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8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안평 대군의 수성궁 터에서 잠이 들었다 깨어난 유영은 궁녀였던 운영과 김 진사에게 비극적인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 안평 대군은 궁녀들에게 궁 밖과의 인연을 금했으나, 운영은 김 진사와 사랑에 빠졌다.
“오늘 저녁은 어떠한 저녁이관데 이같이 훌륭한 분을 뵈옵게 되었을까.”
하였으나, 진사는 뜻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에는 답을 하지 아니 하고 초연히 즐거워하지 않고 있으니 무녀가 또 말하더랍니다.
“과부의 집에 젊은 남자가 어찌 왕래하기를 꺼리지 아니하는지요.”
진사가,
“점이 신통하다던데 어찌 내가 찾아오는 뜻을 알지 못하시오.”
하니, 무녀가 즉시 영전(靈前)에 나아가 앉아서 신에게 절을 하고는, 방울을 흔들고 접대롱을 어루만지면서 온몸을 추운 듯이 떨며 몸을 한참 움직이다가 입을 열어 말하더랍니다.
“당신은 정말로 가련합니다. 불안한 방법으로써 그 뜻을 이루기 어려운 계교를 성취시키고자 하니, 다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삼 년이 못 가서 황천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진사가 울면서 사례하고는,
“당신이 비록 말하지 아니해도 나는 다 알고 있소. 하오나 마음 속에 맺힌 한은 백 가지 약으로도 풀 수 없으니, 만일 당신으로 말미암아 다행히 편지를 전하게 된다면 죽어도 또한 영광이겠소.”
하자 무녀가,
“비천한 무녀로서 비록 신사(神祀)로 인해 때로 혹 드나들지만, 부르시는 일이 없으면 감히 들어가질 못합니다. 그러하오나 진사님을 위해 한번 가 보겠습니다.”
하더랍니다. 진사는 품속에서 한 봉지를 내주면서 말씀하였답니다.
“조심하오. 잘못 전하고서 화의 기틀을 만드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오.”
무녀가 편지를 가지고 궁문을 들어가니, 궁 안 사람들이 모두 그 옴을 괴이히 여기기에, 그 무녀는 권사(權詐)*로써 대답하고는 틈을 엿보아 들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저를 끌고 가서 편지를 주더이다. 제가 방으로 돌아와서 뜯어보니 그 편지의 사연은 이러 하였습니다.
‘한 번 눈으로 인연을 맺은 후부터 마음은 들뜨고 넋이 나가, 능히 마음을 진정치 못하고 매양 성 저쪽을 향하여 몇 번이나 애를 태웠는지요. 이전에 벽 사이로 전해 주신 편지로 해서 잊을 수 없는 옥음(玉音)을 공경히 받아 들고 펴기를 다하지 못 하여 가슴이 메이고, 읽기를 반도 못 하여 눈물이 떨어져 글자를 적시기에, 능히 다 보지를 못하였으니 장차 어찌 하오리까. ㉠이러한 후로부터 누워도 능히 자지를 못하고, 음식은 목을 내려가지 않고, 병은 골수에 사무쳐 온갖 약이 효험이 없으니 저승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직 소원은 조용히 죽음을 따를 뿐이오니,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고 신께서 도와주시와 혹 생전에 한 번이라도 이 원한을 풀어 주게 하신다면, 마땅히 몸을 부수고 뼈를 갈아서라도 천지신명의 영전에 제를 지내겠습니다. 편지를 쓰다 서러워서 목이 메이니, 다시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예를 갖추지 못하고 삼가 쓰나이다.’
사연 끝에는 칠언 사운 한 수가 적혀 있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였지요.
<중략>
저는 보기를 마치자 소리가 끊기고 기가 막혀서 입으로는 능히 말을 할 수 없었고, 눈물이 다하자 피가 눈물을 이었습니다. 병풍 뒤에 몸을 숨기고서 오직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였어요.
이러한 후로부터 잠깐 사이도 잊을 수가 없었으니, 시는 성정(性情)에서 나오는 것으로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하루는 대군이 비취를 불러,
“너희들 열 명이 한 방에 같이 있으니 업(業)에 전념할 수 없다.”
하시고 다섯 명을 서궁에 가서 있게 하셨습니다. 저는 자란·은섬·옥녀·비취와 같이 즉일로 옮겨 갔습니다. 옮기고 나서 옥녀가 말하기를,
“그윽한 꽃, 가는 풀, 흐르는 물, 꽃다운 수풀이 정히 산가(山家)나 야장(野庄)과 같으니, 참으로 훌륭한 독서당이라 할 수 있구나.”
