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의 시〈그 꽃〉에서 -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은 제목 없는 짧은 시들이 죽 열거되어 있는 시집이다.
언뜻 보면 단순한 내용에, 유독 짧은 시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짧은 시라고 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마저 짧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이 시집 속에 시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무심한 듯 던진 그 짧은 시 속에 깊은 철학적 이치를 느낄 수 있다.
오늘은 그 시들 중 「그 꽃」을 읽어본다.
「그 꽃」은 시집의 다른 시와 마찬가지로 제목 없이 실려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구의 "그 꽃"을 제목으로 하여 별도의 시처럼 부르고 있기에
여기서도 이 시를 「그 꽃」으로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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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시의 내용은 간단하다.
산에 오를 때는 보지 못했던 꽃을 내려갈 때는 보게 됐다는 것이 내용의 전부이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함께 생각나는 것이 성경의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마가복음 8:18)”의 구절과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심불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는
『대학』(전7장)의 구절이다.
모든 것을 보면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놓치며 살고 있다.
이 시에서나 성경⋅대학의 구절에서나 "본다"는 것은
단순이 눈에 비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존재를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깨어있다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본다"의 의미와 가까울 것이다.
화자가 산을 오를 때도 그 꽃은 분명 같은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화자도 그 꽃을 보았을 것이다.
다만 무심코 지나쳐 갔기에 꽃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
화자는 산에서 내려올 때에 비로소 그 꽃을 보게 된다.
평소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을 흥분시키고 새롭게 하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생의 많은 순간을 우리는 깨어있다고 생각하고
마치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는 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청룡곰의 사족.
이 시에서 굳이,
올라갈 때는 보지 못한 것을
내려갈 때 보았다고 했을까요?
내 나름의 주해를 달자면
올라갈 때란 인생에서 잘 나갈 때,
승승장구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 때 일 것입니다.
그럴때는 자기만 생각하며
자기안에서 만족을 누리며
교만으로 살기 때문에
주변의 가난한 이웃도 보이지 않고
세상의 아픔도 느끼지 못하며
진정한 사랑도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나 내려올 때,
인생에 시련이 닥치고
고통을 알게 되고 가난해 진 그 때에는
비로서 가난한 이웃의 삶이 보이고
이제 까지의 부귀영화가 자기의 능력때문이 아니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이었다고 느끼며
세상과 주님앞에서 겸손해지고
시련을 이겨내기 위하여 가족간에 단합하다 보니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을 두고
꽃을 보았다고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고통도
은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통중에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존재를 알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통이 없었더라면
평생을 알지 못하고 살았을 하느님의 존재를 알고
지상의 삶속에서 천국을 보게 됩니다.
이 시에서는
올라갈 때(영화로울 때, 교만 할 때)는 보지 못한
그 꽃(하느님, 천국)을
내려갈 때(고통받을 때, 겸손 할 때)는
보았다고 표현 한 것 같습니다.
<보았다>는 말은
<보였다>는 무의식과는 달리
나의 의지가 포함된 유의식의 표현입니다.
감사를 느끼고,
은총을 실감하고,
누구를 사랑한다는
나의 하느님을 향한 자유의지를
<보았다>라는 말로 표현한
동의의 시어가 아닐까요?
언젠가 나는 선포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주님을 보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