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하노니, 인간 부녀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于今) 이십칠 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하노라.
연전(年前)에 우리 시삼촌께옵서 동지상사 낙점(落點)을 무르와, 북경을 다녀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정과 원근 일가에게 보내고, 비복(婢僕)들도 쌈쌈이 나누어 주고, 그중에 너를 택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 되었더니, 슬프다, 연분이 비상(非常)하여, 너희를 무수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年久)히 보전하니,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迷惑)하지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나의 신세 박명하여 슬하에 한 자녀 없고, 인명이 흉완(凶頑)하여 일찍 죽지 못하고, 가산이 빈궁하여 침선(針線)에 마음을 붙여, 널로 하여 생애를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날 너를 영결하니, 오호 통재라, 이는 귀신이 시기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이요,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 민첩하고 날래기는 백대의 협객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의 충절이라. 추호(秋毫)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綾羅)와 비단에 난봉(鸞鳳)과 공작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함은 귀신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이 미칠 바리요.
오호 통재라, 자식이 귀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비복이 순하나 명(命)을 거스릴 때 있나니, 너의 미묘한 재질이 나의 전후에 수응(酬應)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에게 지나는지라. 천은(天銀)으로 집을 하고, 오색으로 파란을 놓아 곁고름에 채였으니, 부녀의 노리개라. 밥 먹을 적 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너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주렴(珠簾)이며, 겨울밤에 등잔을 상대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鳳 尾)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 갈 적에, 수미(首尾)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造化)가 무궁하다. 이생에 백 년 동거하렸더니,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
금년 시월 초십일 술시(戌時)에, 희미한 등잔 아래서 관대 깃을 달다가, 무심중간(無心中間)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 (魂魄)이 산란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頭骨)을 깨쳐 내는 듯, 이윽토록 기색혼절(氣塞昏 絶)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 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편작*의 신술(神術)로 도 장생불사(長生不死) 못 하였네. 동네 장인(匠人)에게 때이련들 어찌 능히 때일손가. 한 팔을 베어 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다 바늘이여, 옷섶을 만져 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 오호 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뉘를 한(恨)하며 뉘를 원(怨) 하리요. 능란한 성품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가 삭막하다.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하지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과 일시생사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
*편작(扁鵲): 중국 전국 시대의 이름난 의사.
*백인이 유아이사: 백인이 나로 인해 죽었구나. 백인은 중국 진(晋)나라 때의 유명한 선비 주의(周懿)의 자(字)로, 왕도(王導) 가 백인의 무고한 죽음을 탄식하여 한 말임. 여기서는 바늘이 자신의 실수로 인해 부러졌음을 탓하는 말로 쓰임.
01 윗글에 나타난 표현상의 특징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대구와 열거를 통해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다.
② 섬세한 묘사를 통해 대상이 지닌 특성을 제시하고 있다.
③ 영탄적 어조를 통해 대상을 잃은 안타까움을 강조하고 있다.
④ 고사(故事)를 활용하여 낯선 대상을 친숙하게 소개하고 있다.
⑤ 대상을 의인화하여 글쓴이가 느끼는 친밀감을 나타내고 있다.
02 윗글의 글쓴이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동지상사를 지내신 시삼촌을 두고 있는 양반가의 여인이다.
② 남편이 세상을 떠난 여인으로 슬하에 자식조차 없는 상황이다.
③ 선물로 받은 바늘을 비복들에게도 나누어 주는 따뜻함을 지녔다.
④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침선을 통해 생계에 도움을 얻고 있다.
⑤ 자신의 바느질 솜씨가 남보다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겸손함을 지녔다.
03 [보기]와 관련지어 윗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천지신명이나 죽은 사람에게 제사 지낼 때 쓰는 글로 제문이 있다. 제문은 ‘유세차 모년 모월~’로 첫 문장을 시작하고 ‘상향’이란 말로 마무리하는데, ‘서두 - 본문 – 결말’의 구조 속에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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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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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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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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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과의 이별 상황 •글을 쓰는 이유나 본문의 주요 내용 언급 |
•대상과 관련된 일화 •대상에 대한 글쓴이의 심경 |
•대상에 대한 애도 •후세에 대한 기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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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서두의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라는 구절은 윗글이 제문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② 서두의 ‘너의 행장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라는 구절은 본문에서 주로 다룰 내용을 미리 언급한 것이다.
③ 본문에는 대상과 관련된 일화가 ‘바늘을 얻게 된 과정 - 바늘에 대한 추억 - 바늘을 부러뜨린 상황’의 순서로 제시되고 있다.
④ 결말의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라는 문장은 대상에 대한 애도와 후세에 대한 기약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⑤ 윗글에는 ‘상향’이라는 구절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윗글을 완벽한 제문 형식으로 보기는 어렵다.
