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변씨는 본래 이완 정승과 친한 사이였다. 이공은 당시에 어영대장의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변씨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일반 백성들이 사는 동네에도 기이한 재주를 가져서 큰일을 함께할 만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변씨가 허생 이야기를 해 주자 이공은 깜짝 놀랐다.
“참으로 기이하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 그 사람의 이름은 뭔가?”
“소인이 3년 동안 알고 지냈으나 끝내 그 이름을 모릅니다.”
“그 사람은 이인(異人)이군. 함께 가 보세.”
밤에 이공은 말 모는 종도 물리치고 변씨와 단둘이 걸어서 허생의 집으로 갔다. 변씨는 이공 을 문밖에 서 있게 하고는 먼저 들어가 허생을 만났다. 변씨가 이공을 데려온 까닭을 자세히 말했지만, 허생은 못 들은 척하며 말했다.
“얼른 가져온 술병이나 푸시오.”
두 사람은 즐겁게 술을 마셨다. 변씨는 이공이 문밖에 오래 서 있는 것이 걱정되어 몇 번이나 말을 꺼냈지만, 허생은 일절 대꾸하지 않았다.
밤이 깊자 허생은 말했다.
“손님을 불러 보시오.”
이공이 들어오는데, 허생은 편안히 앉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이공은 몸 둘 바를 몰라 하다가 국가에서 현명한 인재를 구하고 있다는 뜻을 길게 얘기했다. 그러자 허생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밤은 짧은데 말은 길어서 듣기가 너무 지루하구나. 너는 지금 벼슬이 뭔가?”
“대장입니다.”
“그러면 너는 나라에서 신임 받는 신하로군. 내가 와룡 선생 같은 분을 천거할 테니, 네가 조정에 요청해서 삼고초려하게 할 수 있겠나?”
이공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있더니 말했다.
“어렵겠습니다. 두 번째 방책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두 번째’라는 건 몰라.”
이공이 거듭 간청해 묻자 허생은 말했다.
“명나라의 장병들은 임진왜란 때 자신들이 조선에 은혜를 끼쳤다고 여겨서, 그 자손들 중에 청나라를 빠져나와 우리나라로 넘어온 이들이 많지. 하지만 그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며 의지할 데 없이 살고 있어. 네가 조정에 요청해서 종실*의 여성들을 두루 이들에게 시집보내고, 공신들과 권세가의 집을 빼앗아 거기에 살게 할 수 있겠나?”
이공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있더니 말했다.
“어렵겠습니다.”
“이것도 어렵고 저것도 어렵다면 대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정말 쉬운 일이 하나 있는데, 그건 할 수 있겠나?”
“말씀해 주십시오.”
“무릇 천하에 대의를 소리 높여 외치고자 하면서 천하의 호걸들과 미리 교유를 맺지 않은 적은 자고로 없었어. 남의 나라를 정벌하려 하면서 첩자를 미리 보내지 않고 성공한 적도 없었지. 지금 만주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지. 그들은 스스로 중국과는 친하지 않지만, 조선은 다른 나라에 앞서 자기들에게 복종해온 나라라고 여겨 신뢰하고 있어. 만일 우리 쪽에서 젊은이들을 보내 당나라와 원나라 때처럼 저들의 학교에 입학시키고 저들의 벼슬을 하게 해 달라 하고, 상인들의 출입을 금하지 말아 달라고 청한다면, 저들은 분명 우리가 친하게 지내자는 걸 기뻐하며 허락할 거야. 그리 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뽑아 변발을 시키고 오랑캐 옷을 입힌 뒤 그들 중 뛰어난 사람은 빈공과*를 보게 하고, 좀 못한 사람은 멀리 강남 땅에서 장사를 시키는 거야. 그러면서 그 허실을 엿보고 호걸과 사귀게 한다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고 나라의 치욕도 씻을 수 있을 게야. 만약 주씨를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천하의 제후를 거느려 새로 황제가 될 사람을 하늘에 천거할 수 있을 테니, 잘되면 중국의 스승이 될 것이요, 못 되도 제후국 중의 으뜸은 되지 않겠나.”
이공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사대부라면 누구나 삼가 예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을 하고 오랑캐 옷을 입으려 들겠습니까?”
허생은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른바 ‘사대부’라는 게 대체 무엇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났으면서 제 입으로 ‘사대부’라고 칭하니 참으로 어리석지 않으냐? 위아래로 입은 흰 옷은 상복(喪服)이요, 머리를 송곳처럼 틀어 묶은 건 남만족의 상투이거늘, 무슨 예법을 말하고 있느냐?
