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허생전」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변 씨가 오 년 동안에 어떻게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보았다. 허생이 대답하기를,
[A][“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조선이란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서,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무릇, 천 냥은 적은 돈이라 한 가지 물종(物種)을 독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 냥이 열이라,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보통 이(利)를 취하는 방법으로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대개 만 냥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수레면 수레 전부, 배면 배를 전부,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마치 총총한 그물로 훑어 내듯 할 수 있지요. 뭍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물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고, 의원의 만 가지 약재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면, 한 가지 물종이 한곳에 묶여 있는 동안 모든 장사치들이 고갈 될 것이매,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후세에 당국자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처음에 내가 선뜻 만 냥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허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만 냥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만 냥을 빌린 다음에는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중략>
밤에 이 대장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변 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변 씨는 이 대장을 문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이 대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변 씨는 이 대장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이 대장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이 대장은 몸 둘 곳을 몰라 하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대장이오.”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임금께 아뢰어서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 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 했다.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이 대장의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명(明)나라 장졸들이 조선은 옛 은혜가 있다고 하여, 그 자손들이 많이 우리나라로 망명해 와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니, 너는 조정에 청하여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모두 그들에게 시집보내고, 훈척(勳戚) 권귀(權貴)의 집을 빼앗아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이 대장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안 되고,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만주 정부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중국 민족과는 친근해지지 못하는 판에,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섬기게 되어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진실로 당(唐)나라, 원(元)나라 때처럼 우리 자제들이 유학 가서 벼슬까지 하도록 허용해 줄 것과, 상인의 출입을 금하지 말도록 할 것을 간청하면,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국중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그중 선비는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또 서민은 멀리 강남(江南)에 건너가서 장사를 하면서,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저 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명나라 황족에서 구해도 사람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잘 되면 대국(大國)의 스승이 될 것이고, 못 되어도 백구지국(伯舅之國)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이 대장은 힘없이 말했다.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禮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辮髮)을 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01 윗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허생은 변 씨를 찾아가 돈을 빌렸다.
② 허생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자신감을 지니고 있다.
③ 허생은 자신을 찾아온 이 대장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
④ 허생은 조선이 중국을 직접 다스리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⑤ 이 대장은 허생의 세 가지 제안의 실현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02 [A]에서 확인할 수 있는 허생의 경제관을 <보기>에서 골라 바르게 묶은 것은?
<보기>
ㄱ. 매점매석은 나라 경제에 해악이 될 수 있다.
ㄴ. 외국과 무역을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ㄷ. 상업이 활기를 찾으려면 먼저 농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ㄹ. 소규모 상업은 서민 계층이, 대규모 상업은 양반 계층이 담당해야 한다.
① ㄱ, ㄴ ② ㄴ, ㄹ ③ ㄷ, ㄹ
④ ㄱ, ㄴ, ㄹ ⑤ ㄴ, ㄷ, ㄹ
03 윗글로 보아 <보기>의 밑줄 친 부분에 대한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선생님 : 「허생전」에 담긴 시대정신은 조선 후기의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느 시대에서나 항상 존중되는 가치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러면 허생과 이 대장의 대화에서 오늘날 우리가 계승해야 할 시대정신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시다.
① 학생 1: 유교적 예절을 본받고 이를 후대에 계승하는 것입니다.
② 학생 2: 교육을 통해 동아시아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③ 학생 3: 신분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④ 학생 4: 집권층이 책임 의식을 갖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⑤ 학생 5: 명분을 강조하고 이를 실천하여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도움자료
[2015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08 박지원, 「허생전」
01 ④ 02 ① 03 ④
이 소설의 작가는 ‘북벌’이란 허울 좋은 구호를 내걸고, 백성 모두의 관심을 이에 집중시켜, 조선 내부의 문제점을 은폐하고 있는 당대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허생’이라는 비범한 인물을 내세워 전반부에는 주로 당대 사회의 경제적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고, 후반부에는 이완과 허생의 대화를 통해 집권층의 무능과 위선을 비판하고 있다. 작가는 이미 동아시아 최대의 강대국이 된 청을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북학론(北學論)적 사고를 이 작품에서 구현하고 있다.
당대의 현실 상황 및 지배층의 무능과 허위 비판
전체 줄거리
허생은 10년 계획으로 남산골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가난을 못이겨 공부를 중단하고 장안의 갑부인 변 씨를 찾아가 1만 냥을 빌린다. 그는 이 돈을 밑천으로 과일과 말총을 독 점하여 큰돈을 벌고, 변산의 도적들을 설득하여 빈 섬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무역을 하여 빈민을 구제하고 10만 냥을 변 씨에게 갚는다. 그 후 두 사람은 친교를 맺게 되고 변 씨는 이완 대장에게 허생을 소개한다. 이완이 찾아와 인재를 구하는 뜻을 밝히자 허생은 세 가지 계책을 제시하는데 이완은 모두 힘들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허생은 칼로 위협하여 이완을 내쫓고는 종적을 감추고 만다.
01 세부 정보의 이해 ④
‘만약 명나라 황족에서 구해도 사람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를 거느리고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잘 되면 대국의 스승이 될 것이고, 못 되어도 백구지국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로 볼 때, 중국 민족이 만주 정부를 대신하여 중국을 다스리는 것을 도우려 하는 것이지, 조선이 중국을 직접 다스리는 방법을 찾는 것은 아니다.
① ‘처음에 내가 선뜻 만 냥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만 냥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 오.’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②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③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이 대장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를 통해 허생이 이 대장(이완)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⑤ ‘ 어렵습니다.’, ‘ 누가 변발을 하고 호복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 등의 대답으로 볼 때, 이 대장은 허생이 제시한 세 가지 계책의 실현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이다.
02 인물의 관점 파악 ①
‘한 가지 물종이 한곳에 묶여 있는 동안 모든 장사치들이 고갈 될 것이매,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에서 매점매석이 해악이 된다고 여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ㄱ). 허생은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는 상황(외국과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인 것이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지’는 문제를 가져온 원인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ㄴ).
ㄷ과 ㄹ은 [A]에서 찾을 수 없는 내용이다.
03 외적 준거에 의한 핵심 주장 파악 ④
허생이 이 대장에게 제시한 세 가지 계책은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기 위한 노력, 명나라 유민들에게 은혜를 갚는 의리, 만주 정부와의 실질적 교류를 통해 그들의 실정을 파악한 후 국치를 설욕하는 것 등이다. 이는 결국 북벌론의 실행을 위해 집권층이 진정성과 책임 의식을 갖고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① 허생의 주장은 형식적 예절 같은 유교적 가치에 얽매이지 말자는 것이다.
② 조선의 자제들을 유학 보내자는 내용은 있지만, 이것은 만주 정부와의 실질적 교류의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지, 교육을 통해 동아시아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다.
③ 이 글에서 신분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은 찾을 수 없다.
⑤ 이 글에서 허생의 주장은 명분에만 집착하지 말고 실리를 추구하며 목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