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창업자 고 유일한 박사의 삶,
🙏🎋幸福한 삶🎋🎎🎋梁南石印🎋🙏
유 : 유린당한 조국의 치욕을 벗어나기 위해
한 : 한평생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시며
양 : 양팔을 활짝 벌려 인재를 품어 양성하신
행 : 행동하는 기업가의 본이 되신, 유일한 박사님.
본론에 앞서 아래는 대한민국 고(故) 유일한 박사의 삶과 업적 이야기입니다. 그의 인생은 단순한 기업 성공담이 아니라, 나라와 사람을 위한 헌신의 기록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유일한 박사, 돈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 기업가로서, 유일한 박사는 189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1904년, 아홉 살의 매우 이른 나이에 유학길에 오른 배경부터 남달랐습니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현지에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성실하게 공부해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쳤다고 전해집니다. 그 시절의 경험은 이후 그의 삶 전반에 성실함과 인간 중심의 경영 철학으로 이어졌습니다.
1926년, 그는 귀국과 동시에 당시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분야로 뛰어듭니다. 바로 제약 산업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의료 환경은 매우 열악했고, 질 좋은 의약품은 외국 의존도가 절대적이었습니다. 유 박사는 건강한 국민만이 진정한 주권을 회복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유한양행(裕漢洋行)을 설립하며 한국 제약사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한국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 결핵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짓눌렀다. 초창기 유한양행은 전후 항생제와 결핵 치료제의 수입·생산·보급에 참여하며 보건 환경 개선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수입 의약품 판매에서 시작해, 곧바로 국산 의약품 개발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안티푸라민 등 효능 좋은 제품을 자력으로 만들어내며 보건 향상에 이바지했고, 그 노력은 이후 한국 국민의 신뢰와 건강 증진으로 이어졌습니다.
권력도, 이익도 아닌 사람 중심의 기업 경영을 펼친 기업가로서, 환경이 지금과는 사뭇 다른 1930~50년대 한국 상황 속에서 유 박사는 단순히 회사가 돈을 버는 것만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혁신적인 결단들을 내립니다.
기업을 주식회사로 전환하여 경영 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했습니다. 1939년에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전 직원 주주제(사원 주식 소유)를 시행해, 보유 주식 50%를 전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져 주인 의식을 키웠습니다.
가족 경영 대신 전문 경영 체제를 도입해, 말단 사원까지 능력 있는 사람이 회장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었습니다. 이는 당시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성과·능력 중심 운영 시스템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기업을 가족 재산이 아닌 모두의 회사로 만든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그는 정직한 기업 운영을 강조해 탈세나 로비 같은 부패와 철저히 거리를 두었으며, 그 결과 군사정권 시절 정치 자금 요구를 거절한 뒤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으나, 탈세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성실 납세 기업인으로 평가받으며 산업훈장을 수훈했다는 증언과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윤은 사회로, 기업은 사람을 위해라는 기치 아래 유 박사의 철학은 회사 운영 방식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기업은 사회의 것이다. 이 말처럼 그는 기업이 벌어들인 이윤을 사회로 되돌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실천한 대표적인 행동이 바로 재산 전액 사회 환원이었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사업가이자 독립운동 지원 활동에도 참여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했고, 이후에도 민족 자본 육성을 중요한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1971년 작고할 때, 유일한 박사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첫째 아들에게는 대학을 마쳤으니 독립해 살아가라는 말과 함께 최소한의 유산만을 남겼다고 합니다.
딸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중요시했던 마음에서, 학비 등 기본적인 학업 지원의 하나로 1만 달러만 상속했다고 전해집니다. (* 딸 유재라 여사 역시 부모님의 나눔을 본받아 선친에 이어 2백억 원 상당의 전 재산을 공익 재단에 기증, 부녀 2대에 걸친 부의 사회 환원을 실현했다. 91년 3 월 19일 미국 시애틀에서 63세로 별세한 유 씨는 4일 공개된 유언장에서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서울 동작구 대방동 49일대 대지 1천8백여 평(시가 1백60억 원)과 유한양행주식 1백60만 주(시가 40억 원) 모두를 재단법인 유한재단에 기증한다』라고 밝혔다. 기증 재산 중 주식은 유 씨가 남편과 사별한 뒤 자녀도 없이 줄곧 독신으로 지내며 20여 년간의 미군 군무원 생활에서 모은 돈을 투자, 그동안 증자·주가 상승 등으로 크게 불어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과 주식은 유한재단과 유한 학원 등 공익사업에 쓰도록 기증했습니다. 이는 한국 기업 역사상 최초의 사회 환원 사례로, 오늘날까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ESG) 활동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단순한 기업 기부를 넘어 사회 전체의 미래를 위한 투자였습니다. 유한양행을 중심으로 설립된 유한재단, 유한 학원, 유한공고 등 교육 기관은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되돌리는 핵심 장치였습니다. 이들 기관은 수십 년간 장학 사업, 연구·교육 지원 등을 통해 한국의 인재 양성에 크게 이바지해 왔습니다.
유한재단이 현재까지 수천억 원 규모의 장학금을 지원해 온 사실은 그의 철학이 단지 말에 그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이 장학금은 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학생들이 공부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100년을 넘어서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유한양행은 창립 이후 꾸준히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제약회사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2020년대 들어서도 20년 넘게 업계 1위 자리를 유지하며 국내외적으로 건강과 행복을 위한 연구·사회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기업 철학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기업은 돈만 버는 곳이라는 통념을 넘어서, 사회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CEO와 재벌을 구분하지 않고 바라보지만, 유일한 박사는 일찍이 권력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기업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실천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삶은 성공한 기업가의 이야기를 넘어 사회를 위한 기업 책임의 표본이며 교육과 나눔의 철학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이 현재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이렇게 사람 중심으로 기업과 사회를 연결하려 했던 선각자들의 땀과 철학이 흐르고 있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삶은 단지 한국 기업의 역사만이 아니라, 한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가를 들려주는 귀한 기록입니다.
교육과 나눔의 철학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이 현재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이렇게 사람 중심으로 기업과 사회를 연결하려 했던 선각자들의 땀과 철학이 흐르고 있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삶은 단지 한국 기업의 역사만이 아니라, 한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가를 들려주는 귀한 기록입니다.
유일한 박사의 삶과 업적은 정말 감동적이고, 그의 철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가 남긴 가치들, 특히 사람 중심의 경영과 사회 환원의 중요성은 지금의 기업인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그가 창립한 유한양행을 통해 보여 준 책임감 있는 기업 운영과, 이윤을 사회로 돌려주는 실천은 매우 선구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유산이 여전히 한국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유일한 박사는 단순히 기업 경영의 성공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가의 진정한 롤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교육과 인재 양성에 관한 그의 깊은 관심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남긴 유언대로 모든 재산을 공익사업에 기부한 결정도 정말 대단합니다. 오늘날 기업들이 강조하는 사회적 책임(CSR)의 정신 역시 유일한 박사가 평생 실천해 온 사상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한재단과 같은 기관들이 지금도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유일한 박사의 철학은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고 살아 숨 쉬고 있어 일부 기업가의 부도덕을 지켜보며 한탄하고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추신 : 고(故) 유일한 박사님은 세계 최빈국 식민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태평양을 건너 몸을 불살라 고진감래 끝에 단순히 부를 축적한 인물이 아니라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수많은 사람에게 그늘과 열매를 내줘 꽃을 피우게 한 거목과 같은 존재로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누리는 풍요와 발전을 바라보며, 후대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응원하며 흐뭇해하고 계신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