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부귀라 구(求)치 말고 빈천이라 염(厭)치 말아
인생 백년이 한가할사 사니 이 내 것이
백구야 날지 말아 너와 망기*하오리라
<제1곡>
천심 절벽 섯난 아래 일대 장강(一帶長江) 흘너간다
백구로 버즐 삼아 어조 생애(漁釣生涯) 늘거가니
두어라 세간 소식(世間消息) 나난 몰나 하노라
<제2곡>
㉠보리밥 파 생채를 양(量) 맛촤 먹은 후에
모재*를 다시 쓸고 북창하(北窓下)에 누엇시니
눈 압해 태공 부운*이 오락가락 하놋다
<제3곡>
공산리(空山裏) 저 가난 달에 혼자 우난 저 두견아
낙화 광풍에 어나 가지 으지 하리
백조(百鳥)야 한(恨)하지 말아 내곳 설워 하노라
<제4곡>
저 가막이 즛지 말아 이 가막이 죳지 말아
야림 한연*에 날은 죠차 저물거날
어엿불사 편편 고봉*이 갈 바 업서 하낫다
<제5곡>
서산에 해 저 간다 고기 ᄇᆡ ᄯᅥᆺ단 말가
죽간*을 둘너 뫼고 십리 장사(十里長沙) 나려가니
연화* 수삼 어촌(數三漁村)이 무릉인가 하노라
<제6곡>
- 권구, 「병산육곡」 -
*망기: 속세의 일이나 욕심을 잊음.
*모재: 띠로 지붕을 이은 집.
*태공 부운: 넓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야림 한연: 들판 숲 속의 차가운 안개.
*편편 고봉: 훨훨 나는 외로운 봉황.
*죽간: 대나무 장대. 여기서는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
*연화: 안개가 피어오르는.
(나)
집 앞에는 조그만 시내가 있다. 이 시내는 냉악에서 발원하여 십 리쯤 흘러 이곳 월파진에 이른다. 집 앞에 이르러서 조금 깊어지기는 하지만 겨우 무릎이 잠기는 정도이고, 폭은 겨우 한 길 남짓 된다. 시내의 양쪽 언덕에는 오래된 버드나무 두어 그루가 있는데, 가지가 무성하여 냇물을 뒤덮을 정도이다. 이 시내와 버드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냇물은 상쾌함을 풍기고 버드나무 또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이 마음에 들어, 앉고 누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로 하였다.
마침내 젊은이들과 함께 궁리하여 규모를 정하고 이웃의 친구에게서 시내를 가로지를 만한 상수리나무 두 개를 얻어 오고 젊은이들에게 쓸 만한 나무 수십 개를 베어 오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긴 나무는 세로로 놓고 짧은 나무는 가로로 놓아 칡덩굴로 단단하게 엮어서 평상을 만들었다. 이것이 시내에 걸쳐 있으므로 ‘계상(溪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다만 그 지세가 낮고 좁아 훤하게 탁 트인 경관이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듣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속세의 잡다한 일들을, 이 계상에 의지하여 모두 다 나의 이목(耳目)에서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그윽하고 고요한 정취를 느낄 수 있으니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냉악이 동북쪽으로 높이 치솟아 있으며, 깎아지른 절벽이 천 길 높이로 하늘과 맞닿아 있고, 오래된 소나무와 전나무가 산등성이와 계곡에 우거져 있어, 나의 명상을 일으키고 나의 흥취를 북돋아 준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니, 여기서야말로 번거로운 일들을 말끔히 잊고 흥겹게 지낼 만하다. 쉬기도 여기서 쉬고 생활도 여기서 하고 책도 여기서 보고 시도 여기서 읊으니, 이곳에서 못하는 일이 없다. 간혹 해가 질 무렵이면 심부름하는 아이가 ㉡탁주 한 사발을 가져오기도 하는데, 쭈욱 들이키고 나면 막힌 가슴 속이 절로 트여 몸의 원기가 왕성하게 솟아오른다.
그러면 드디어 일어나 망건을 젖혀 쓰고 옷깃을 느슨히 하고 이리저리 거닐면서 둘러본다. 높은 산은 어찌 저리도 낮으며 먼 하늘은 어찌 저리도 가까운 것일까? 몸은 한 평상을 떠나지 않았는데, 정신은 우주 공간을 유람한 것 같으니, 이 어찌 깊은 운치가 아니겠는가? 때로 나른하고 싫증이 나면 스르르 팔 베고 엎드려 흐르는 냇물을 바라본다. 물고기들이 떼 지어 작은 물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제 나름대로 즐거워하는 모습은 더욱 보고 즐길 만하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보내니, 이것이 계상에서의 즐거움이다.
이 평상은 애초에 계획했던 일이 아니라 우연히 만든 것으로 질박하고 졸렬한 채로 놓아두고 애써 깎고 다듬지 않았기에 나에게 적당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떨어져 있고, 당우*에 이어져 있지도 않다. 또 땅에 닿아 있지 않고 냇물 위에 걸쳐 있어 그 아래로는 물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고 있으니, 내가 찾던 진정한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무릇 만물은 원래 붙어 있는 곳이 없을 수 없지만, 붙어 있는 곳에 집착하여 얽매여 있어도 안 되는 것이다. 오직 자연의 이치에 맡겨서 외물(外物)의 유혹에 이끌리지 말고 사심(私心) 없이 물(物)이 오가는 대로 두어야 한다. 나아가 천하의 일에 있어서 오로지 주장함도 없고,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도 없어야 한다. 공평하고 바른 마음으로 만나는 바에 따라 마땅하게 잘 처리하고 때에 따라 잘 변화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붙어 있으면서도 한곳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어 궁하여 뉘우침이 있는 데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
- 장현광, 「계상설」 -
*당우: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34. (가), (나)의 공통점으로 적절한 것은?
