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주생은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지만,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하자 장삿길로 나서 강호를 돌아다녔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옛 고향 전당에서 노닐던 중, 어릴 적 함께 놀았던 소꿉동무이자 지금은 기생이 된 비도(緋桃)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주생은 비도가 노 승상(盧丞相) 댁에 다니러 가는 길을 몰래 따라 갔다가 거기서 노 승상의 딸 선화를 보고 그녀를 마음에 두게 된다.
하루는 부인이 어린 아들 국영(國英)을 불러 말했다.
“네 나이 벌써 열둘인데 아직도 학문을 배우지 못하고 있으니, 후일 어른이 되면 어떻게 자립하겠느냐? 내 들으니 비도의 남편인 주생이 글을 잘 하는 선비라고 하니, 네가 가서 배움을 청함이 좋겠구나.”
부인의 집안 다스리는 법도가 매우 엄했기에 국영은 감히 명을 어길 수 없었다.
그날로 책을 끼고 주생에게 가니, 주생은 속으로는 ‘내 뜻대로 일이 되는구나.’ 하고 남몰래 기뻐하면서도 두세 번 겸손한 태도로 사양한 후에야 가르쳤다.
어느 날 주생은 비도가 없는 틈을 타 국영에게 조용히 말했다.
“네가 오가면서 글을 배우니, 이것은 매우 힘들고 수고스런 일이다. ㉠네 집에 만약 빈방이 있다면, 내가 너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겠다. 그러면 너는 왕래하는 수고로움을 덜 것이요, 나는 너를 가르치는 데 전력을 다할 수 있을 텐데.”
국영이 사례하여 말했다.
“진실로 원하던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 부인께 말씀 드려, 그날로 주생을 맞이했다.
비도가 밖에서 돌아와서는 몹시 놀라 말했다.
“아마도 선랑(仙郞)께서는 딴 맘이 있나 보군요. 왜 저를 버리시고 다른 곳으로 가려 하지요?”
주생이 말했다.
“듣자하니, 승상 댁에는 삼만 축(軸)의 장서가 있다 하오. 그러나 부인이 선공(先公)의 유품이라 함부로 내고 들이는 것을 싫어한다기에, ㉡내가 그 집에가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한 책들을 읽어 보려는 것뿐이오.”
비도가 말했다.
㉢“낭군께서 학업을 부지런히 닦으시는 것은 저의 복이지요.”
주생은 거처를 승상 댁으로 옮겨 갔지만, 낮이면 국영과 같이 있고 밤이면 모든 문을 꼭꼭 잠가 버리므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궁싯거리며 열흘을 지냈다.
문득 그는 혼잣말로 ‘처음에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본래 선화를 꾀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 꽃피는 봄이 다가도록 아직 만나지도 못하고 있으니 황하(黃河)의 물 맑기를 기다리려면 사람의 수명이 얼마나 되어야 하지? ㉣차라리 어둔 밤에 느닷없이 뛰어들어가 일이 이루어지면 귀하게 될 것이요, 행여 이루어지지 못하면 삶아 죽임을 당하지 뭐.’라고 중얼거렸다.
이날 밤에 달이 없었다.
주생은 여러 겹의 담을 뛰어넘어 선화의 방 앞에 다다랐다. 행랑채는 구부러진 난간에 주렴(珠簾)과 장막(帳幕)이 겹겹이 드리워 있었다. 주생이 한참을 살펴보았으나 인적이 없었고 다만 선화 혼자만이 촛불을 밝히고 곡을 뜯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생은 난간 사이에 엎드려 선화가 하는 양을 보았다.
[A][선화는 곡 타기를 마치자 작은 소리로 소자첨(蘇子瞻)의 ‘하신랑(賀新郞)’이라는 사(詞)를 읊기 시작했다.
주렴 밖에 그 누가와 비단 창 두드리나요
요대에 노니는 꿈 부질없이 깨우는구나
가야금 곡조는 바로 바람 되어 대를 흔드네.
바로 주생이 주렴 밖에서 작은 소리로 읊었다.
바람 되어 대를 흔든다 마오
그리운 임 온 것이 참이잖소.]
선화는 거짓으로 못 들은 체하고, 곧 등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생이 들어가 함께 잠자리에 드니, (중략) 주생은 벌이 꿀을 찾듯 나비가 꽃가루를 그리워하듯, 매혹되어 정신이 혼미하여서 새벽이 가까워진 것도 깨닫지 못했다.
갑자기 난간 밖 꽃나무 가지에 앉은 꾀꼬리의 아양 떠는 듯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주생은 깜짝 놀라 일어나 방을 나오니 연못과 집은 고요했고 희번한 새벽안개가 자욱하여 사물이 분명치 않았다.
선화는 주생을 보내느라고 방문을 나서다가 문을 닫고 들어가며 샐쭉하니 말했다.
“이곳에 다시는 오지 마세요. 이 일이 한 번 누설된다면 죽고 사는 것이 걱정됩니다.”
주생은 기가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메어 급히 달려들며 말했다.
“겨우 좋은 인연을 한 번 이루었는데, 어찌 이렇게도 박대를 하는 거요?”
