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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과 설 쇤 후의 허전함.

작성자이정표|작성시간24.02.15|조회수337 목록 댓글 2

기다림과 설 쇤 후의 허전함.


설렘은 늙어도 변함이 없는가 봅니다.

허전함은 늙을수록 더한가 봅니다.

설 며칠 전 아버님 기제를 모시고
설 차례는 여행으로 계획을 했습니다.

행여 맏아들도 아닌 처지에 제사를
도맡아 모시는 할멈이 지칠까 봐
배려를 한 것인데, 아들 딸도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습니다.

여행지는 정동진 비치크루즈로
미리 예약을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어린애처럼 설렘은 설날이 다가올수록 가슴 부풀어 올랐으나
일면 걱정이 앞을 가렸습니다.

차례를 안 모시고 저 편하자고
여행을 가.
당장에 아버님의 호령이 들리는 것 같아 그냥 넘기기는 마음이 저렸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뜨뜻하지 않아
계획을 수정하고 말았습니다.

차례 올릴 상차림을 준비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니 동해 바다의
잔잔하고 포근한 날씨가 반기는
것 같았습니다.

동방 예의지국에서 태어나고
고유의 풍습에 젖어 살아온
지난날을 잊을 수 없어
아버님 생전의 모습을 재현해
보았습니다.

출발 전 장롱 속에서 잠자던
한복을 꺼내어 입고 갓을 쓰고
거울을 보니 생전 아버지 모습인데
뚱뚱한 모습만 달랐습니다.

할멈은 빙긋이 웃으면서 어이구
못 말리는 우리 영감 잘

나셨어 정말.

핸드폰으로 여기도 찰칵📷
저기도 찰칵📷 이젠 사진사가
다 되었습니다.

사진만 찍으면 뭘 하겠습니까?

공유가 필요하지요.

혼자만 보려면 사진을 무엇하러
찍겠습니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동안 연습한 서체를 사진으로
찍어 합성하면서 치매 예방 겸
자랑을 해보자.

이렇게 생각하니 엔도르핀이 돋아
젊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다음 날이 설날이었습니다.

준비해 온 음식을 차려놓고
지방을 붙인 후 차례를 올리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앞으로 더 잘 모실테니 용서해
주십사 하고 혼잣말처럼 하는데
못 말리는 우리 아버질 누가
당하겠습니까 아버지.

아버지 저희도 배운 것처럼 효도하겠습니다.

사후에 나도 네놈들 보고 싶을 때
올 거야.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올 거야.

우리 할멈은 오긴 뭘 와요.
자식들 귀찮게.

야 이 할망구야 왜 안 와.
내가 오면 당연히 따라와야지.

우리 아들은 걱정 마세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새해맞이 덕담을 나눈 후
세뱃돈을 주니 봉투에 쓴 문구를
보며 역시 우리 아버지라며
손뼉을 쳤습니다.

아들 딸 덕분에 멋진 여행 호의호식하고 보니 눈가엔 행복의 이슬이 가득했습니다.

무사안일을 빌며 운전하는
마음의 무게는 할멈과 동승해
운전할 때보다 아들 딸과 온 가족이
동승해서 그런지 손에 땀이 흠뻑 젖었습니다.

눈치 빠른 아들은 아버지 이젠
제게 맡기고 뒷좌석에 앉아가세요.

운전대를 맡기니 든든함이 밀려왔습니다.

나보다 훨씬 낫구나.

시야도 밝고 판단 능력도 훨씬 빠르고 괜한 걱정을 했구나.

자식은 늘 물가에 세워둔 아이 같다는 생각에서 이젠 모든 걸
믿고 맡겨야 하겠구나로 생각을
전환했습니다.

일터로 돌아오니 긴장이 풀렸는지
허전함이 몰려옵니다.

허전함을 물리치려고
春을 기다립니다.

春待善心.

붓을 들고 일필휘지로 가로세로
자유자재로 돌리고 긋고 나니
긴장이 풀립니다.

이렇게 설 명절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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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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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멋쟁이 신사(華谷)ㆍ公認 孝菴 大法 작성시간 24.02.15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정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2.15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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