帝國(제국)의 神話(신화)
제2부, 살부의 나라, 일본
인자(忍者) 9
그렇다면 웅습교 교주는 여자인 셈이었다.
손 회장은 틀림없이 여자를 만나러 간다고 했었으니까. 나는 웅습교란 단어를 단단히 가슴 속에 새겨 넣었다.
"왜 단군 신앙이 일본에서 종교화되었을까요?"
"일본에 있는 단군 신앙은 매우 뿌리가 깊다고 하더군요. 6세기경에는 규슈 지방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단군 신앙을 믿을
정도였다고 해요."
솔직히 말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1천5백 년 전의 일이지만 그렇게 많은 일본인들이 단군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뿌리가 너무 깊어 19세기 중반에는 일본 정부가 단군 신앙을 믿는 신자를 탄압까지 했다는 기록까지 있다더군요. 그러나
신자들은 굴하지 않고 지하로 숨어들어 신앙을 지속했다고 하더군요."
교빈을 만난 이래 가장 흥미있는 이야기였다.
"그뿐 아니라 일본의 신사에도 단군 신앙이 전승되는 곳이 있다고 해요. 규슈 후쿠오카 현에 히꼬야마 신사가 있는데 신당에
모신 제신이 바로 단군의 아버지로 기록된 환웅이라고 해요. 신사에 있는 환웅의 영정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양어깨에
박달나무잎의 장식이 그려져 있다고 해요. 그 모습은 [삼국유사]에 단군이 박달나무잎으로 장식한 옷을 입었다는 내용과 꼭
일치한다더군요."
"환웅의 영정까지 있다면 단군 신앙임에 틀림없군요."
"그 신사에 전해오는 오래된 기록을 보면 환웅이 히꼬야마에 입산하여 수도를 했다고 전한다더군요. 그리고 그 지방 사람들은
단군 신화에 나오는 마늘을 매우 즐겨 먹는다고 하구요. 마늘이라면 질색하는 일본인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 놀랄 만한 일이에요.
그 신사 역시 명치시대에 심한 탄압을 받고 폐쇠당항 아픈 역사를 갖고 있지요.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단군 신앙이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오늘까지 전해져 웅습교라는 종교 단체까지 생긴 것이라더군요."
"그렇다면 웅습교 본부 역시 규슈에 있겠군요."
내가 말의 물꼬를 웅습교 족으로 바꾸었다,. 웅습교 교주가 누구인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오사카에 있다고 했어요. 신자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단군에 대해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나는 손 회장이 웅습교 교주를 만나러 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단군 신앙이라면 천부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손 회장이 웅습교라는, 난생 처음 듣는 종교의 교주를 내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 일본 경시청에서 어떻게 손 회장이 만날 인물을 밝혀냈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손 회장과 우리 세 명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다.
손 회장 역시 목숨의 위협까지 느끼는 일이었다면 절대로 누군가에게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혹시 교빈이 손 회장의 죽음에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교빈은 손 회장의 사적인 비밀에 가장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교빈은 손 회장이 웅습교 교주를 비밀스럽게 만난다는 것을 알고 재산을 가로챌 목적으로 손 회장을 죽인 후에
교주에게 죄를 덮어 씌운 것이 아닐까 . 그렇다면 일본 경시청에 정보를 제공한 것도 교빈일 터였다.
"뭘 그리 생각해요?"
"아닙니다."
"손 회장이 죽어서 가장 이득 볼 사람은 문교빈이다. 그래서 문교빈이 죽였다, 그런 생각 아니었나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좋아요. 물론 그럴 리는 없어요. 웅습교 교주에 대한 수사가 진전되면 제일 먼저 형석 씨에게 알려 드리죠. 내가 시아버지를
죽일 수 있는 그런 흉칙한 마음을 가진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겠어요."
교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이 있어서요. 아까 한 말 생각해 봐요. 형석 씨가 동방 그룹 회장하면 아주 잘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교빈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현관을 향해 걸어나가다가 갑자기 돌아서며 말했다.
"웅습교 교주를 만나게 되거든 내게 꼭 알려 줘야 해요. 그 사람은 손 회장을 죽인 사람이라 형석 씨를 만나면 안 돼요.
형석 씨는 너무 착해 잘 속는 편이거든요."
교빈이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빌어먹을.'
누구에게 하는 욕인지 나 자신도 몰랐다.
13
1764년 조선 통신사 일행이 귀국길에 올랐을 때 오사카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상 감영 장교였던 최천종이 통역을 맡았던 대마번의 왜인 스즈키의 칼에 찔려 숨졌다.
이 일이 가부키 작품집에 전한다.
