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9]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자라가 기막혀 우는 말이,
“㉠못 보겠네, 못 보겠네, 병든 용왕 못 보겠네. 나의 충성 부족던가, 나의 정성 부족던가? 객사 신세 자라 팔자, 이 아니 불쌍한가? 명천이 감동하와 백호를 죽여 주오, 애고애고 설운지고.”
이렇듯이 슬피 우니 호랑이 듣고,
“이놈, 무슨 내게 해로운 소리만 하느냐?”
자라 생각하되,
‘왕명을 받들어 만 리 밖에 나와 이 지경을 당하니 한 번 죽지 두 번 죽음은 없는지라. 먹지 않는 것 없이 몽땅 먹는다 하니 내 한번 고기 값이나 하리라.’
하고 모진 마음을 굳게 먹고,
“어따, 네가 내 근본을 알려느냐?”
하며 호랑이 앞턱을 냅다 물고 매어 달리니, 호랑이가,
“애고, 놓아. 아니 먹으마.”
자라 놓고 나앉으며 움츠렸던 목을 길게 빼어 염려 없이 기세를 보이니, 호랑이 보더니,
“이크, 장사 갑주 속의 방망이 총 나온다.”
하며 저만치 물러앉으니, 자라 호랑이 질려 하는 낌새를 알고,
“그대가 내 근본을 자세히 아는가? 나는 수국충신 간의대부 겸 시랑 별주부, 별나리라 하네.”
호랑이 무식하여 자라 별자 못 알아듣고 무수히 새겨,
“별나리, 별나리, 그저 나리도 무섭다 하되 별나리 더 무섭다. 생긴 모양보다는 직품은 높고 찬란한데, 그러면 목은 어찌 그리 되었으며, 이곳에는 어찌 나왔는가?”
자라 대답하되,
“이곳 나오고 목이 이리 된 근본을 알려나?” “어디 좀 알아보세.”
“㉡우리 수궁이 퇴락하여 새로 다시 지은 후에 천여 개 기와를 내 손으로 이어갈 제, 추녀 끝에 돌아가다 한 발길 미끄러져 공중에서 뚝 떨어져 빙빙 돌아 나려오다 목으로 쩔꺽 내려 박혀 목이 이리 되었기로 명의더러 물어보니 호랑이 쓸개가 약이 된다 하기에 벽력 장군 앞세우고 도로랑 귀신 잡아타고 호랑이 사냥 나왔으니 게가 호랑이면 쓸개 한 보 못 주겠나. 도로랑 귀신 게 있느냐? 어서 급히 빨리 나와 용천검 드는 칼로 이 호랑이 배 갈라라, 도로랑!”
하고 달려드니 호랑이 깜짝 놀라 물똥을 와락 싸고, ㉢초나라 노랫소리에 놀란 패왕 포위 뚫고 남쪽으로 달아나듯, 적벽강 불 싸움에 패군장 위왕 조조 정욱 따라 도망하듯, 북풍에 구름 닫듯, 편전살 달아나듯, 왜물 조총 철환 닫듯, 녹수를 얼른 건너 동쪽 숲을 헤치면서 쑤루쑤루 달아나 만첩청산 바위틈에 혼자 앉아 장담하고 하는 말이,
“내 재주 아니런들 도로랑 귀신 피할손가? 하마터면 죽을 뻔하였구나.”
(중략)
한창 이리 춤을 출 제, 대장 범치 토끼 옆에 섰다가,
“이크, 토끼 뱃속에 간이 촐랑촐랑하는구나.”
토끼 깜짝 놀라,
‘어떤 게 간이라고? 뱃속에 물똥이 들어 촐랑거리는 걸 간이라 하것다. 아뿔싸, 낌새를 보아 떠나라고 하였거니 즉시 가는 것만 못할지고.’
이리할 제 별주부 잔치에 참여하였다가 눈을 부릅떠 토끼를 보며 가만히 꾸짖어 왈,
“내 듣기에도 촐랑촐랑하는 것이 분명한 간인 듯하거든 네 저러한 꾀로 우리 대왕을 속이려 하느냐?”
토끼 마음에 분하여 잔치가 끝난 후 왕께 아뢰어,
“소토 세상에서 약간 의서를 보았거니와 음허화동(陰虛火動)으로 난 병에 원기 회복하기는 왕배탕이 제일 좋다 하오니 왕배는 곧 자라라, 오래 묵은 자라를 구하여 쓰면 기운이 자연 회복할 것이요, 그 다음에 소토의 간을 쓰면 병세 며칠 안으로 나으리다.”
왕이 이때 토끼 말이라 하면 사슴을 말이라 해도 믿는지라. 즉시 명령을 내리되,
“세상에 나갔던 별주부 오래 묵었으니 법을 좇아 잡아들이라.”
하니 현의도독 거북이 아뢰기를,
“㉣옛 말씀에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고 높이 뜬 새 없어지면 좋은 활이 숨는다.’ 하였사오니 선생 말씀이 옳사오나 주부는 만리타국의 정성을 다하여 공을 이루고 왔삽거늘 제후로 봉하기는 고사하고 죽이는 것은 이웃나라가 알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나이다. 특별히 권도(權道)를 좇아 암자라로 대용하심을 바라나이다.”
