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몇 해 전, 해방되던 날만 해도 아버지는 읍내 사람들과 함께 장터 마당에서 조선이 해방됐다며 만세를 불렀다. 여름 한낮, 태극기 흔들며 기세껏 해방 만세, 독립 만세를 불렀다. 재작년 겨울에 무슨 법이 만들어지고부터 아버지는 갑자기 집에서는 물론, 읍내에서 사라졌다. 지서며 사람을 피해 숨어 다니기 시작했다. 밤중에 살짝 나타났고, 얼굴을 보였다가나 들킬세라 금방 사라졌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맡아 그러고 다니는지 어머니도 잘 모른다. 장터 마당 주변 사람들이 아버지를 두고 좌익질 한다며 쑤군거렸고, 순경이 자주 우리 집을 들랑거렸지만, 재작년 겨울부터 누구도 아버지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인지, 스스로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아버지에 관해서 그 사연을 들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쌀 한 톨 생기지 않는 일에 목숨을 걸고 숨어 다니는 아버지의 요술을 두고 사람들은 쉬쉬하며 귀엣말을 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읍내 유식꾼 이모부님조차 알면서 모른 체하는지 입을 아예 봉했다. 봄철이 되면 꽃이 피는 이유를, 꽃이 향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내가 모르듯, 이 세상에는 아직 내가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중략)
이모부님은 내 손을 끌고 지서 뒷마당으로 간다. 잎 순이 터지려는 느릅나무 잔가지가 바람에 떤다. 뒷마당에는 달빛만 어슴푸레 비친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든다. 이모부님은 말이 없다. 어둠 속에서 나는 무엇인가 찾으려 두리번거린다. ㉡내 가슴이 방망이질하듯 뛴다. 눈을 닦고 아버지 모습을, 죽은 아버지 몸뚱이를 찾으려 나는 이곳저곳을 살핀다.
느릅나무 밑, 거기에 가마니에 덮인 무엇이 눈에 들어온다. 이모부님이 걸음을 멈춘다. 가마니 밑으로 발목과 함께 닳아 빠진 농구화가 비어져 나왔다. 시신은 정강이부터 머리까지 가마니에 덮였다. 나는 숨을 멈추고 이모부님 허리를 잡는다. 온몸이 떨린다.
“이거다. 이기 니 아부지 시신이데이. 똑똑히 보거라. 이렇게 죽었으이께 앞으로는 아부지를 절대 찾아서는 안 된다. 인자 알겠제?”
이모부님이 내 손을 놓더니 가마니를 뒤집는다. 나는 달빛 아래 희미하게 드러난 아버지 얼굴을 본다. 아버지 얼굴은 피 칠갑을 한 채 표정이 찌그러져 있다. 눈을 부릅떴다. 턱은 부었고, 입은 커다랗게 벌어졌다. ㉢아버지가 이렇게 변해 버렸다는 걸 나는 믿을 수 없다.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만 같다. 낡은 검정색 국민복 단추가 풀어진 사이로 보이는 아버지 가슴은 내가 어릴 적, 그 무릎에 앉아 재롱을 떨던 가슴이다. 이제 아버지 가슴은 그 두려운 보라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두 팔과 다리는 아무렇게 내던져졌다. 아버지는 분명 잠을 자는 게 아니다. 나는 그 자리에 더 서 있을 수 없다.
ⓐ “아부지가 … 이렇게 돌아가시다이. 이렇게 죽고 말아 뿌리다이!”
나는 흐느낀다. 이모부님이 내 팔을 잡는다. 나는 이모부님 손을 뿌리치고 내닫는다. 내 눈에 이모부님도, 보초 선 의용 경찰원도 보이지 않는다.
“아부진 거짓말쟁이다. 거짓말만 하다 돌아가셨어. 아이다, 죽지 않았어! 거짓말처럼 죽은 체하고 있는 기라!”
