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 줄거리] 탄광의 14번 갱에서 가스 누출로 인한 폭발 사고가 일어나 최씨를 비롯해 다섯명의 광부들이 죽고 만석이 혼자 살아 나온다. 소장과 노조 지부장은 영동 탄광의 현장 사무소에서 사고를 수습하려고 애를 쓴다.
지부장: 소장님, 문제는 두 가지 아닙니까? 첫째는 보상금 문제, 둘째는 감정적인 문제죠. 사고가 일어나면 언제나 사상자에 대한 보상금 액수 때문에 말썽이구요, 또 광부들의 격앙된 감정 때문에 애를 먹거든요. 이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14번 갱의 작업이 빨라지느냐 아니면 늦어지느냐가 달린 거죠.
소장: 늦어져서는 안 돼, 절대로!
지부장: 그렇다면 이번 사고는 고의적인 사고라고 해야 합니다.
소장: ……고의적 사고라니?
지부장: 이를테면…… 갱내에서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어겨서 생긴 사고라든가…… 가령 어떤 광부가 금지된 성냥을 켰다…… 더구나 그 성냥으로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였다. …… 물론 자기 목숨을 일부러 끊어 버릴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말입니다…….
소장: 그게 무슨 소리야? 어떤 병신 같은 자식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어?
지부장: 하지만 사람이란 죽고 싶은 경우도 있거든요. 산다는 게 무의미하다든가, 불치의 병에 걸려 괴롭기만 하다든가, 가난에 쪼들려서 살 맛이 없다든가……. 그런 사람을 이번 사망자 중에서 찾아내는 거죠.
소장: 그렇지만 지부장…… 죽은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사고를 낸 거라구 말할 수 있나?
지부장: 물론 죽은 사람은 말해선 안 됩니다. 오히려 산 사람을 말하도록 해야지요. 돈을 좀 준다든가 힘든 일을 쉬운 일로 바꿔 준다든가……. 그렇게 해서 마치 사고 현장에서 목격한 것처럼 말하도록 하는 겁니다.
소장: 그래, 바로 그거야! 내가 생각해 내라고 했던 것이 바로 그거라구!
(중략)
읍내 병원의 일실, 침대 위에 눕혀져 있는 만석, 아직도 그는 인사불성인 채링거 주사를 맞고 있다. 곁에 지부장이 앉아서 만석이 깨어나기를 기다린다. 사이, 만석은 신음 같기도 하고 심호흡 같기도 한 소리를 낸다. 지부장, 그를 흔든다.
지부장: 여봐, 만석이! 정신 차리라구!
만석: (몸을 뒤채이다가 눈을 뜬다.)
지부장: 오, 눈을 떴군 그래!
만석: 여기가…… 어딥니까?
지부장: 읍내 병원이야. 자넨 이틀 동안 꼬박 누워 있었어.
만석: (사방을 둘러보며) ……. 병원? 지부장님, 왜 내가 여기에 있죠?
지부장: 사고가 났었잖아, 자네가 일하던 14번 갱에서. 기억나나?
만석: 네……, 14번 갱…….
지부장: 만석이, 자넨 운이 좋았어. 축하한다구……. 왜 울상인가?
만석: 저어, 지부장님…….
지부장: 아, 오줌이 마려워서? 그래, 링거를 오래 맞으면 오줌이 마려운 거야. 미안해할 것 없어. 날 꼭 잡아, 자넬 세워 줄 테니까. (그는 만석을 일으켜 세워 뒤돌아 앉게 하고 요기를 받쳐 준다.) 조심해서 누워.
만석: 몇 명이나 죽었습니까? 이번엔?
지부장: 다섯 명이야. 지난번 사고 때보다는 적은 셈이지.
만석: 살아온 사람은요?
지부장: 자네 혼자야, 만석이.
(만석 요기를 내놓는다. 지부장은 친절하게 그를 부축해서 다시 침대에 눕힌다.)
지부장: 역시 산다는 건 좋은 거야.
만석: (침묵)
지부장: 그렇잖아?
