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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야화 408

작성자석양노을,|작성시간25.12.19|조회수293 목록 댓글 9


고금소총 28
 
동방삭 류의
음담익살이로다.
(東方朔滑稽之類)


비록 사정이 있어
대궐에서 사가(私家)
내보냈거나
내쳐진 궁녀라 하더라도
상통(相通)하면
중죄로 다스렸는데,
.
그 이유는 대궐에 살 때  
왕이나 왕세자 등과
관계를 맺은 전력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평생을 홀로
살아야 하였다.
선조(宣祖)
오성(鰲城이항복(李恒福)
"지신(知申)"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집 청지기가
궁녀와 상통하는 죄를
범하여 벌을 받게
되었는 데
불쌍히 여겼으나
해결할만한 계책이 없었다.
 .
이때 마침 왕이
오성을 불렀다.
.
오성은 일부러
늦게 들어가서 입시하니
왕이
"경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는고 ?"
하고 물었다.

"상명(上命)을 받자옵고
들어오는 데 종로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떠들고
웃는 것을 보게 되어






()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발길을 멈추고
들으니 한 사람이
말하기를,

말벌이 모기를 만나
'내 배가 너무 불러
수놈이 찔러야 배설을
하겠으니
시험삼아 너의 그
날카로운 주둥이로
구멍을 뚫어 주면 어떠한가?'
.
하자 모기가 말벌에게
'네 말이 어찌
나쁘다고만 할 수 있겠나.

그러나 요즈음 들리는 말에
이승지(李承旨)
집 청지기가 본래부터
있는 구멍을 뚫었어도
중벌을 면치 못하는데,






만약 없는 구멍을
뚫는다면
그 죄 더욱 무거우리니
내 어찌 감히

감당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을 듣느라고
이렇게 늦었사옵니다.

대죄를 지었사옵니다."
이에 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것은 동방삭의
골계(滑稽)에 속하는
말이로다.
.
그 청지기의 죄를
용서한다."






□ 동방삭(東方朔)
 
동방삭은 본래의 성이
(),
.
자는 만천(曼倩)이고,
평원군 염차현
(지금의 산둥성 링())
사람이다.

야심만만한 무제가
즉위하여
사방으로 인재를 구할 때
동방삭이
글을 올려 스스로를
추천함으로써
()이 되었다.
.
그 뒤 상시랑,
태중대부 등의 벼슬을 거쳤다.


 




그는 성격이 유머스럽고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지혜롭고 익살스러워
늘 무제 앞에서
우스갯소리로 무제를
즐겁게 했다.
.
그러면서도
황제의 기분을 잘 살펴
때에 맞춰 적절하게
바른 소리를 했다
한서
동방삭전에 기록되어 있다.

무제는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여
상림원(上林苑)이란
정원을 꾸몄는데,
.
동방삭이 상림원을
조성한 것은
백성의 기름진 땅을
뺏는 일로,
.
위로는 나라의 수입을
줄이고
아래로는 농사와
누에치기의
기초를 해치는 것입니다.






이미 되어 있는 일을
버리고
잘못된 길로 나가는 일
이라며 바른 소리를 했다

산둥성 링현 신두진(新都镇)
서남쪽에 동방삭의 무덤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
묘역은 분묘와
제사를 지내는
사당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
무덤 북쪽으로
독마하(篤馬河)가 흐르고
동쪽은 진한 72()
우뚝 솟아 있다.


 
동방삭의 무덤은
동서 22미터,
남북 16미터높이 3미터의
규모다.
.
무덤 앞에 원래
동방삭선생지묘라고
쓴 비석이 있었으나
사당은 무너졌고,

당 천보 13년인
754년에 안진경이 쓴
한태중대부동방선생화찬
(漢太中大夫東方先生畵贊)’
비가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링현 현성에서
정자를 지어 옮겨서
보호하고 있다.
.
이밖에 링현에는
동방삭공원(2004년 정식
개장)
비롯하여 관련 시설물들이
속속 조성되고 있다.
[출처동방삭이



 
滑 익살스러울 골
稽 상고할 계
 
풀이 말이 매끄럽고 익살스러워 웃음을 자아내는 일
 
진나라 때 손초가
왕제에게,
돌을 베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 한다
.
해야 할 것을 잘못하여
돌로 양치하고
흐르는 물을 벤다
고 하였다.
.
그러자 왕제가,
물은 어떻게 베며
돌로 어떻게 양치질 하는가?”