나는 헐떡거리며 집과 반대쪽 철길 아래 들녘으로 내닫는다. 숨이 턱에 닿는다. 달빛에 뿌옇게 드러난 강둑이 보인다. 땀과 눈물로 찝찔한 눈 주위를 닦는다. 강둑에 올라서자 나는 숨을 가라앉힌다. 강물이 흐른다. 언제 보아도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간다. 달빛을 받은 강물이 비늘처럼 번뜩인다. 강 건너 키 큰 미루나무가 아버지 모습 같다. 강 건너에서 빨리 건너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나는 그 강을 헤엄쳐 건널 수 없다. 어릴 적, 아버지와 나는 이 강둑을 거닐며 많은 말을 나누었다. 언제인가,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쉬지 않고 흐르는 강처럼 너도 쉬지 않고 자라거라. 다음에 크면 어떤 길이 우리 모두에게 행복과 평등을 가져다주는 길인지 배우고 깨우쳐야 한다 …. ㉣그러자, 아버지가 죽었다는 실감이 비로소 내 마음에 소름을 일으키며 아프게 파고든다. 이제부터, 앞으로 영원히 아버지는 내게 그런 말을 들려줄 수 없다. 나는 홀연히 떨기 시작한다. 서른일곱 살 나이로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아버지. 이제 내가 죽기 전 만날 수 없게 된 아버지. 어린 나에게 너무 어려운 수수께끼를 남기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길지 않은 인생을 더듬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떤다. 두려움과 함께 어떤 깨달음이 내 머리를 세차게 친다. 그 느낌은, 살아가는 데 용기를 가져야 하고 어떤 어려움과 슬픔도 이겨 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안개 저쪽같이 신기한 세상, 내가 알아야 할 수수께끼가 너무 많은 이 세상을 건너갈 때, 나는 이제 집안을 떠맡은 기둥으로 힘차게 버티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결심이 내 가슴을 적신다. 뜨거운 눈물을 그 느낌이 달랜다.
[A][아버지가 죽은 그해 초여름, 이 땅에 전쟁이 났다. 이모부님은 남쪽과 북쪽이 싸운 그 전쟁이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밀고 당길 이듬해 가을, 갑자기 별세하셨다. 나는 성년이 된 뒤까지 이모부님이 왜 그때 아버지 시신을 내게 확인시켜 주었는지에 대해 여쭈어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김원일, ‘어둠의 혼’
34.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외양 묘사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② 상징적 소재를 통해 사건의 해결을 암시하고 있다.
③ 장면에 따른 시점의 변화로 사건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있다.
④ 특정 인물의 시각에서 서술하여 그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⑤ 작품 밖의 서술자가 인물의 의식과 행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35. 보기를 참고하여 ㉠~㉤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김원일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년은 전쟁 전후의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과 결핍된 가정 환경에 놓여 있다. 그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며 외부 세계가 주는 고통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살아간다. 그 과정 속에서 그는 불안과 고통, 혼란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자신에 대해 깨닫고 성장한다.
① ㉠: 미성숙한 ‘나’가 아버지를 이상적으로 인식하여 따르고자 함을 의미한다.
② ㉡: ‘나’가 외부 세계의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불안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 준다.
③ ㉢: ‘나’가 아버지의 주검을 확인한 후 내적으로 혼란한 상태임을 보여 준다.
④ ㉣: ‘나’가 현실을 실감하고 고통과 직면하게 된 상황을 보여 준다.
⑤ ㉤: 미성숙한 ‘나’가 고통을 이겨 내고 내적으로 성장할 것임을 의미한다.
36. 내용의 흐름과 관련하여 볼 때, [A]의 서사적 기능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인물 간의 관계 변화를 보여 준다.
② 극적 반전을 통해 인물 간의 갈등을 해소한다.
③ 사건을 객관화하여 이야기의 신빙성을 더해 준다.
④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를 동일한 주제로 묶어 낸다.
⑤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며 서술하였음을 나타낸다.
37.ⓐ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권토중래(捲土重來) ② 망연자실(茫然自失)
③ 백척간두(百尺竿頭) ④ 사면초가(四面楚歌)
⑤ 전화위복(轉禍爲福)
2014년 EBS수능완성국어영역 국어 A형
[수능완성 국어영역 국어 A형 실전편]
실전 모의고사 2회
현대 소설 (34~37)
김원일, ‘어둠의 혼’
지문 이해하기
(해제) 좌우익 간의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물과 사건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소년의 시각으로 사건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는 한계가 있지만 어린아이가 겪는 비극을 보여 줌으로써 전쟁과 이념 대립으로 인한 고통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나’가 좌익 운동에 가담한 아버지가 경찰에 체포되어 총살당한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하루를 그린 이야기로, 주인공 소년이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정신적 상처를 입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깨닫는 과정은 소년의 정신적 성숙을 보여 준다.