만석: (침묵)
지부장: 자네…… 울고 있군. 그래, 실컷 울어. 만석이…… 창밖을 바라봐. 화사한 꽃들이 피어 있구 나비들이 날고 있어. 더구나 저 하늘을 보라구. 햇빛이 기막히구만! 갱 속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지만 말야. 그래도 살아 있으니까 이렇게 볼 기회가 있는 거라구.
만석: 고맙습니다, 지부장님. 나를 살리려구…… 입원까지 시켜 주셔서…….
지부장: 뭘, 내 직책이 이런 거지. 그런데 만석이…… 지난번 건강 진단때…… 의사가 자네 몸이 좋질 않다구 했었지? 그래서 이왕 병원에 들어온 김에 아주 세밀하게 검사해 보라구 했어. (흉곽을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꺼내 보이며) 엑스레이도 큼직하게 다시 찍고 말야.
만석: 고맙습니다. 정말…….
지부장: 자넨 규폐증에 걸렸다는군. 양쪽 폐가 이렇게 석탄 덩어리처럼 단단히 굳어지기 시작했다는 거야.
(만석, 상반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엑스레이 필름을 나꿔채듯이 빼앗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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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부장: 규폐증에 걸리면 잘 먹어야지. 몸도 함부로 쓰지 말구. 그래야 생명이 조금이라도 더 연장되는걸. 만석이, 자네 좀 쉬운 일로 옮겨 주지. 하늘도 바라보이고 맑은 공기도 맘껏 마실 수 있는……. 소장님도 약속하셨어. 자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마구. 대신 말야, 소장님도 자네한테 원하는 게 있으신가 봐. |
[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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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 그게 뭡니까?
지부장: 뭐 천천히 말해 주지. 지금은 편안하게 좀 누우라고. (만석을 부축하여 눕힌다.) 이젠 그 지긋지긋한 갱 속은 잊어버려. 자네 부인도, 또 자네 아들도 좋아할 거야.
(무대 전면, 지부장이 관객들에게 말한다.)
지부장: 만석이는 운이 터졌습니다. 고달픈 인생을 살다가 저렇게 운 한번 터지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만석이는 나를 생명의 은인이라구 했습니다. 그러자 내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사실 난 죽기 일보 전의 만석이를 읍내 병원까지 트럭으로 실어다가 입원시켜 줬고, 이틀 동안 지극히 간호하여 목숨을 살려 놨습니다. 그리고 이젠 새까만 갱 속이 아니라, 푸른 하늘을 언제나 바라볼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생명의 은인이란 뭐겠습니까? 실컷 고생만 하다가 죽는 사람이야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산 사람 하나만이라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생명의 은인이 할 도리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나는 만석에게 고마운 생명의 은인이 될 결심을 했습니다.
- 이강백, 「쥬라기의 사람들」 -
43. 윗글의 인물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만석’은 ‘지부장’이 자신을 위해 애를 쓴다고 생각하여 고마워한다.
② ‘지부장’은 ‘만석’을 매수해서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만들려고 한다.
③ ‘지부장’은 ‘만석’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같은 편의를 제공하려고 한다.
④ ‘소장’은 사고의 원인을 조작하려는 ‘지부장’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⑤ ‘소장’은 갱의 작업을 빨리 재개하는 것을 사고 수습의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44. <보기>를 참고할 때, 윗글을 공연하기 위한 의견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정통 연극에서 무대는 객석과 분리되어 있으며 관객들은 무대의 모든 인물과 사건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몰입하게 된다.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배우들은 극작가가 만들어 낸 인물이 되어야 하며, 무대 위의 상황도 현실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그러한 몰입이 관객의 비판적 능력을 약화한다고 생각하여 서사극을 시작하였다. 서사극에서는 관객이 사건에 몰입하려고 할 때,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연극’일 뿐이라는 것을 각인 시킨다.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서사극에서는 일부러 무대 장치를 노출하기도 하고, 배우가 관객들에게 말을 건넴으로써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이강백의 「쥬라기의 사람들」은 1980년에 일어난 탄광 노동 쟁의 사건이었던 ‘사북 사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쥬라기’는 석탄이 만들어진 시대를 이르는데, 이 작품에서는 석탄을 이용하는 문명화된 사회에서도 윤리 의식은 쥬라기에 머물고 있음을 비판하기 위해 서사극의 방법들을 사용한다.