①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체념하는 태도가 나타나 있다.
② 번잡한 속세와 거리를 두고자 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③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나 있다.
④ 대상의 부재에서 느끼는 안타까운 심정이 나타나 있다.
⑤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 나타나 있다.
35. (가)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제1곡>에서 ‘부귀’를 구하지 말고 ‘빈천’을 싫어하지 말라는 것은 ‘망기’를 지향하는 화자의 태도를 드러낸다.
② <제2곡>에서 ‘천심 절벽’은 ‘백구’를 벗으로 삼는 ‘어조 생애’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에 해당한다.
③ <제4곡>에서 ‘낙화 광풍’에 의해 의지할 곳 없이 ‘혼자’ 우는 ‘두견’의 처지는 ‘설워 하’는 화자의 심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④ <제5곡>에서 ‘저 가막이’가 ‘즛’는 것과 ‘이 가막이’가 ‘죳’는 것은 ‘편편 고봉’이 놓인 부정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⑤ <제6곡>에서 ‘수삼 어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삶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 태도가 ‘무릉인가 하노라’로 드러난다.
36. <보기>를 참고하여 (나)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장현광의 호는 ‘여헌(旅軒)’이다. ‘여(旅)’는 나그네라는 뜻이고, ‘헌(軒)’은 집이라는 뜻이다. ‘여헌’이란 말에는 사방 모든 것이 자신의 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에게 ‘여헌’은 일정한 장소와 고정된 형태가 없는 것으로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편안함과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그는 진정한 즐거움이란 어떤 외부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데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① ‘버드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있는 ‘냇물’은 고정된 형태를 지니지 않은 것으로 글쓴이에게 만족감을 주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겠군.
② ‘계상’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글쓴이는 ‘계상’을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여헌’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겠군.
③ 글쓴이가 ‘한 평상’에서 ‘우주 공간을 유람한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계상’이 글쓴이에게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주는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겠군.
④ ‘냇물’ 속에서 ‘떼 지어’ 놀고 있는 ‘물고기들’은 일정한 장소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물고기’들의 즐거움은 글쓴이가 지향하는 ‘진정한 즐거움’과 상반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군.
⑤ 글쓴이가 말한 것처럼 ‘때에 따라 잘 변화’해 ‘한곳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으려면 어떤 외부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볼 수 있겠군.
37. ㉠과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 ㉡은 모두 현실에 대응하는 자세를 성찰하도록 이끄는 소재이다.
② ㉠, ㉡은 모두 자연과의 조화와 합일을 이루는 계기가 되고 있는 소재이다.
③ ㉠, ㉡은 모두 강호 공간에서의 자기 절제로 인한 내적 갈등을 보여 주는 소재이다.
④ ㉠은 소박한 삶의 모습을, ㉡은 자적하는 삶 속에서 고조된 흥취를 드러내는 소재이다.
⑤ ㉠은 외로운 처지를 한탄하는, ㉡은 타인과의 관계 형성을 소망하는 태도를 부각하는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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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② | 35 | ② |
36 | ④ | 37 | 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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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7] (고전시가복합) (가) 권구, ‘병산육곡’ / (나) 장현광, ‘계상설’
(가) 권구, ‘병산육곡’
이 작품에는 향촌에 머무르는 삶에 대한 만족감이 드러난 한편, 정치 상황에 대한 근심도 드러나 있다.
(나) 장현광, ‘계상설’
시내에 걸쳐진 평상에서 머무르며 느낀 즐거움을 쓴 고전수필이다. 평상 밑으로 흐르는 물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몸을 맡겨 외물의 유혹에 물들지 않으려는 작가의 삶의 태도와 통하는 것이다.
34. [출제의도] 작품 간의 공통점을 파악한다.
(가)의 <제2곡> 종장과 (나)의 세 번째 단락을 통해 (가)의 화자와 (나)의 글쓴이가 번잡한 속세와 거리를 두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5. [출제의도] 화자의 태도를 이해한다.
‘천심 절벽’은 화자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의 자연적 배경이다. 화자가 세속의 일을 잊고 자연과 더불어 ‘어조 생애’를 즐기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인 것이다. ‘어조 생애’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아니다.
36. [출제의도] 다양한 맥락을 고려해 작품을 감상한다.
‘물고기들이 떼 지어 작은 물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제 나름대로 즐거워하는 모습’은 ‘자연의 이치에 맡겨서 외물의 유혹에 이끌리지 말고 사심 없이 물이 오가는 대로 두어야 한다.’에서 드러나고 있는 글쓴이의 삶의 태도와 상통하는 것이다.
37. [출제의도] 소재의 의미를 이해한다.
‘자적’은 ‘아무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김’이라는 뜻이다. ㉠은 소박한 음식을 통해 소박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재이고, ㉡은 계상에서 자적하는 삶 속에서 고조된 흥취를 드러내는 소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