(주제) 이념 대립으로 인한 한 가족의 비극과 소년의 정신적 성숙
전체 줄거리
‘나’의 아버지는 광복 후 좌익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쫓기는 생활을 하면서 가정을 전혀 돌보지 못하여 어머니가 홀로 생계를 꾸려 가고 있다. ‘나’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로 인해 지서에 끌려가 매를 맞기도 한다. ‘나’의 아버지가 어제 지서에 체포되었고 오늘 총살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어머니를 기다리던 ‘나’는 어머니를 찾는데, 이모의 집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다. 이모는 ‘나’에게 이모부가 지서에가 있다고 말해 주고 ‘나’는 지서에서 나오는 이모부를 만난다. 이모부는 ‘나’에게 아버지의 시체를 보여 주며 아버지를 찾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충격을 받은 ‘나’는 강가로 달려가고, 쉬지 않고 흐르는 강처럼 쉬지 않고 자라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한다. ‘나’는 집안을 떠맡은 기둥으로서 이 상황을 버티어 나가야 한다는 결심을 한다.
34. 서술상 특징 파악(답)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④ 확인 1: 특정 인물의 시각에서 서술
‘나’라는 소년의 시각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확인 2: 내면을 효과적으로
아버지의 시체를 목격한 후의 두려움과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내야 한다는 책임감 등 소년의 심리가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외양 묘사를 통해 인물의 성격
주검이 된 아버지의 외양이 묘사되어 있으나 이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알 수는 없다.
② 확인: 상징적 소재를 통해 사건의 해결을 암시
‘강물’이나 ‘미루나무’와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 소재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것이 사건의 해결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③ 확인: 장면에 따른 시점의 변화
시점은 변화하지 않는다.
⑤ 확인: 작품 밖의 서술자
서술자는 작품 내부에 있는 ‘나’이다.
35. 구절의 의미 파악(답) ①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① 확인: 아버지를 이상적으로 인식
‘나’는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 잘 몰랐다고 말한다. 이는 ‘나’가 외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미성숙함을 드러낸다. ㉠에서 ‘아버지의 요술’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버지를 이상적으로 여겨 따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행적을 파악하기 어려움을 지적한 것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② 확인: 외부 세계의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불안
‘나’는 불길한 사건을 직감한다. 외부의 사건으로 인한 ‘나’의 불안감이 ‘방망이질’로 표현되어 있다.
③ 확인: 주검을 확인한 후 내적으로 혼란
아버지의 주검을 보고 다른 사람인 것 같다고 여기는 것은 내적인 혼란 상태를 말해 준다.
④ 확인: 고통과 직면하게 된 상황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실감하였으며 소름이 일었다는 것은 현실의 고통을 직면한 상태라 할 수 있다.
⑤ 확인: 고통을 이겨 내고 내적으로 성장할 것
아버지의 죽음 이후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나’가 성장할 것임을 의미한다.
36. 서사 기능에 대한 이해(답) ⑤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⑤ 확인: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며
(ⓐ)의 ‘아버지가 죽은 그해 초여름’이라는 구절은 현재 서술하고 있는 내용이 과거의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과거를 따라가며 이를 다시 체험하듯 서술한 것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인물 간의 관계 변화
인물의 관계는 변화하지 않았다.
② 확인: 극적 반전을 통해
상황의 반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③ 확인: 사건을 객관화
‘나’의 생각을 서술하여 마무리한 부분으로 사건을 객관화하였다고 볼 수 없다.
④ 확인: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
(ⓐ)가 앞의 내용과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37. 인물의 심리 파악(답)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② 확인: 망연자실
ⓐ는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므로 ‘멍하니 정신을 잃음.’이라는 뜻의 ‘망연자실’이 의미상 상통한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권토중래
한 번 실패하였으나 힘을 회복하여 다시 쳐들어옴을 이르는 말이다.
③ 확인: 백척간두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이다.
④ 확인: 사면초가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롭고 곤란한 지경에 빠진 형편을 이르는 말이다.
⑤ 확인: 전화위복
재앙과 화난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