 말이다, 진실로 깊은 교양이나 어진 지혜의 판단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그도 모를 노릇이겠지. 그렇지만 나는 보매 네가 그런다는 것은 다른 뜻으로 그러는 것 같다.”
“다른 뜻이라니요?”
“네 주인의 비위를 맞추고, 이웃의 비위를 맞추고 하자고…….”
“그야 물론이지요! 다이쇼의 신용을 받어야 하고, 이웃 내지인들하구도 좋게 지내야지요. 그래야 할 게 아니겠어요?”]
“…….”
“아저씨는 아직두 세상 물정을 모르시요. 나이는 나보담 많구 대학교 공부까지 했어도 일찌감치 고생살이를 한 나만큼 세상 물정은 모릅니다. 시방이 어느 세상인데 그러시우?”
“이애?” / “네?”
“네가 방금 세상 물정이랬지?”/ “네.”
“앞길이 환하니 트였다구 그랬지?” / “네.”
“환갑까지 십만 원 모은다구 그랬지?”/ “네.”
“네가 말하는 세상 물정하구 내가 말하려는 세상 물정하구 내용이 다르기도 하지만, 세상 물정이란 건 그야말로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네?”
“사람이란 것 제아무리 날구 뛰어도 이 세상에 형적 없이 그러나 세차게 주욱 흘러가는 힘, 그게 말하자면 세상 물정이겠는데, 결국 그것의 지배하에서 그것을 따라가지 별수가 없는 거다.” / “네?”
“쉽게 말하면 계획이나 기회를 아무리 억지루 만들어 놓아도 결과가 뜻대루는 안 된단 말이다.”
“젠장, 아저씨두……. 요전 <킹구>라는 잡지에두 보니까, 나폴레옹이라는 서양 영웅이 그랬답디다. 기회는 제가 만든다구. 그리고 불가능이란 말은 바보의 사전에서나 찾을 글자라구요. 아 자꾸자꾸 계획하구 기회를 만들구 해서 분투 노력해 나가면 이 세상 일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나요? 한번 실패하거든 갑절 용기를 내가지구 다시 일어서지요. 칠전팔기 모르시요?”
“나폴레옹도 세상 물정에 순응할 때는 성공했어도, 그것에 거슬리다가 실패를 했더란 다. 너는 칠전팔기해서 성공한 몇 사람만 보았지, 여덟 번 일어섰다가 아홉 번째 가서 영영 쓰러지구는 다시 일지 못한 숱한 사람이 있는 건 모르는구나?”
01 [A]의 서술상 특징으로 적절한 것은?
① 인물의 외양 묘사를 통해 인물의 독특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② 동일한 사건을 여러 번 서술하여 그 사건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③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을 병렬적으로 제시하여 인과성을 높이고 있다.
④ 독백적인 어조를 통해 특정 인물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드러내고 있다.
⑤ 인물의 성격이 변화하는 양상을 치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02 [B]의 ‘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상대방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굴한 표정을 짓고 있다.
②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③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④ 자신만의 논리를 내세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⑤ 상대방의 잘못을 과장하며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 하고 있다.
03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작품에서 미숙한 서술자인 ‘나’는 ‘아저씨’를 비판하는 주체인 동시에 작가의 풍자 대상이기도 하다. ‘나’와 ‘아저씨’,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 모습을 풍자하고 있으며, 그리고 풍자의 대상끼리 비난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① 작가는 ‘아저씨’를 통해 ‘나’가 속물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군.
② 작가는 ‘아저씨’의 이야기에 나오는 ‘나폴레옹’처럼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달하고 있군.
③ 작가는 ‘세상 물정’을 화제로 서로 다른 생각을 드러내는 ‘나’와 ‘아저씨’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 있군.
④ 작가는 ‘나’와 ‘아저씨’의 대화를 통해 ‘아저씨’가 고등 교육을 받고도 좌절감에 빠져 있음을 비판하고 있군.
⑤ 작가는 ‘나’를 부정적으로 그려 냄으로써 ‘나’를 똑똑하고 재주 있다고 칭찬하는 ‘주변 사람들’도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군.
도움자료
[2015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05 채만식, 「치숙」
01 ④ 02 ④ 03 ②
이 소설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하고 나와 무능력자가 된 지식인과 그를 비판하는 조카를 통해 식민지 지배하의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나’의 시선을 통해 아저씨를 비판하고, ‘나’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 하는 듯하지만, ‘아저씨’와의 대화를 통해 ‘나’가 사회적 인식이 결여된 채 현실 순응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일제 강점하의 절망적이었던 삶의 환경을 제시하고 있다.
일제에 순응하려는 ‘나’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아저씨의 갈등
전체 줄거리
‘나’는 아저씨가 대학교까지 나와서 사회주의 운동 을 하다 징역살이를 하고 나와서 지금은 폐병으로 앓아누워 착한 아 내의 수발을 받고 있는 무능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인 상점의 종업원이지만 곧 자립하여 일본에 가서 살고자 한다. 이런 ‘나’와 아저씨가 서로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정면으로 대결한다. ‘나’는 아저씨 같은 사람이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01 서술상 특징 파악 ④
‘아저씨’에 대한 불만을 ‘나’의 독백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① 서술자가 인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나 인물의 외양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았다.
② ‘아저씨’가 ‘나’를 훈계한 사건에 대한 ‘나’의 불만을 독백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 것은 아니다.
③ 사건이 연계성을 지니며 ‘나’의 독백을 통해 차례로 서술되고 있다.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은 나타나 있지 않다.
⑤ ‘나’도 아저씨도 성격이 변화하고 있지는 않다.
02 인물의 태도에 대한 이해 ④
‘나’는 자신만의 논리를 내세워 일본인의 신용을 얻고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① ‘나’는 아저씨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논리를 내세워 말하고 있는 것이다.
② ‘나’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며 상대방의 말에 적극적으로 응대하고 있으므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③ ‘나’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⑤ 상대방의 잘못을 과장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는 의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03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②
‘아저씨’는 ‘나폴레옹’도 세상 물정에 순응하지 못해 실패한 인물이라고 하며 세상 물정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나폴레옹’처럼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적절한 진술이 아니다.
① 작가는 ‘아저씨’와 ‘나’의 대화를 통해 ‘나’가 일본인 상점에서 일하며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고 일본 여자와 결혼하 여 행복하게 살겠다고 한 점을 내세워 ‘나’가 속물적인 인간임을 드러내고 있다.
③ 작가는 지식인인 ‘아저씨’와 무지한 ‘나’가 하나의 화제에 대 해 서로 다르게 말하는 상황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④ 작가는 고등 교육을 받고도 세상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좌절감에 빠져 있는 ‘아저씨’를 비판하고 있다.
⑤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나’에 대해 ‘똑똑하고 재주 있고 얌전하다고 칭찬’하는 ‘주변 사람들’도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