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북한산(北漢山)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白雲臺)나 인수봉(仁壽峰)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A] <신록이나 단풍,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라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 김종길, 「고고(孤高)」 -
(나)
한 해의 꽃잎을 며칠 만에 활짝 피웠다 지운
벚꽃 가로 따라가다가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늦된 그 나무 발견했지요.
들킨 게 부끄러운지, 그 나무
㉢시멘트 개울 한 구석으로 비틀린 뿌리 감춰 놓고
앞줄 아름드리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었지요.
[B] <봄은 그 나무에게만 더디고 더뎌서
꽃철 이미 지난 줄도 모르는지,
그래도 여느 꽃나무와 다름없이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멍울 어딘가 안쓰러웠지요.
늦된 나무가 비로소 밝혀드는 꽃불 성화
환하게 타오를 것이므로 나도 이미 길이 끝난 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한참이나 거기 멈춰 서 있었지요.>
산에서 내려 두 달거리나 제자릴 찾지 못해
헤매고 다녔던 저 난만한 봄길 어디,
늦깎이 깨달음 함께 얻으려고 한나절
㉣나도 병든 그 나무 곁에서 서성거렸지요.
이 봄 가기 전 저 나무도 푸릇한 잎새 매달까요?
무거운 청록으로 여름도 지치고 말면
㉤불타는 소신공양 틈새 가난한 소지(燒紙)*,
저 나무도 가지가지마다 지펴 올릴 수 있을까요?
- 김명인, 「그 나무」 -
* 소지: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태워서 공중에 올리는 종이.
1. (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어순의 도치를 활용해 시적 상황의 반전을 강조하고 있다.
② 동일한 시구의 반복을 통해 화자의 삶의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③ 감각적인 표현을 활용해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④ 절망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화자의 회의적인 삶의 태도를 부각하고 있다.
⑤ 시행들을 연쇄적으로 배열하여 시적 대상의 유구한 역사를 형상화하고 있다.
2. [A], [B]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A]에서 화자는 ‘안개’가 피어오르기를 소망하고 있다.
② [B]에서 화자는 ‘늦된 나무’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③ [A]에서 화자의 바람은 ‘기다려야만’ 하는 당위성으로, [B]에서 화자의 바람은 ‘환하게 타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드러나 있다.
④ [A]에서 화자는 ‘고고한 높이의 회복’을 바라고, [B]에서 화자는 ‘그 나무’가 ‘꽃불 성화’를 이루기를 바라고 있다.
⑤ [A]와 [B]에서 화자는 각각 ‘눈’, ‘봄’ 등의 시어를 활용해 계절감을 드러내고 있다.
3. <보기>를 참고할 때 ㉠~㉤의 문맥적 의미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김종길의 「고고」에서는 일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자연의 순간적인 형상은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고 찰나적이기에 쉽게 닿을 수 없는 정신적 지향이나 경지를 나타낸다. 김명인의 「그 나무」는 일상에서 소외되어 있는 존재로서의 자연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화자와 동일시되며 삶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얻게 한다.
① ㉠은 화자가 일상에서 보는 ‘산’의 미묘한 변화에 주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② ㉡은 수묵화에 그려진 ‘산’의 이미지를 통해 대상의 탈속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
③ ㉢은 ‘그 나무’가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소외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④ ㉣은 화자가 ‘그 나무’에게서 ‘늦깎이’의 삶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 준다.
⑤ ㉤은 다른 꽃나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 나무’의 삶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