하였습니다. 이에 제가 대답하기를,
“산인도 아니고 중도 아니면서 이 깊은 궁에 갇히었으니 정말로 이른바 장신궁이다.”
하였더니, 좌우 궁인들 모두가 자탄하고 울적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편지를 써서 뜻을 이루고자 하였으며, 진사도 지성으로 무녀를 섬겨 간절히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침내 오기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진사의 뜻이 자기에게 없음을 유감으로 여김이 없지 않아서 그랬을 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저녁에 자란이 저에게 말하기를,
“궁 안 사람들이 매년 중추에 탕춘대 밑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는 주석을 베풀었다가 파한다. 금년은 소격서동에서 한다고 하니, 갔다 왔다 하는 사이에 그 무녀를 찾아가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일까 한다.”
하기에 저는 그렇게 여겼습니다. 괴로이 중추를 기다리니, 하루가 삼추(三秋)*와 같았습니다. 비취가 그 말을 가만히 엿듣고는 짐짓 알지 못하는 체하고 저에게 말하였어요.
“네가 처음 올 때에는 얼굴빛이 이화와 같아서 화장을 하지 아니하여도 천연히 아름다운 자태가 있었던 까닭으로 궁 안 사람 들이 괵국부인*이라고 불렀는데, 요사이 와서는 얼굴빛이 옛날 보다 못하여 점점 처음과 같지 아니하니 이 무슨 까닭인가.”
그래서 제가,
“본래 기질이 허약하여 매양 더운 계절을 당하면 언제나 더워서 마르는 병이 있는데, 오동잎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휘장에 서늘한 기운이 나오면 그로부터 좀 나아집니다.”
하였더니, 비취는 희시(戱時) 한 수를 읊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희롱하는 뜻이 없지 않았으나 시상은 매우 절묘하였습니다. 저는 그 재주를 기특히 여기면서도 그 농에 대해서는 부끄럽게 여겼지요.
- 작자 미상,「운영전」
*권사: 권모(權謀)와 사기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삼추: 긴 세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괵국부인: 중국 당나라 현종의 비였던 양귀비의 언니.
55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무녀가 또 말하더랍니다’를 통해 진사가 겪은 일을 운영이 들은 것으로 처리하고 있군.
② ‘예를 갖추지 못하고 삼가 쓰나이다’에서는 진사의 목소리로 사건을 서술하고 있군.
③ ‘저는 보기를 마치자’에서 서술자가 운영임을 알 수 있군.
④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였어요’에서 운영은 자신의 마음을 진사에게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군.
⑤ ‘그랬을 것 같았습니다’에서 운영은 무녀의 행동의 이유를 추측하여 전달하고 있군.
56 윗글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로 적절한 것은?
① ‘무녀’는 ‘진사’가 찾아올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하고 있다.
② ‘진사’는 ‘운영’이 보낸 편지를 받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③ ‘대군’은 ‘무녀’가 다녀간 사실을 알고 죄를 묻고자 하고 있다.
④ ‘자란’은 서궁으로 떠나는 ‘운영’을 탕춘대에서 배웅하고 있다.
⑤ ‘비취’는 ‘운영’의 사정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며 놀리고 있다.
57 <보기>의 ⓐ~ⓒ는 윗글의 사건이 이루어지는 공간적 배경이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무녀의 집 - ⓑ궁 - ⓒ서궁
① ⓐ는 진사가 사랑을 위해 무녀에게 도움을 청하는 공간이다.
② ⓑ는 운영에 대한 진사의 사랑에 장애가 되는 공간이다.
③ ⓒ는 대군의 명에 의해 일부 궁녀들이 옮겨 가게 되는 공간이다.
④ ⓐ에서 ⓑ로 무녀가 이동하면서 진사에 대한 운영의 믿음이 흔 들린다.
⑤ ⓑ에서 ⓒ로 이동하면서 운영의 번민은 심화된다.
58 ㉠ 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보기>의 ㉮에 어울리는 한자 성어로 적절한 것은?
<보기>
진사는 ( ㉮ )하며 임을 그리워하고 있군.
① 경이원지(敬而遠之) ② 백골난망(白骨難忘)
③ 역지사지(易地思之) ④ 오매불망(寤寐不忘)
⑤ 절치부심(切齒腐心)
도움자료
[2014 EBS N제]-(A형)
55~58
55 ④ 56 ⑤ 57 ④ 58 ④
작자 미상,「운영전」
이 작품은 조선 시대 사회적 제약을 초월한 남녀의 자유로운 사랑 이야기를 다룬 애정 소설이다. 작가와 창작 연대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운영과 김 진사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다룸으로써 고전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비극적 결말을 지니고 있으며, 선비인 유영이 운영과 김 진사의 이야기를 듣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인간이 지닌 본성과 성정을 억압하는 당시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인간 본성에서 우러난 참 된 사랑의 가치를 옹호하고 있다.