-신성순. 이근성 [조선 통신사]-
교빈이 나간 다음, 나는 교빈의 말이 마음에 걸려 관필을 부추겨 카페 하로 갔다.
석기는 아침 일찍 나가고 없었다. 하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쯤이었다.
하는 언제나 아늑하고 안전한 도피처였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골치 아픈 것과는 전혀 무관한 곳이었다.
마시고 취하면 그뿐이었다.
먼저 와서 자리잡고 있던 오장교가 맥주잔을 높이 들며 아는 척을 해왔다. 오장교는 일행이 있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청 재킷을 입은 몸집 작은 여자가 뒷모습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짜식, 여자 하나 건진 모양이군."
관필이 의자에 앉으며 오장교의 귀에까지는 도달하지 않을 조그만 목소리로, 실패한 것이 확실한 한 영극쟁이를 비웃어 주었다.
"뒷모습이 괜찮은 걸 보니 얼굴은 전혀 아닐걸."
"물주는 얼굴이 못생길 권리가 있는 법이니까."
나는 관필의 말을 받으며 오장교 쪽을 흘끗 보며 짓궂게 웃었다.
하의 주인장이 주문하지도 않은 맥주 세 병과 잔 두 개, 마른 안주를 탁자 위에 놓고 돌아갔다.
"자, 마셔."
내가 잔을 들며 말했지만 예전과 같이 감동은 없었다.
돈은 오래 전부터 백수광부가 내기 때문이었다. 나는 맥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저 여자는 처음 보는데, 어디서 주웠을까?"
관필의 호기심은 오장교가 데려온 긴 머리 여자에게서 아직도 떠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관필에게 조금 전에 교빈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 주었다.
그러나 문교빈이 나를 두고 동방 그룹 회장 운운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도 싫었고 그런 일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필은 심각한 얼굴로 내 말을 경청했으나, 이야기가 웅습교에 이르자 별로 흥미가 없는 표정이 되었다.
갑자기 어,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관필의 겁 많게 생긴 큰 눈이 휘둥 그래진 것과 오장교의 술취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동포 여러분, 합석합시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관필이 왜 그토록 놀랐는지 이유를 알았다. 청 자킷 위로 긴 머리카락을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오장교가 어디선가 주웠다고 판단한 그 여자의 코와 입 사이에 잘 다듬어진 수염이 눈에 띄었다. 그 여자는 남자였다.
좁고 둥근 양어깨 한가운데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그 사내가 오장교 옆에서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청바지와 청 자킷, 넥타이, 긴 머리카락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가 한눈에 예술 종사자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관필의 추측 중에 한 가지는 정확했다. 어깨 만큼 작은 얼굴에 눈 코입이 겨우 제자리에 있다고 느길 정도로 못생긴 사내였다.
특히 입 부분은 포유류라기보다는 조류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툭 튀어나와 기묘한 인상을 풍겼다.
얼굴 부분만큼은 관필이 맞춘 셈이었다. 그러나 묘한 미소는 이상한 매력을 풍겼다.
그 미소는 못생긴 얼굴과는 상관없이 그 사내가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었다.
오장교는 우리의 허락도 없이 털썩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긴머리의 사내는 여전히 입가에 묘한 미소를 날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뭐해, 앉지 않고."
오장교는 함께 온 사내에게 빈 의자 하나를 끌어내 앉으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사내가 양어깨를 으쓱 올리더니 스스럼없이 자리를 차지했다.
"자, 인사나 하고들 지내셔. 이 친구는 내가 제일 아끼는 연극하는 후배야. 참, 니 이름이 뭐지?"
오장교가 취한 눈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오장교는 <춘향뎐>이 실패한 후로 술에 파묻혀 살았다.
"김봉주 올시다."
사내가 우리에게 직접 말했다.
"맞아, 봉주. 여기는 이름이......, 알아서 인사하슈. 뇌가 술에 절었군."
오장교가 들고 있던 술잔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리는 인사를 했다. 번잡스런 절차가 끝나자 오장교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존경하는 선생님들. 아니 오늘은 출판사 사장님께서 보이지 않네. 여하튼 잠시 내가 아끼는 후배를 맡겨 놓고 아주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오겠소. 사이좋게들 지내. 알았지, 봉주야."
예상대로 오장교는 술값을 내지 않고 유유히 하를 빠져 나갔다.
오장교는 오늘 중에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 하의 주인과 싸움을 벌일 것이다. 술값 때문에,
오장교가 느닷없이 퇴장하자 김봉주는 벌레 씹은 표정이었다. 관필이 사람 좋게 웃으며 김봉주에게 잔을 권했다.
66부에서 계속......
작가 : 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