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만석’은 초췌한 모습으로 분장하여 연극과 실제가 구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어.
② ‘소장’과 ‘지부장’이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실제 탄광 현장 사무소의 소품을 사용하여 실감이 나도록 해야겠어.
③ ‘지부장’이 무대 전면에 나서서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는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말을 건네는 것이 좋겠어.
④ ‘만석’이 ‘지부장’과 대화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는 조용한 배경 음악을 삽입하여 ‘만석’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
⑤ ‘만석’의 엑스레이 필름으로는 실제 규폐증 환자의 것을 준비하여 관객들이 탄광의 열악한 환경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야겠어.
45. [A]에 드러난 지부장의 말하기 방식으로 적절한 것은?
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완곡하게 충고하고 있다.
②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동정심에 호소하고 있다.
③ 상대방에게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하소연하고 있다.
④ 상대방에게 책임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⑤ 상대방을 위로하는 척하며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강백, 「쥬라기의 사람들」
{해제}
탄광촌의 매몰 사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현실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잘못을 저질렀으면서도 뉘우칠 줄 모르는 부정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줌으로써 독자들의 비판적인 시선을 유도한다. 이른바 문명한 현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쥬라기(석탄이 만들어지던 선사 시대)와 같이 어둡고 암담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광부들을, 또한 그러한 상황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모순에 처한 탄광촌 가족들의 실존적인 모습을 독특한 시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주제}
현실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
{전체 줄거리}
탄광의 14번 갱에서 가스 누출로 폭발 사고가 일어나 다섯 명의 광부가 죽고 만석만 살아 나온다. 소장과 노조 지부장은 여러 조건을 제시하며 만석에게 거짓 증언을 요구하고 이에 대해 만석은 갈등을 한다. 그러던 중 만석이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으로부터 합창단복의 구입을 부탁받게 되고, 소장과 노조 지부장이 만석의 이름으로 합창단복을 구입해 준다. 하지만 합창단에 끼지 못한 아이들은 새 옷을 입은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자신들은 광부밖에 될 수 없다며 좌절감을 느끼고 갱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만석은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도록 여러 노력을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만석이 갱으로 들여보낸 아들 진욱이 아이들이 가스에 중독되어 쓰러져 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되고, 사람들이 급히 아이들을 구하러 갱으로 들어가게 된다.
43. ④ 인물의 태도 파악
{정답 해설}
소장은 사고 원인을 죽은 사람의 잘못으로 몰려는 지부장의 의견에 의문을 가지지만, 산 사람을 매수해서 조작하겠다는 의견을 듣고 동의를 한다.
{오답 해설}
① 만석은 지부장이 자신을 살려 주고 입원까지 시켜 준 데 대해 고마워하고 있다.
② 지부장은 살아남은 사람을 매수해서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조작하려 하는데,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만석뿐이다.
③ 지부장은 만석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갱이 아닌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려 하고 있다.
⑤ 소장은 사고 수습에 대해 ‘늦어져서는 안 돼, 절대로!’라고 하여 갱의 작업을 빨리 재개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4. ③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정답 해설}
지부장이 무대 전면에 나서서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애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서사극의 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오답 해설}
① 분장을 통해 연극과 실제가 구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통 연극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② 실제와 같은 소품을 사용하여 실감 나도록 하는 것은 정통 연극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④ 무대 위의 인물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통 연극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⑤ 서사극에서 비판적 거리는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연극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실제와 같은 소품을 준비해서 비판하도록 했다는 것은 서사극의 이론과 맞지 않는다.
45. ⑤ 말하기 방식 추론
{정답 해설}
[A]에서 지부장은 만석을 위로하는 척하며 쉬운 일자리로 옮겨 주겠다고 회유하면서 소장도 원하는 게 있다고 말한다. 이로 볼 때, 지부장은 만석을 위로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함을 알 수 있다.
{오답 해설}
① 만석의 마음을 헤아려 완곡하게 충고하려는 말로 볼 수 없다.
② 만석을 설득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정심에 호소하고 있지 않다.
③ 만석에게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하소연하기보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만석을 위로하는 척하고 있다.
④ 만석에게 책임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전달하려고 한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