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인화 부인 이르되,
“그대네는 다투지 말라. 나도 잠깐 공을 말하리라. 미누비 세누비 눌로 하여 저가락 같이 고우며, 혼솔이 나 곧 아니면 어찌 풀로 붙인 듯이 고우리오. 침재(針才) 용속(庸俗)한 자가 들락날락 바르지 못한 것도 나의 손바닥을 한번 씻으면 잘못한 흔적이 감추어져 세요의 공이 나로 인하여 광채 나느니라.”
울 낭자 크나큰 입을 버리고 너털웃음으로 이르되,
“인화야, 너와 나는 소임 같다. 연이나 인화는 침선뿐이라. 나는 천만 가지의 의복에 아니 참여하는 곳이 없고, 가증한 여자들은 하루 할 일도 열흘이나 구기여 살이 주역주역한 것을 나의 광둔(廣臀)*으로 한 번 스치면 굵은 살 낱낱이 펴지며 제도와 모양이 고와지고 더욱 하절(夏節)을 만나면 소임이 다사하야 일일도 한 가하지 못한지라. 이러므로 나의 작은 공이 내 제일이 되나니라.”
규중 부인이 이르되,
“칠우의 공으로 의복을 다스리나 그 공이 사람의 쓰기에 있나니 어찌 칠우의 공이라 하리오.”
하고 말을 마침에 칠우를 밀치고 베개를 돋우고 잠을 깊이 드니, 척 부인이 탄식하고 이르되,
“매야할사 사람이여. 공 모르는 것은 여자로다. 의복 마를 제는 먼저 찾고 일워 내면 자기 공이라 하고, 게으른 종 잠 깨우는 막대는 나 곧 아니면 못칠 줄로 알고 내 허리 부러짐도 모르니 어찌 야속하고 노엽지 아니하리오.”
교두 각시 이어 가로되,
“그대 말이 옳아. 옷 말라 자를 때는 나 아니면 못하련마는 잘 드니 안 드니 하고 내어던지며 양각을 각기 잡아 흔들 제는 불쾌하고 노엽기 어찌 측량하리오. 세요 각시 잠깐이나 쉬랴 하고 달아나면 매양 내 탓만 여겨 내게 트집하니, 마치 내가 감춘 듯 이 문고리에 거꾸로 달아 놓고 좌우로 돌아보며 앞뒤로 시험하여 얻어 내기 몇 번인 줄 알리오. 그 공을 모르니 어찌 애원하지 않으리오.”
세요 각시 한숨 지으며 이르되,
“내 일찍 무슨 일로 사람의 손에 보채이며 요악지성(妖惡之聲)*을 듣는고. 각골통한(刻骨痛恨)하며, 더욱 나의 약한 허리 휘두르며 날랜 부리 두루혀 힘껏 침선을 돕는 줄은 모르고 마음 맞지 않으면 나의 허리를 부러뜨려 화로에 넣으니 어찌 통원하지 않으리오. 사람과는 극한 원수라. 갚을 길 없어 이따금 손톱 밑을 찔러 피를 내어 한을 풀면 조금 시원하나, 간흉한 감토 할미 밀어 만류하니 더욱 애달프고 못 견디리로다.”
인화가 눈물지어 이르되,
“나는 무슨 죄로 포락지형(炮烙之刑)*을 입어 붉은 불 가운데 낯을 지지며 굳은 것을 깨치기는 나를 다 시키니 섧고 괴롭기 측량하지 못할레라.”
울 낭자 근심스런 얼굴로 이르되,
“그대와 소임이 같고 욕되기 한가지라. 제 옷을 문지르고 멱을 잡아들고 우겨 누르니, 황천이 덮치는 듯 심신이 아득하여 나의 목이 따로 날 적이 몇 번인 줄 알리오.”
칠우 이렇듯 담론하여 회포를 이르더니 자던 부인 문득 깨쳐 칠 우에게 말하기를,
“칠우는 내 허물을 그토록 말하느냐.”
감토 할미 머리를 조아리며 이르되,
“젊은 것들이 망녕되어 생각이 없는지라. 저희들이 재주 있으나 공이 많음을 자랑하여 원망을 하여 대니 마땅히 곤장을 칠 만하되, 평소의 깊은 정과 저희 조그만 공을 생각하여 용서하심이 옳을까 하나이다.”
