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엊그제 젊었더니 하마 어이 다 늙거니
소년 행락(少年行樂) 생각하니 일러도 속절없다
늙어서야 서러운 말 하자 하니 목이 멘다
부생모육(父生母育) 신고(辛苦)하여 이내 몸 길러 낼 제
공후 배필(公侯配匹)은 못 바라도 군자 호구(君子好逑)* 원하더니
삼생(三生)의 원업(怨業)이요 월하(月下)의 연분(緣分)으로
장안(長安) 유협(遊俠) 경박자(輕薄子)를 꿈같이 만나 있어
당시에 마음 쓰기 살얼음 디디는 듯
삼오 이팔(三五二八) 겨우 지나 천연 여질(天然麗質) 절로 이니
이 얼굴 이 태도(態度)로 백 년 기약(百年期約)하였더니
연광(年光)이 훌훌하고 조물(造物)이 시샘하여
봄바람 가을 물이 베올에 북 지나듯
설빈화안(雪鬂花顔) 어디 가고 면목가증(面目可憎) 되었구나
내 얼굴 내 보거니 어느 임이 날 사랑할까
스스로 참괴(慚愧)하니 누구를 원망(怨望)하랴
(중략)
돌이켜 풀어 헤아리니 이리하여 어이하리
청등(靑燈)을 돌려 놓고 녹기금(綠綺琴) 비스듬히 안아
벽련화(碧蓮花) 한 곡조를 시름 좇아 섞어 타니
소상야우(瀟湘夜雨)의 댓잎 소리 섞여 도는 듯
화표(華表)* 천 년(千年)의 별학(別鶴)이 울고 있는 듯
옥수(玉手)의 타는 수단(手段) 옛 가락 있다마는
부용장(芙蓉帳) 적막(寂寞)하니 뉘 귀에 들리겠는가
간장(肝腸)이 구곡(九曲) 되어 굽이굽이 끊겼어라
차라리 잠이 들어 꿈에나 보려 하니
바람에 지는 잎과 풀 속에 우는 벌레
무슨 일 원수로서 잠조차 깨우는가
천상의 견우직녀(牽牛織女) 은하수 막혔어도
칠월 칠석(七月七夕) 일 년 일도(一年一度) 실기(失期)치 않거든
우리 임 가신 후는 무슨 약수(弱水) 가렸관대
오거나 가거나 소식조차 그쳤는고
난간(欄干)에 빗겨 서서 임 가신 데 바라보니
초로(草露)는 맺혀 있고 모운(暮雲)이 지나갈 제
죽림(竹林) 푸른 곳에 새소리 더욱 섧다
세상(世上)의 서러운 사람 수없다 하려니와
박명(薄命)한 홍안(紅顔)이야 나 같은 이 또 있을까
아마도 이 임의 탓으로 살동말동 하여라
-허난설헌, 「규원가(閨怨歌)」-
*군자 호구: 군자의 좋은 배필. 시경의 구절에서 따온 말.
*화표: 묘 앞에 세우는 문. 망주석 따위가 있음.
43.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의 처지에 대해 탄식하고 있다.
② 음보를 규칙적으로 사용하여 음악적 효과를 얻고 있다.
③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여 화자의 슬픔을 심화하고 있다.
④ 영탄적 어조를 사용하여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⑤ 대구법을 사용하여 운명에 맞서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44.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규원가」는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그 원인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한탄하는 규방 가사이다. 이 작품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예속되었던 조선 시대의 봉건적 윤리 속에서 작가 자신이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외로움과 한을 다양한 비유적 기법을 사용하여 품격 높은 시적 감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① ‘서러운 말’에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화자의 운명과 처지에 대한 한이 담겨 있겠군.
② ‘스스로 참괴하니’를 통해 화자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 대해 자신을 책망하고 있군.
③ ‘천상의 견우직녀’는 임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화자의 처지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화자의 슬픔을 대변하고 있군.
④ ‘나 같은 이 또 있을까’를 통해 화자는 홀로 지내는 자신의 외로움을 강조하고 있군.
⑤ ‘아마도 이 임의 탓으로 살동말동 하여라’에는 남편을 원망하는 화자의 정서가 드러나 있군.
45. 윗글과 <보기>의 꿈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한밤중에 혼자 일어나 묻노라 이내 꿈아
만리(萬里) 요양(遼陽)*을 어느 사이에 다녀온고
반갑다 학가 선용(鶴駕仙容)*을 친히 뵌 듯하여라
-이정환, 「비가(悲歌)」 제1수-
*요양: 청나라 심양.
*학가 선용: ‘왕세자가 타던 수레’와 ‘신선의 용모’를 뜻하는 말로, 볼모로 잡혀간 두 왕자를 이름.
①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바탕이 되어 있다.
② 화자의 내적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③ 대상에 대한 비판 의식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④ 화자와 대상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⑤ 현실의 문제가 환상이라는 장치로 극복된 결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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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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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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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시가 **
□ 출전: 허난설헌, <규원가>
43. [출제의도] 표현상의 특징 파악하기
‘소상야우의 댓잎 소리 섞여 도는 듯 화표 천 년의 별학이 울고 있는 듯’과 같이 대구법이 사용되었지만, 녹기금 연주소리에 대한 표현일 뿐 운명에 맞서려는 의지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44. [출제의도]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하기
‘천상의 견우직녀’는 화자의 상황과 달리 일 년에 한 번은 만날 수 있으므로, 화자의 슬픔을 대변한다고 감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45. [출제의도] 작품 간의 공통점 차이점 파악하기
본문의 ‘꿈’은 그리운 임을 보기 위한 수단이며 <보기>의 ‘꿈’ 역시 볼모로 잡혀간 두 왕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것이다.
②화자의 내적 갈등은 현실의 문제로 발생한 것이다. ⑤현실의 문제가 꿈을 통해 극복되지 않았으므로, 그 결과 역시 나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