왕 왈, “윤허하노라.” 하시니라.
이때 별주부 천지 망극하여 집에 돌아와서 부부 서로 손을 잡고 통곡하다가 문득 생각하여 왈,
“내 일시 경솔한 말로 음해를 만나 무죄한 부인을 이 지경을 당하게 하였거니와 천 리를 함께 온 정이 적지 아니하고 제 마음이 악독하여 고집스럽지 않으니 우리 정성을 다하여 빌면 다시 측은히 생각하여 구해 주리라.”
하고, ㉤즉시 별당을 깨끗이 치우고 잔치를 배설하여 토끼를 정으로 청하여 상좌에 앉히고 별주부 내외 당하에 꿇어 백배 애걸하는 말이,
“오늘날 우리 두 사람 목숨이 선생께 달렸으니 넓으신 도량으로 짐작하여 잔명을 구하여 주옵소서.”
토끼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웃어 왈,
“네 당초에 날 죽을 곳으로 유인함도 마음에 고이하거늘 하물며 없는 간을 있다 하여 기어이 죽이려 함은 무슨 일이며, 위태한 때에 이르러 애걸하는 것은 나를 조롱함이냐?”
- 작자 미상, 토끼전 -
37. 윗글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별주부가 호랑이 앞에서 고기 값이나 하겠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상대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② 호랑이가 별주부의 외양에서 떠올린 갑주와 방망이 총은 상대와 맞설 의지를 갖게 하는 것이다.
③ 호랑이가 바위틈에서 자기 재주를 장담하는 것은 패배를 설욕하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④ 토끼가 낌새를 보아 떠나라는 말을 떠올리고 즉시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용왕의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는 의지 때문이다.
⑤ 별주부가 부인이 대신 죽게 된 것을 자신의 경솔한 말과 음해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 죽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8.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유사한 어구의 반복과 대구를 통해 인물의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② ㉡ : 의태어를 활용하여 대상의 움직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③ ㉢ : 동일 행위에 대한 다양한 묘사를 통해 대상이 처한 긴박한 상황을 역동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④ ㉣ : 고사를 활용하여 상대에게 화자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⑤ ㉤ : 편집자적 논평을 통해 인물의 행위에 대한 서술자의 시각을 보여 주고 있다.
39.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토끼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적절히 활용하여 상대를 설득하거나 공박하는 지혜의 대결을 서사의 기초로 한다. 인물들은 상대가 모르거나 상대에게 불리한 화제로 대화를 이끄는 것 같은 방법을 통해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려 하며, 불리한 국면에서는 제삼자를 끌어들이거나 대결을 회피하기도 한다.
① 별주부는 호랑이가 모르는 별주부 자신의 근본으로 화제를 이끌어 자신의 우위를 확보해 나가고 있군.
② 호랑이는 별나리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어 별주부에게 자신을 공략할 빌미를 제공하고 있군.
③ 별주부는 범치가 토끼의 간에 대해 말한 바를 가지고 토끼를 회유하여 토끼와의 대결을 회피하고 있군.
④ 토끼는 용왕의 병과 관련하여 자신으로부터 별주부로 화제를 옮김으로써 불리한 상황을 벗어나려 하고 있군.
⑤ 토끼는 별주부가 자신을 유인했던 과거의 일을 화제로 끌어 들여 자신의 우위를 강화하고 있군.
37. ① 38. ⑤ 39. ③
[37-39] 고전소설 - 작자 미상, ‘토끼전’
작품해설 : 이 작품은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 세상의 일을 해학과 풍자를 통해 드러낸 작품이다. 수궁에 가면 호의호식하며 높은 벼슬을 할 수 있다는 자라의 거짓말에 속아 목숨을 잃을 지경에 처한 토끼가 기지를 발휘하여 무사히 육지로 돌아오는 사건 을 통해 권력층의 무도함에 대처하는 서민의 발랄한 재치를 보여 주고 있다. 인용된 지문의 앞부분에서는 용왕의 명을 받아 육지로 나온 자라가 호랑이에게 잡혀 죽을 뻔한 위기 상황이 나타나 있으며, 중략 이후의 내용에서는 간을 두고 왔다는 토끼의 말 에 속아 넘어간 용왕의 토끼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이를 바탕으로 자라에게 복수하려는 토끼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주제] 허욕에 대한 경계와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의 중요성
37. 인물의 심리 파악
정답해설 : 육지에 나온 자라가 호랑이를 만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자라는 백호를 죽여 달라며 하늘에 빌다가 “일사면 도무사라. 무이불식이라, 먹지 않는 것 없이 몽땅 먹는다 하니 내 한번 고기 값이나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진 마음을 굳게 먹 고’ 오히려 큰소리치며 호랑이를 위협한다. 이를 통해 볼 때, ‘고기 값이나’ 하겠다는 것은 자신이 설혹 죽더라도 무기력하게 그냥 당하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에게 한번 대 항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정답 ①
