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19장(2) 삼상19:8-24
오늘 본문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더 혈안이 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18장에서도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진걸 기억합니다.
그런데 19장에 와서도 사울왕이 자기를 위해 수금을 탈 때, 또 단창을 던져서 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밤을 이용해 도피해서 집으로 갑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다윗집으로 군사들을 보내 암살을 지시합니다.
그러자 다윗왕의 아내 미갈이 다윗을 몰래 창문을 통해 도망시키죠.
사울왕이 계속 전령들을 보내 다윗을 죽일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심지어, 자기 딸 미갈이 다윗이 아파서 침상에 있다고 하니까,
침상을 그대로 들고 자기 앞으로 오게합니다.
그런데 보니까, 그 침상에는 다윗인것처럼 우상을 눕혀논걸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런 계략을 꾸민 자기딸 미갈에게 화를 내죠.
그러는 동안 다윗은 라마로 도망갔는데, 왜 그곳으로 갔는가?
그곳엔 사무엘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사정을 다 들었을 겁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는 나욧이라는 지역으로 다윗을 데리고 갑니다.
왜냐하면, 나욧이라는 곳은 지명이라기 보다는
선지자들을 길러내는 신학교와 같은 공통체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마 나욧으로 다윗을 데리고 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또 사울에게 고자질을 해서 일러바쳐 버렸습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또 다윗을 잡으라고 전령을 보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윗을 잡으라고 보낸 전령들이 라마나욧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도 사무엘과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예언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예언이라는 이야기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문에 보면, 예언이라는 히브리말로נָבָא (나바, nābā')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상태, 감동된 상태, 혹은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라바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다윗을 잡으러 온 전령들이 라마나욧으로 들어가는 순간 다윗을 잡아야 하는데, 선지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영에 충만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또 누가 사울에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사울왕이 세 번째 또 전령을 보냈는데,
그들도 똑같은 상황에 빠지게 된 겁니다. 그것이 21절에 나옵니다.
그러자 안되겠다 싶어 사울왕이 직접 그곳으로 갑니다.
그런데, 사울도 라마에 있는 나욧에 들억자마자 똑같이 성령에 감동되어 예언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옷을 다 벗고 하루종일 벗은 몸으로 누워 예언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라는 말이 다시 속담처럼 나돌았습니다.
그런데,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라는 말이 이번에만 나온게 아닙니다.
삼상 10:11-12절에도 이미 한 차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오는 이 속담과 그때 나온 속담의 의미는 다릅니다.
삼상10:11-12절에 나오는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라는 의미는
사람들이 놀라움의 감탄사였습니다. 다시 말해 칭찬의 말이었습니다.
저 평범했던 사울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변화되었구나라는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오는 이 본문에서의 말은 비꼬는 말입니다.
아니, 다윗을 죽이러 간 사울이 예언을? 웬일이래?.....그런 말입니다.
완전히 180도 다른 의미인 겁니다.
후에는 이 속담이 비꼬는 말로 전락합니다.
어쨌든 사울왕이 라욧이라는 신학교에 다윗을 잡으러 왔지만 성령에 크게 감동되어 버린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잠시 동안만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내가 아무리 성령충만해서 예언을 한다고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다고 해서 완전히 변하는건 아니다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사울왕은 또다시 악한 마음을 품고 평생 다윗을 죽이기에 일생을 허비합니다. 이유가 뭘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한때는 예수님을 잘 믿고 성령충만함을 경험했더라도,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면 그건 다 소용없습니다.
사울왕이 대표적인 사례아닙니까?
사울왕이 성령을 체험 못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언자들과 더불어 예언까지 하고 다닌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악한 영이 자리잡고, 악한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게 되면, 사울처럼 그렇게 변할 수도 있다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울의 적은 다윗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전쟁을 걸어오는 블레셋이고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런 사람들과 맞서 싸울려는게 아니라,
자기 자리를 위협받는 다는 오해와, 시기와 질투심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사람과 싸우려는데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결국, 사울왕은 다윗과 싸우는게 아니라,
하나님과 맞서 싸우는 것과 다를바가 없었던 겁니다.
우리도 이럴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랑받았다고,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만
언제든지 우리도 죄에 빠질 수 있고, 시험받을 수 있다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늘 자신이 어느편에서 살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할 줄 믿습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