번오기*는 사사로운 원한을 갚기 위해 제 목을 베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고, 무령왕*은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 오랑캐 옷 입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거늘 너희는 지금 명나라를 위해 복수하고 싶다면서 여전히 머리털 하나를 아까워하느냐? 너희가 장차 말을 달리고 검을 휘두르고 창을 찌르고 활을 쏘고 돌을 던져야 하는데도 넓은 소매를 고치지 못하겠단 거냐? 너희는 그런 게 예법이라 여기느냐?
내가 세 가지 방책을 말했지만 너는 한 가지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신임 받는 신하라 여기고 있으니, 신임 받는 신하라는 게 본래 이런 거냐? 네 목을 베어 버려야겠다!”
허생은 좌우를 둘러보며 검을 찾아 이공을 찌를 태세였다. 이공은 깜짝 놀라 일어나 등 뒤에 있는 창을 펄쩍 뛰어넘더니 재빨리 달아났다.
이튿날 이공이 다시 허생의 집에 가 보니 허생은 이미 집을 비우고 떠난 뒤였다.
*종실(宗室): 왕족.
*빈공과(賓貢科): 중국 당나라 때에, 외국인에게 보게 하던 과거.
*번오기: 중국 진(秦)나라의 장수. 연(燕)나라로 망명한 뒤 진나라가 이를 빌미로 연나라를 침공하자 자신의 목을 내주어 진왕에게 원수를 갚으려 함.
*무령왕: 중국 조(趙)나라의 왕. 강대해진 진(秦)이 다른 제국을 압박하자 진을 공격하려 왕위를 은퇴하고 스스로 첩자가 되어 진으로 들어감.
01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제시되고 있다.
② 인물의 심리 변화가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③ 사회의 모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표출되고 있다.
④ 인물들의 대화에 역사적 사실들이 활용되고 있다.
⑤ 가치관의 차이가 확인되면서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02 윗글의 허생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지위의 높고 낮음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군.
② 다른 이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너그러운 사람이군.
③ 훌륭한 인재가 기회를 얻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군.
④ 국제 정세를 이용해 장기적인 부국강병을 도모하는 치밀한 사람이군.
⑤ 전통적인 예법이라도 현재의 필요에 따라 고칠 것을 주장하는 실용적인 사람이군.
03 ‘이완’이 ‘임금’의 허락 하에 ‘허생’을 등용하기 위한 포스터를 만든다고 할 때, 가장 적절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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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
이곳이 뜻을 펼치기에 부족하다면 붙잡지 않고 보내 주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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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
세게 내리칠수록 빨라집니다. 그대의 꿈, 그대의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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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책상물림 주제에 당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고 싶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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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
그대의 생각대로 우리 함께 세상을 바꾸어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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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
얽히고 설킨 인연 이제 악연을 끊고 합쳐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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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자료
[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박지원,「허생전」
01 ② 02 ② 03 ④
해제 ㅣ 시대를 앞서 간 주인공 허생을 통해 조선 후기의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소설의 전반부에서 허생의 상행위를 통해 조선의 취약한 경제 구조를 비판한다. 매점매석(買占賣惜)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유통의 한계, 허례허식에 치우친 양반의 삶, 도둑이 될 수밖에 없는 양민들의 고통스러운 삶, 농업과 상업을 통한 경제 발전의 가능성 등을 그려내면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태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한편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이완’이 라는 실존 인물을 등장시켜 당시 지배 계층의 무능함, 중화(中華)사 상의 허위성, 실용적 학문의 중요성 등을 이야기한다. 위정자들의 잘 못으로 인해 피폐해진 조선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내면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고 있다.
주제 ㅣ 부정적 현실 상황에 대한 비판과 이상 세계의 방향 제시
전체 줄거리 ㅣ 남산 묵적골에 살던 가난한 선비 허생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아내의 한탄을 듣고 세상을 경영하러 나간다. 장안의 부자 변씨에게서 만 냥의 돈을 빌린 허생은 과일과 말총을 독점하여 큰돈을 번다. 이후 변산의 도적을 찾아가 이들을 설득, 도적들을 이 끌고 빈 섬에 들어가 농사를 짓게 한다. 농사와 해외 무역을 통해 백만 냥의 돈을 모은 허생은 섬에서 나와 빈민을 구제한 뒤 변씨에게 돌아와 십만 냥의 돈을 갚는다. 이때 변씨에게서 허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완 대장은 허생의 집을 찾아와 인재를 구하는 뜻을 밝힌다. 허생은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계책을 제시하지만 이완 대장은 모두 힘들다며 난색을 표한다. 허생은 칼을 들고 위협하여 이완을 내쫓고 그날 밤으로 자취를 감춘다.