선화가 웃음 치며 말했다.
㉤“아까 말은 농일 뿐이에요. 낭군은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고 저녁에 만나도록 하지요.”
주생은 ‘응응.’ 하면서 달려 나갔다.
권필, ‘주생전’
41. 윗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부인’은 ‘주생’의 학식이 뛰어나다고 믿고 있다.
② ‘비도’는 ‘주생’이 ‘선화’를 사모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③ ‘주생’은 승상 댁의 엄한 분위기 때문에 뜻을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④ ‘선화’는 ‘주생’이 거처를 옮겼을 때부터 그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⑤ ‘주생’은 ‘선화’와 정을 나눈 후, ‘선화’와의 지속적인 만남을 바라고 있다.
42. [A]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선화가 주생을 사모하는 마음을 사(詞)에 담아 표현하자, 주생이 기뻐하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② 선화가 사(詞)로써 주생이 스스로 돌아가게 하려 하였으나, 주생이 선화의 생각을 돌리려 하고 있다.
③ 선화가 읊는 사(詞)에 매료된 주생이 자신도 모르게 화답시를 읊는 바람에 선화가 깜짝 놀라고 있다.
④ 방 바깥에 누군가가 있음을 눈치챈 선화가 사(詞)로써 반응을 유도하자, 주생이 이에 화답하고 있다.
⑤ 주생이 돌아갈까 봐 걱정하는 선화가 사(詞)로써 안타까움을 토로하자, 주생이 선화를 안심시키고 있다.
43. 보기의 관점을 바탕으로 할 때, ㉠~㉤에 대한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주생전’은 ‘주생’이라는 한 명의 남성과 ‘비도’와 ‘선화’라는 두 명의 여성 간의 삼각관계를 다룬 애정 소설이다. 과거 사대부였던 비도는 주생과의 사랑과 주생의 성공을 통해 신분을 회복하고자 하나 주생의 애정은 비도에서 선화에게로 옮겨 간다. 선화는 처음에 주생의 구애를 받아들이는 것에 다소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그녀 역시도 주생에 대한 애정을 키워 간다. 작가는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세 인물의 삼각관계를 설정하여 인물들의 욕망이 서로 비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① ㉠에는 국영을 가르친다는 것을 빌미로 선화에게 접근하려는 주생의 욕망이 담겨 있다.
② ㉡에는 비도가 아닌 선화를 향한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자 하는 주생의 의도가 깔려 있다.
③ ㉢에는 주생의 학업이 자신의 욕망과 부합한다고 여기는 비도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④ ㉣에는 위험마저 감수하면서까지 욕망을 이루고 싶어 하는 주생의 마음이 나타나 있다.
⑤ ㉤에는 주생의 욕망을 무시하고 자기 욕망을 극대화하려는 선화의 적극성이 드러나 있다.
2014년 EBS수능완성국어영역 국어 A형
[수능완성 국어영역 국어 A형 실전편]
실전 모의고사 5회
고전 소설 (41~43)
권필, ‘주생전’
지문 확인하기
(해제) 이 작품은 주인공 주생과 비도, 선화라는 두 여인 간의 삼각관계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남성의 애욕과 이기주의, 여성의 질투와 자기희생적 인고 그리고 애정 성취를 위한 주변 인물의 이해와 협조 등의 세부 정황을 비교적 실감 있게 그리고 있는 고전 소설이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중세 체제의 모순과, 소외 양반층 및 하층민의 억압된 의지를 비판적 지식인의 시각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것으로서의 심층적 의미 또한 아울러 지니고 있기도 하다.
(주제) 운명에 대한 인간의 나약성과 비극적인 사랑
전체 줄거리
명나라 때 촉 땅에 살고 있던 주생은 어려서부터 총기가 있어 열여덟에 태학생이 되었으나, 번번이 과거에 떨어지자 작은 배를 타고 장사를 하며 강호 유람으로 살아간다. 술에 취해 옛 고향 전당에서 노닐던 중, 옛 여자 친구 비도를 만난다. 기생이 된 비도에게 호감을 느낀 주생은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동거하게 된다. 어느 날 노 승상 댁에 갔다가 딸 선화를 본 주생은 선화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의 남동생 국영에게 글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노 승상 댁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선화와 정을 통하게 된다. 주생이 선화와 주고받은 시를 본 비도는 질투를 하고, 승상 부인 또한 주생과 선화의 관계를 알게 된다. 이에 선화는 병이 나고, 약한 국영이 병으로 죽으며, 비도도 병들어 자신을 주생이 다니는 길가에 묻어 달라며 죽는다. 실의에 빠진 주생은 비도를 묻고 정처 없이 배로 방랑하다가 친척의 도움으로 선화와 결혼한다. 이때 조선에 왜적이 쳐들어와 원군으로 참전하였다가 병이 나서 누워 있던 중, ‘나’는 송경의 역관에서 그를 만나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
41. 인물의 성격, 태도 파악(답)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④ 확인: ‘선화’는 ‘주생’이 ~ 그에게 호감
선화가 언제부터 주생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는지는 이 글 속에서 확인할 수 없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주생’의 학식
부인이 국영과 대화하는 내용에서 ‘내 들으니 비도의 남편인 주생이 글을 잘 하는 선비라고 하니, 네가 가서 배움을 청함이 좋겠구나.’라고 말한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② 확인: ‘비도’는 눈치채지 못하고
주생이 노 승상 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을 때, 비도가 ‘아마도 선랑께서는 딴 맘이 있나 보군요. 왜 저를 버리시고 다른 곳으로 가려 하지요?’라고 의심하는 대목이 있으나, 이것을 가지고 비도가 선화를 사모하는 주생의 마음을 눈치챈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약 그런 눈치를 챘다면, 주생이 학업을 핑계로 댔을 때에도 의혹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인데, 비도는 주생의 말을 믿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③ 확인: 엄한 분위기
‘부인의 집안 다스리는 법도가 매우 엄했기에’나 ‘주생은 거처를 승상 댁으로 옮겨 갔지만, 낮이면 국영과 같이 있고 밤이면 모든 문을 꼭꼭 잠가 버리므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라는 대목에서 확인 가능하다.