도움자료
[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유씨 부인,「조침문」
01 ④ 02 ⑤ 03 ④
해제 ㅣ 조선 순조 때 미망인 유씨 부인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한글 수필이다. 바늘이 부러진 사건을 바늘의 죽음으로 묘사하면서 제문 형식을 빌려 자신이 느낀 안타까움과 애통함을 드러내고 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바느질로 소일하며 지내던 양반 가문의 아녀자로서 오랫동안 아끼고 애용하던 바늘을 부러뜨린 순간의 당황스러움과 놀람을 독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러진 바늘을 의인화하여 사람의 죽음으로 애도하는 상황 설정이 독특하며, 문장 표현도 참신하고 전체적인 흐름도 자연스럽다. 여성 화자로서 다정다감한 면모를 폭넓게 드러내고 있으며, 한낱 미물에 불과한 바늘에 대한 애틋하면서도 애잔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남편을 잃고 외롭게 살아가는 미망인의 쓸쓸함과 애처로움을 잘 드러낸 수필이라고 평가받는다.
주제 ㅣ 부러진 바늘로 인한 슬픔과 바늘에 대한 애도
구성 ㅣ
서두(1문단): 제문을 짓게 된 동기
본문1(2문단): 바늘을 얻게 된 과정
본문2(3문단): 글쓴이의 처지와 바늘에 대한 심경
본문3(4문단): 바늘의 재주와 품성
본문4(5문단): 바늘에 대한 글쓴이의 각별함
본문5(6문단): 바늘을 부러뜨린 상황과 그에 대한 안타까움 결말
(7문단): 바늘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후세에 대한 기약
01 표현상 특징 파악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이 글에는 ‘백인이 유아이사’와 같이 중국의 고사가 인용되고 있지만, 이 고사는 ‘자신의 실수로 부러뜨린 바늘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편작의 신술’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 역시 낯선 대상을 친숙하게 드러내기 위한 고사는 아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대구(물중의 명물이요, 철중의 쟁쟁이라. 백대의 협객이요, 만고의 충절이라)와 열거(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 표현을 통해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다.
② 감각적 묘사와 상세한 서술, 참신하면서도 정감 있는 표현 등을 통해 바늘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③ 글쓴이는 영탄적 목소리(오호 통재라, 아깝고 불쌍하다. 슬프다. ~ 영결하노라)를 통해 바늘을 부러뜨린 안타까움을 표출하고 있다.
⑤ 글쓴이는 바늘을 의인화하여 바늘의 행적과 바늘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바늘에 친밀감을 드러내면서 함께한 세월을 추억하고, 바늘이 부러진 사건을 ‘친구의 죽음’에 빗대어 제시하고 있다.
02 작품의 내용 파악 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이 글에서 글쓴이는 바늘의 도움을 통해 ‘능라와 비단에 난봉과 공작을 수놓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바늘의 능력을 과장하면서 ‘조화가 무궁하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글쓴이는 바늘만 있으면 그러한 조화를 부릴 수 있었다고 자신하고 있으므로, 자기 솜씨가 남보다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은 아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바늘을 얻게 된 경위를 말하는 두 번째 문단에서 파악할 수 있다.
② ‘미망인’이라는 말, ‘슬하에 한 자녀 없고’라는 말에서 확인 할 수 있다.
③ 바늘을 나누어 주고 대상이 되는 바늘(부러뜨린 바늘)만 남 게 된 과정에서 파악할 수 있다.
④ 세 번째 문단에서 ‘가산이 빈궁하여 침선에 마음을 붙여’생 계에 도움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03 갈래별 특징, 성격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결말의 맨 마지막 문장인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는 대상을 애 도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후세에 대한 기약은 담겨 있지 않다. 후세에 대한 기약은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하지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과 일시생사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라는 앞 문장에서 제되고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는 제문을 시작하는 서두문으로 이 글 또한 제문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 주는 장치가 된다.
② ‘너의 행장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라는 구절에 따르면 글쓴이가 본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바를 추측할 수 있다. 즉 글쓴이는 바늘의 행장(몸가짐과 품행, 바늘이 평생 어떻게 살아 왔는지)과 부러진 바늘에 대한 ‘나’의 회포(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정)를 본문에서 다루고자 한다.
③ 글쓴이는 본문에서 ‘바늘’과 관련된 일화로 시삼촌에게서 바늘을 받은 일, 침선에 마음을 붙여 바늘과 함께한 일, 바늘을 부러뜨린 과정 등을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⑤이 글은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로 끝나며 ‘상향’이란 구절 은 보이지 않는다. 이를 통해「조침문」이 제문 형식을 빌려 작 성한 수필이면서도, 제문 형식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지는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