[오답피하기] ② 자라에게 느닷없이 앞턱을 물린 호랑이는 일단 주춤한 상태이며, 그 상황에서 움츠렸던 목을 길게 뺀 자라의 모습은 갑옷을 잘 갖추어 입고 총을 빼든 것처럼 느껴져 호랑이는 겁을 먹고 있다. ‘자라 호랑이 질려 하는 낌새를 알고’를 통해 자라를 두려워하는 호랑이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다. ③ 자라가 ‘도로랑 귀신’ 운운 하며 겁을 주자, 호랑이는 깜짝 놀라 물똥을 싸고 도망간다. 겨우 자라에게서 도망친 후, 호랑이가 바위틈에서 장담하는 “내 재주 아니런들 도로랑 귀신 피할손가? 하마터면 죽을 뻔하였구나.”라는 말은 허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패배를 설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④ 토끼가 “낌새를 보아 떠나라고 하였거니”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은 범치가 춤을 추는 토끼를 보다가 “뱃속에 간이 촐랑촐랑하는구나.”라고 말했기 때문으로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자칫 낭패에 빠질 수 있음을 생각한 것이다. ⑤ 별주부 자 라는 잔치에서 범치의 말을 듣고 토끼를 질책하며 대왕을 속이려 한다고 꾸짖는다. 이에 토끼가 분한 마음을 품고 왕배탕 얘기를 용왕에게 하여 결국 자라 대신 자라의 부인이 죽게 된 상황이다. 자라는 경솔한 말로 인해 음해를 당한 것에 대해 부인에게 얘기하며 토끼에게 용서를 빌자고 말하는데, 이는 자신이 죽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살아날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38. 구절의 표현 및 의미 파악
정답해설 : ㉤은 별주부 자라가 부인의 죽음을 막기 위해 토끼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 용서를 비는 상황을 서술한 부분이다. ‘치우고’, ‘배설하여’, ‘앉히고’, ‘애걸하는’ 등 부부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지, 서술자의 주관적 의견이 드러나는 편집 자적 논평이 사용된 것은 아니다. 정답 ⑤
[오답피하기] ① ‘못 보것네’의 반복, ‘나의 충성 부족던가’와 ‘나의 정성 부족던가’의 대구를 통해 용왕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고 객사하게 될 자신의 팔자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 ② ‘큰 물체나 물방울 따위가 아래로 떨어지는 모양.’의 의미를 지닌 ‘뚝’, ‘약간 넓은 일정한 범위를 자꾸 도는 모양.’의 의미인 ‘빙빙’, ‘크고 단단한 물체가 맞부딪치는 모양’의 의미를 지닌 ‘쩔꺽’ 등의 의태어를 사용하여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자라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③ 패왕이 달아나는 모습, 조조가 도망하는 모 습, 북풍을 타고 구름이 빠르게 가는 모습, 편전살(화살)이 날아가는 모습, 조총의 탄환이 나는 모습 등 다양한 비유를 통해 호랑이의 도망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④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고 높이 뜬 새 없어지면 좋은 활이 숨는다’는 고사를 인용하여 공이 있는 자라를 죽이려는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표현하면서도, 자라 의 공적을 내세워 암자라로 대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39.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정답해설 : 용왕이 베푼 잔치에서 토끼가 춤을 추는데, 용궁의 대장인 범치가 토끼의 옆에서 “토끼 뱃속에 간이 촐랑촐랑하는구나.”라고 말하자 별주부가 그 말을 거들면 서 “내 듣기에도 촐랑촐랑하는 것이 분명한 간인 듯하거든 네 저러한 꾀로 우리 대왕을 속이려 하느냐?”라며 꾸짖는다. 이는 토끼에게 불리한 내용인 배에 간이 들어있다 는 것을 화제로 삼아 상대를 공박하려는 것으로, 토끼를 회유하거나 토끼와의 대결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토끼의 말이 거짓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정답 ③
[오답피하기] ① “내 근본을 자세히 아는가”, “이곳 나오고 목이 이리 된 근본을 알려 나?” 등 호랑이에게 자신의 근본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 후, 호랑이가 모르는 자 신의 근본에 대해 거짓으로 꾸며대면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② “별나리, 별나리, 그저 나리도 무섭다 하되 별나리 더 무섭다”는 호랑이의 말은 자라 별자를 알아듣지 못한 무식의 소치로, 별나리를 무서워하는 호랑이의 반응을 보며 자라는 큰소리를 치 며 호랑이를 위협하고 있다. ④ 범치와 자라가 토끼의 배에 간이 들어있다는 말을 하 자 토끼는 놀라면서도 한편 자신을 해치려는 자라에게 분노하여 원기회복을 위해 왕배탕을 먼저 먹은 후 자신의 간을 쓰면 효과가 좋으리라고 용왕에게 말하면서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고 있다. ⑤ 별주부 부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빌며 목숨을 구해 달라고 빌자, 토끼는 자신을 용궁으로 유인한 과거의 잘못을 따지며 우위를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