⑤ 확인: 지속적인 만남
선화가 주생을 보내는 대목에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말하자, 주생은 ‘겨우 좋은 인연을 한 번 이루었는데, 어찌 이렇게도 박대를 하는 거요?’라고 말하고 있다. 이후 선화가 저녁에 다시 만나자고 말하자 기뻐하는 주생의 모습을 보면, 주생이 선화와의 지속적인 만남을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2. 구절의 의미 파악(답)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④ 확인: 누군가가 있음을 눈치챈 선화
(ⓐ)에 나타난 선화의 사(詞)에 보면, ‘주렴 밖에 그 누가와 비단 창 두드리나요’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원곡인 ‘하신랑(賀新郞)’의 가사이기는 하나, 현재 주생이 선화의 방 앞에 숨어 있는 상황과, (ⓐ)에 이어지는 서술에서 ‘선화는 거짓으로 못 들은 체하고’를 종합해 보면, 선화는 누군가가 숨어 있음을 알고서 일부러 이러한 가사의 노래를 부른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주생을 사모하는 마음
누군가 바깥에 있다는 것을 선화가 알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것이 주생인지까지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또한 선화가 읊은 사(詞)에는 사모의 정이 뚜렷이 나타나 있지 않고, ‘요대에 노니는 꿈’에서 사모의 정이 다소 드러난다고 보더라도 주생의 입장에서 그것이 자신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② 확인: 주생이 스스로 돌아가게 하려 하였으나
선화가 읊은 사(詞)의 내용은 오히려 주생을 넌지시 유혹하는 것으로 보이지, 주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돌아가도록 의도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③ 확인: 선화가 깜짝 놀라고 있다.
선화는 누군가가 바깥에 숨어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깜짝 놀랄 이유가 없다.
⑤ 확인: 주생이 돌아갈까 봐 걱정
선화가 읊은 사(詞)의 내용은 자신의 쓸쓸함을 토로하는 데 초점을 두었을 뿐, 주생이 돌아갈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확인하기 어렵다.
43.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답) ⑤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⑤ 확인: 주생의 욕망 무시, 자기 욕망을 극대화하려는 선화
㉤은 앞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자신의 말에, 그럴 수 없다고 달려들었던 주생을 안심시키기 위한 발화이다. 즉 ㉤은 주생의 욕망과 일치하는 선화의 욕망을 드러내는 발화라고 할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선화에게 접근하려는 주생의 욕망
㉠은 주생이 국영에게 자신의 거처를 국영의 집으로 옮기겠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주생은 국영이 오가면서 글을 배우는 일이 힘들고 수고스럽다는 점을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앞서 주생이 ‘내 뜻대로 일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점이나, 이후 선화에게 접근하려 애쓰는 모습에 비추어 볼 때, 실제로는 선화에게 접근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과 같은 제안을 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② 확인: 선화를 향한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자 하는 주생
㉡에서 주생이 노 승상 댁으로 거처를 옮기려는 이유가 서책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단지 핑계일 뿐이고, 실제 의도는 선화에게 접근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자신과 사랑을 나눴던 비도를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비도에게 솔직히 밝힐 수 없는 것이었고, 핑계를 대어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③ 확인: 주생의 학업이 자신의 욕망과 부합한다고 여기는 비도
㉢에서 비도는 낭군이 학업을 닦는 것이 자신에게도 복이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아녀자가 남편의 결정을 따르고 순종하겠다는 관습적 표현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앞서 주생이 거처를 옮기게 되었을 때 비도가 의심과 원망의 말을 하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은 자신과 부부의 연을 맺은 주생이 학업을 닦아 출세하는 것이 기생인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켜 줄 수도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반영된 말로 볼 수 있다.
④ 확인: 위험마저 감수, 욕망을 이루고 싶어 하는 주생
㉣에서 주생은 밤에 선화의 방에 뛰어들어갔을 때 선화가 거부할 경우 삶아 죽임을 당하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선화와 정을 나누고자 하는 주생의 의지가 함께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