사회적 제약을 초월한 남녀 간의 비극적인 사랑
선조 때 선비인 유영이 안평 대군의 옛집인 수성궁 터에 들어가 홀로 술을 마시다가 잠이 든다. 잠에서 깬 유영은 운영과 김 진사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내부 이야기 시작) 안평 대 군의 궁녀인 운영은 궁궐에 들어온 김 진사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무녀의 도움으로 사랑을 주고받다가 김 진사는 담을 넘어 운영을 만 나 달아날 계획을 세운다. 둘의 사랑은 안평 대군에게 들키고 운영은 목을 매어 자결한다. 운영의 소식을 들은 김 진사도 운영을 따라 죽는다. 김 진사와 운영은 하늘로 돌아가기 전에 유영을 만나 자신들의 비극적 사랑을 세상에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내부 이야기 끝) 유영이 취중에 졸다가 깨어 보니 김 진사와 운영의 사랑을 기록한 책이 남아 있었다. 유영은 그 책을 가지고 돌아온 후 명산대천을 두루 돌아다니다 종적을 감추어 버린다.
55 서술상의 특징 파악 ④
이 글은 운영이 수성궁을 찾은 유영에게 자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이므로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였어요’는 자신의 마음을 진사에게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영을 상대로 하는 말이다.
① 이 글은 운영의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 진사의 일은 운영이 나중에 진사에게 들은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② ‘예를 갖추지 못하고 삼가 쓰나이다’는 진사의 편지 내용으로 1인칭 서술자인 운영이 아닌 진사의 목소리로 진사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③ 서술하는 부분에 나타나는 ‘저’는 1인칭 서술자를 말하는데 그가 바로 운영이다.
⑤ ‘그랬을 것 같았습니다’는 1인칭 서술자인 운영이 무녀의 행동의 이유를 추측하여 전달하고 있는 장면이다.
56 인물의 심리와 행동 파악 ⑤
비취는 운영과 자란의 말을 엿듣고 운영의 사정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모른 척하며 희시를 지어 운영을 놀리고 있다.
① 무녀는 진사가 찾아온 뜻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가 신에게 물어보고서 알아차리고 있다. 그러므로 진사가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는 것은 적절한 진술이 아니다.
② 진사는 운영을 만나지 못하고 편지를 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지, 운영의 편지를 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은 아니다.
③ 대군은 무녀가 다녀간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④ 자란과 운영은 함께 서궁에 와 있으므로 자란이 운영을 배웅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57 공간적 배경에 대한 이해 ④
무녀는 궁으로 가서 운영에게 진사의 편지를 전해 주어 둘의 사랑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운영은 무녀가 진사를 좋아하는 것을 눈치채지만 진사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으므로 진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는 진술은 적절하지 않다.
① 진사는 운영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하기 위해 ⓐ를 찾아 무녀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
② 이 글로 볼 때 운영은 궁 밖으로 나올 수 없고 진사는 궁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다. 그러므로 궁은 둘의 사랑에 장애가 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③ 대군은 궁녀들이 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서궁에 가라고 명령하고 있다.
⑤ 운영이 서궁으로 이동하면서 진사와 운영이 만나고 소식을 전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져 번민이 심화된다.
58 인물의 심리 파악 ④
진사는 운영을 한 번 본 이후로 죽을 지경에 이르러 잠도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에 적용 하면 오매불망하며 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 ‘오매불망(寤寐不忘)’은 자나 깨나 잊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① ‘경이원지(敬而遠之)’는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않는다는 뜻의 말로, 진사가 운영을 공경하여 가까이 하지 않고자 하는 상황은 아니므로 적절하지 않다.
② ‘백골난망(白骨難忘)’은 죽어서 백골이 되어도 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남에게 큰 은덕을 입었을 때의 고마움을 이르는 말이다. 진사가 운영에게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은 아니므로 적절하지 않다.
③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본다는 뜻의 말로, 진사가 운영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은 아니므로 적절하지 않다.
⑤ ‘절치부심(切齒腐心)’은 몹시 분하여 이를 갈며 속을 썩인다는 뜻의 말로, 속을 썩인다는 의미는 유사하나 운영을 그리워하는 진사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