부인 답하여 이르기를,
“할미 말을 좇아 용서하리니, 내 손부리 성한 것이 다 할미 공이라. 꿰어 차고 다니며 은혜를 잊지 아니하리니, 비단 주머니를 만들어 그 가운데 넣고 몸에서 떠나지 않게 하리라.”
하니, 할미는 머리를 조아려 사례를 표하고 칠우는 부끄러워하며 물러나니라.
- 작자 미상,「규중칠우쟁론기」
*광둔: 넓은 볼기.
*요악지성: 요망하고 간악한 소리.
*포락지형: 뜨겁게 달군 쇠로 살을 지지는 형벌.
44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글쓴이는 인물의 외양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② 여러 가지의 고사를 인용하여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③ 글쓴이는 대화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제시하고 있다.
④ 대립적 공간을 제시하여 문제의 해결을 암시하고 있다.
⑤ 역설적 표현을 활용하여 인물의 참된 기능을 밝히고 있다.
45 윗글의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인화 부인’과 ‘울 낭자’는 하는 일이 겹치는 경우가 있다.
② ‘규중 부인’은 칠우의 공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고 있다.
③ ‘교두 각시’는 자신이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④ ‘세요 각시’는 은혜를 알지 못하는 ‘규중 부인’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
⑤ ‘감토 할미’는 칠우의 잘못을 말하며 ‘규중 부인’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
도움자료
[2014 EBS N제]-(A형)
44~45
44 ③ 45 ③
작자 미상,「규중칠우쟁론기」
이 작품은 규중 부인이 바느질에 사용하는 ‘자, 가위, 바늘, 실, 골무, 인두, 다리미’를 의인화하여 인간의 심리 변화와 이해관계에 따른 세태를 우회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각각의 바느질 도구를 척 부인, 교두 각시, 세요 각시, 청홍백 각시, 감토 할미, 인화 부인, 울 낭자 등 구체적 인물로 설정하여 생김새와 쓰임새를 생동감 있게 그려 내었다. 이 작품은 규중 칠우들이 공을 다투는 부분과 인간에 대한 원망을 하소연하는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에는 자신의 공을 내세우고 서로를 헐뜯는 모습으로 풍자의 대상이 되지만 후반부에서는 규중 부인, 즉 인간을 풍자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자랑하거나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자신의 역할과 직분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공치사만 일삼는 이기적인 세태 풍자, 역할과 직분에 따른 성실한 삶의 추구
■ 기: 규중 칠우에 대한 소개
■ 승: 규중 칠우의 자기 자랑
■ 전: 규중 칠우의 인간에 대한 원망
■ 결: 감토 할미의 사죄와 규중 부인의 용서
44 서술상의 특징 파악 ③
이 글은 의인화된 인물들과 규중 부인의 대화를 통해 각 인물의 고유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① 이 글에서 인물들은 바느질 도구를 의인화한 대상으로 이들의 외양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은 없다.
② 인물들의 대화 중에 한자 성어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고사를 인용하여 주제를 드러내는 부분은 나타나지 않는다.
④ 이 글에서 공간적 배경은 규중 부인의 방만 제시되고 있으므로 대립적 공간을 제시했다는 진술은 적절하지 않다.
⑤ 인물들이 자신들의 공과 기능을 올바로 알아주지 않는 규중 부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으나 역설적 표현이 나타나는 부분은 없다.
45 인물의 심리와 태도 이해 ③
‘척 부인’이나 ‘인화 부인’은 ‘규중 부인’이 자신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있다. ‘교두 각시’는 ‘규중 부인’이 ‘세요 각시’(바늘)가 없어지면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으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는다.
① ‘인화 부인’ 다음에 말하는 ‘울 낭자’는 자신의 소임이 ‘인화 부인’과 같은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② ‘규중 부인’은 칠우의 공으로 의복을 다스리나 그 공이 사람이 쓰기에 달린 것이라고 하면서 칠우의 공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고 있다.
④ ‘세요 각시’는 침선을 돕는 자신을, 마음이 맞지 않으면 허리를 부러뜨리고 버리는 ‘규중 부인’에게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⑤ ‘감토 할미’는 ‘규중 부인’에게 칠우의 잘못을 말하면서 혼을 낼 수도 있지만 그동안의 공을 생각하여 용서해 주기를 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