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
“나는 짠돌이다.”
수필가 김 병 호
지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식구들은 나를 짠돌이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아들들은 이미 20년 전에, 나를 짠돌이로 찜해 놓았을 것 같고,
아내도 내가 퇴임한 후, 15년 동안을 함께 마트에 드나들면서 ‘비싸면 안 먹으면 된다.‘는 나를
짠돌이로 낙점해 놓았을 것이다.
나 역시 짠돌이로 불리는 것에 대하여 일말의 저항감도 없다. 다만 나는 짠돌이 일뿐, 구두쇠는 아니라고 변명 할 뿐이다.
도대체, 짠돌이와 구두쇠가 뭐가 다른가? 다분히 나의 주관이지만, 짠돌이는 자기에게 쓰는 돈을 아끼는 사람이고, 구두쇠는 어떤 일에도 돈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쓰지 않아도 될 일에는 푼돈도 아끼지만, 써야 할 곳에는 큰돈도 아낌없이 쓴다.”는 사람이니까 짠돌이 일망정 구두쇠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20년 전 어느 날 밤, 대학생이던 두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전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장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철 출구 옆, 택시 승강장으로 택시가 줄줄이 들어왔다.아이들은 택시를 타자고 하였다.
집에까지 1,500원이면 갈 거리였다. 그러나 나는 20분 간격으로 돌아오는 마을버스 타기를
고집하였다.
“아버지, 마을버스에 세 명이 타면 900원이예요. 택시타면 1,500인데 600원 아끼려고 남의 상점 추녀 밑에 서서 20분을 기다려요? 대기업 임원의 체면이 있지...” 아이들은 나의 자존심까지 건드려가며 나를 회유하려들었다. 나는 잘라 말했다.
“10분만 더 기다리면 마을버스가 올 텐데 왜 택시를 타? 이 시간에 10분 빨리 집에 가서 뭐 할 건데? 단 돈 10원이라도 왜 쓸데없이 돈을 써? 땅을 한 길을 파 봐라. 백 원짜리 한 닢이 나오나...”
그때부터 아이들은 나를 짠돌이로 분류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제는 목욕을 하러 갔었는데,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12시였다.
집에 가서 점심을 먹어도 충분한 시간인데 아내는 전기밥솥에 예약버튼 누르는 것을 잊어버리고 왔다는 것을 핑계로 외식을 하자고 했다.
거기다가 덧붙이기를, 몇 달 동안 비어있던 원룸이 나갔으니 자축하는 의미로 “맛있는 걸 사먹자.”는 것이었다. 가까운 삼계탕 집으로 갔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식사를 끝낸 젊은이들이 자리를 떴다. 나는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반 병 남짓 남기고간 소주병을 가져와 물 컵에 따라놓고 삼계탕의 반주로 삼았다.
아내가 민망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여보, 왜 남이 남긴 술을 가져다 마셔요? 마시고 싶으면 시켜서 먹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 했다.
“남기고 갔으니까 먹는 거지, 물 한 드럼에 소주 한 잔을 부으면 금붕어가 죽는다잖아?
수질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냥 버려질 알코올을 내 몸에서 분해시키려는 거야”라고.
나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아내는 속으로 “아이고, 못 말리는 짠돌이...”하고 혀를 찼을 것이다.
이만하면 스스로 짠돌이라는 고백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 이제, “구두쇠는 아니라.”는 변명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지난 20년 동안에 이 짠돌이가 성당과 불우이웃 돕기, 국내외 자선단체의 후원회비로 쓴 돈을 합하면 대충 1억 원쯤은 될 것 같다.
1억 원이면 큰돈이지만,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그 기간이 장장 20년이나 되기 때문이다.
20년이면 하루에 한 갑 피우던 담배만 끊어도 3000만원은 모을 수 있는 기간이고, 월급 400만원을 받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교회에 바치는 십일조만 해도 그 정도는 될 세월이다.
나는 제대로 십일조를 바치고 사는 가톨릭 신자는 못 되지만, 성당과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쓰는 돈을 합해서라도 수입의 십분의 일은 되게 하려는 생각은 가지고 산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와 용기가 주어지기를 바라고 있고, 쓰고 남는 것으로 이웃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고, 쓰고 싶은 것을 절제함으로서 그 희생 중에서 자라난 사랑의 정신으로 가난한 이웃과 나눌 수 있고, 고통 받는 이웃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찾아다니며 도울 수는 없어도, 찾아와서 도와달라는 사람이나 외면하지 말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나는 앞으로도 세상 사람들에게서 <짠돌이>소리를 들을 각오가 되어있다.
부족한 나지만, 감히 여러분도 나와 함께 구두쇠가 아닌 짠돌이가 되시기를 바라며, 이렇게 외친다.
“나는 짠돌이다. 그러나 구두쇠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