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강해31(잠13:1-6)
지혜가 뭘까?......뭐가 지혜일까?
성경에서는 지혜를 호크마라고 하는데
이것은 관찰, 경험, 반성에 의해 얻어지는,
생활에 대한 지식과 감정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하면, 근면, 정직, 순결, 고귀함과 같은 좋은 생활 방식이라든가,
자연에 관한 넓은 지식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은 특히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여,
하나님에의 신앙과 복종을 지혜의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로
하늘로부터 얻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노력에 의해 얻어지거나, 경험이 풍부한 현인 혹은 지혜로운 사람에 의한
가르침과 교육으로 지혜는 얼마든지 배워서 얻어질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절에 지혜로운 아들은 어떤 아들이라고 말합니까?
아비의 훈계를 듣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른의 훈계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지혜를 얻습니다.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반대로,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한다.....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만한자는 어떤 사람인가?
원문에 보면, 이 거만한 자를 입을 삐죽 거리는자, 업신여기는 자.....
이런 뜻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말로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죠.
무슨 뜻입니까?
지혜로운 자는 어른의 꾸중을 귀를 기울려서 듣지만
거만한 자, 즉 어리석은 자는 어른의 꾸중에 어떻게 반응한다고요?
입을 삐죽거리고, 그 말을 업신여기고 비웃는 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지혜를 얻을 수 없죠.
지혜를 얻고 싶으면, 어른의 훈계와 권면, 꾸중을
들을 줄 아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어른이 하는 말을 듣는 자셉니다.
똑같이 어른의 말을 들어도 삐쭉거리면서 듣는 사람하고
자세히 경청해서 자기의 말로 고쳐 듣는 사람하고는
그 차이는 엄청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책을 본다고 칩시다.
어떤 사람은 그 책을 읽으면서 자기를 생각하면서
자기와 연결지어서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한권의 책을 읽어도
자기 지식이 되고, 자기 경험이 되고, 자기 것이 됩니다.
그런데, 여러 수백 수천권의 책을 읽어도 나와 상관 없이
그냥 책으로만 읽으면 그건 지식에 그치고 맙니다.
자기 것이 안되는 것이지요.
지식만 쌓을뿐, 거기서 자기 성장을 이루는 지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자기와 연결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서 자기 발전을 이루고, 지혜를 얻을 수가 있어요.
성경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성경을 여러 수백번 읽어도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지 않으면
차라리 한번이지만,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읽는 사람만큼 따라가지 못합니다.
어떤 분을 제가 봤어요.
아예 성경을 줄줄줄 외워요. 제가 놀랐어요.
근데, 성경을 줄줄 외우는데, 뭔가 2%가 부족해요.
뭐가 부족해요?
말씀의 육신화가 안되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야 하는데, 말씀 따로, 삶 따로예요.
말씀대로 사는게 안돼.
뭐예요? 성경 지식만 있고, 지혜는 없다는 거예요.
왜 그래요?
성경말씀을 외웠지. 그 말씀을 듣지는 못한거예요.
교훈의 말씀이 자기 것이 되질 못한 거예요.
머리로만 안거지.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 겁니다.
진짜 배움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진짜 배움이 되는거예요.
이게 지식과 지혜의 차입니다.
머리에 머문건 지식입니다.
가슴에 내려와야 지혜가 되는 겁니다.
훈계를 받을 때, 머리로만 받으면 안됩니다.
가슴으로 받아야 그게 자기 것이 되고, 자기의 지혜가 되는 겁니다.
머리와 가슴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머리는 이해로 끝납니다.
그러나 가슴은 행동하게 합니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죠.
지식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올 때, 지혜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려면 입술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메튜헨리(Matthew Henry)라고 하는 유명한 주석가는 말하기를
"입술을 수호하는 것은 영혼을 수호하는 것이다."라고 그렇게까지 말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명히 압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봅니다.
많이 배웠다는 사람이 말하는거나 행동하는거 보면,
수준이하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요?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예요. 지혜가 없어서 그래요.
지혜로운 사람이 될려면, 말과 행동을 가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말을 가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2절 보세요
"사람의 입의 열매로 복록을 누리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행동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부지런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게으럽니다.
4절입니다. (잠 13: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이것은 일반적으로 부지런하다는 그런 뜻도 있지만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구하는 것에 부지런 한 사람이라고 해석해도
좋습니다.
지혜를 구하는데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를 구하고, 마음의 풍족함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듯이
지혜도 부지런히 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를 얻고 구하는데 게으럽니다.
6절입니다.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지혜로운 자는 의로움 즉 지혜가 그를 보호하고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이 즉 악이 그를 패망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그런 뜻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움이 그를 보호해 줍니다.
반대로 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은 보호해 주는게 아니라 망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람은 지혜로와야 합니다.
그래서 앞서서 지혜를 뭐라고 그런다고요?........ 호크마라
이것은 관찰, 경험, 반성에 의해 얻어지는,
생활에 대한 지식과 감정을 의미한다고 그랬죠?
그리고 근면, 정직, 순결, 고귀함과 같은
의로운 생활 방식이라든가,
이스라엘 사람은 특히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여,
하나님에의 신앙과 복종을 지혜의 중심으로 생각했다고 그랬잖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당연히 근면하고, 정직하고 순결하고, 고귀하고
겸손하죠. 의로운 삶을 살 수 밖에 없죠.
그러니 거기서 뭐가 나와요? 지혜가 나오죠.
고로, 하나님을 바로 믿고 섬기는 사람일수록 어떤 사람이다?........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다....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고
그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열심히 구하고, 찾아서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