내용 구조도 ㅣ 허생의 시사 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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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내용 |
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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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계책 |
와룡 선생 같은 분을 천거할 테니 등용할 것 |
훌륭한 인재가 소임을 맡지 못하고 묻혀 지내는 현실을 비판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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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계책 |
명나라의 자손들을 종실의 여인과 결혼시키고 이들에게 공신과 권세가의 집을 나누어줄 것 |
공신과 권세가들이 모은 재물이 나라를 위해 쓰이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함. (사대주의의 허위성을 비판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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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계책 |
만주(청나라)와 교류를 늘리 고, 그들의 실용적 측면을 배울 것 |
중국의 주인이 된 청나라와 멀리하려는 ‘숭명반청 사상’의 문제점을 비판함. 실용적 측면에서 청나라와의 교류를 늘릴 것을 주장함. |
01 서사 구조에 대한 이해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이 글에서 ‘허생’과 ‘이공’은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의 생각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주로 허생의 생각을 기준으로 당시 위정 자 집단을 비판하는 구조로 볼 수 있으며, 등장인물 (‘허생’이나 ‘이공’)의 심리 변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변씨와 이완 정승(이공)의 대화에서 허생과 이공의 대화로 이어진다. 하룻밤 사이의 대화와 이튿날까지의 사건이 순차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③ 허생과 이완의 대화를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적 측면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인재를 구한다고 하면서도 허생이 추천하는 인재를 외면하는 현실,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숭명반청을 떠들어대는 지배층의 한계 등이 잘 드러난다.
④ ‘임진왜란’, ‘만주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 노릇’을 하는 상황 등 역사적 사건들이 소설 속 배경으로 제시되고 있다.
⑤ 대화가 진행되면서 결국 허생이 검을 찾아 이공을 찌르려는 상황까지 이른다. 인물들이 지닌 가치관의 차이가 확인되면서 대립이 심화된 것이다.
02 인물의 심리 파악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허생이 ‘첫 번째 방책’을 이야기한 뒤 이공이 거듭 간청하자 ‘두 번째 방책’도 이야기하는 것은 맞지만, 이는 간청에 못 이겨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거나,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허생’은 높은 벼슬을 하는 이완 정승이 찾아왔다고 해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지위(벼슬)의 높고 낮음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자유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③ ‘허생’은 ‘첫 번째 방책’으로 ‘와룡 선생’같은 훌륭한 인재를 등용할 것을 강조하면서, 그들을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훌륭한 인재가 있어도 쉽게 등용되지 못하는 상황,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상황 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④ ‘허생’은 젊은이들을 청나라에 보내 그들의 학문을 배우게 하고, ‘강남 땅’에서 장사를 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제시하고 있는 치밀함이 보인다.
⑤ 허생은 불필요한 예법에 얽매이지 말고, 필요하다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변발을 시키고 오랑캐 옷을 입힐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검을 휘두르고 활을 쏘려면 ‘넓은 소매’를 고쳐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 필요에 따라 예법을 고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실용적 인물이다.
03 원작의 일부 각색 재구성 ④
주어진 상황을 이해한 뒤 이를 다른 매체 형식을 빌려 표현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문제 유형이다. 작품의 내용을 이해 한 뒤 주어진 매체를 활용하여 그것을 표현해 내는 능력을 전제로 한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소설의 마지막에서 허생이 집을 버리고 떠난 것은 집권층들이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생에게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백지에 임금의 옥새만 찍혀 있는 ‘위임장’을 본다면, 허생도 자신의 주장을 펼칠 기회가 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 함께 세상을 바꾸어 봅시다.’라는 포스터 문구에서도 그러한 진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④의 포스터가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그림과 문구를 종합하여 보면 허생에게 ‘변발’을 시키고 ‘오랑캐 옷’을 입혀 중국으로 보내겠다는 의미처럼 이해된다. 허생을 등용하여 나라를 위해 쓰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 지 않으므로 적절하지 않다.
② ‘세게 내리칠수록’이라는 말이 중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더욱 매진하라는 뜻으로도, 다른 사람이 위협이나 공격을 가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또한 허생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인지에 대해서도 판단하기 어렵다.
③ 소설 전체를 고려할 때 허생을 ‘책상물림’이라고 평할 수 없다. 또한 이 그림에는 허생을 등용하겠다는 의사가 확연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⑤ 과거의 ‘악연’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에 대한 약속 이 있어야 한다. 또한 ‘뫼비우스의 띠’를 그린 그림만으로는 어떠한 인연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게다가 허생을 등용하여 능력을 펼칠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