하니손초가
물을 베는 것은 귀를 씻고자
해서이고,
.
돌로 양치질하는 것은
이를 단단하게 하고자
해서이다” 라고 하였다.

왕안석의 아들 원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나,



어떤 사람이
노루와 사슴 한 마리씩을
왕안석에게 보낸적이 있는데,
원택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혹자가 묻기를
“ 어느 놈이 사슴이고
어느 놈이 노루인가
라고 하자,
.
원택이 답하기를
 노루 옆에 있는
놈이 사슴이고,
.
사슴옆에 있는 놈이
노루다라고 하였다.
.
그는 이후 경전을
해석할 때도 이와 같았다.









그는 성격이 유머스럽고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지혜롭고 익살스러워
늘 무제 앞에서
우스갯소리로 무제를
즐겁게 했다.
.
그러면서도
황제의 기분을 잘 살펴
때에 맞춰 적절하게
바른 소리를 했다
한서
동방삭전에 기록되어 있다.

무제는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여
상림원(上林苑)이란
정원을 꾸몄는데,
.
동방삭이 상림원을
조성한 것은
백성의 기름진 땅을
뺏는 일로,
.
위로는 나라의 수입을
줄이고
아래로는 농사와
누에치기의
기초를 해치는 것입니다.






이미 되어 있는 일을
버리고
잘못된 길로 나가는 일
이라며 바른 소리를 했다

산둥성 링현 신두진(新都镇)
서남쪽에 동방삭의 무덤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
묘역은 분묘와
제사를 지내는
사당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
무덤 북쪽으로
독마하(篤馬河)가 흐르고
동쪽은 진한 72()
우뚝 솟아 있다.


 
동방삭의 무덤은
동서 22미터,
남북 16미터높이 3미터의
규모다.
.
무덤 앞에 원래
동방삭선생지묘라고
쓴 비석이 있었으나
사당은 무너졌고,

당 천보 13년인
754년에 안진경이 쓴
한태중대부동방선생화찬
(漢太中大夫東方先生畵贊)’
비가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링현 현성에서
정자를 지어 옮겨서
보호하고 있다.
.
이밖에 링현에는
동방삭공원(2004년 정식
개장)
비롯하여 관련 시설물들이
속속 조성되고 있다.
[출처동방삭이



 
滑 익살스러울 골
稽 상고할 계
 
풀이 말이 매끄럽고 익살스러워 웃음을 자아내는 일
 
진나라 때 손초가
왕제에게,
돌을 베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 한다
.
해야 할 것을 잘못하여
돌로 양치하고
흐르는 물을 벤다
고 하였다.
.
그러자 왕제가,
물은 어떻게 베며
돌로 어떻게 양치질 하는가?”

하니손초가
물을 베는 것은 귀를 씻고자
해서이고,
.
돌로 양치질하는 것은
이를 단단하게 하고자
해서이다” 라고 하였다.

왕안석의 아들 원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나,





어떤 사람이
노루와 사슴 한 마리씩을
왕안석에게 보낸적이 있는데,
원택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혹자가 묻기를
“ 어느 놈이 사슴이고
어느 놈이 노루인가
라고 하자,
.
원택이 답하기를
 노루 옆에 있는
놈이 사슴이고,
.
사슴옆에 있는 놈이
노루다라고 하였다.
.
그는 이후 경전을
해석할 때도 이와 같았다.

고금소총 28
 
동방삭 류의
음담익살이로다.
(東方朔滑稽之類)


비록 사정이 있어
대궐에서 사가(私家)
내보냈거나
내쳐진 궁녀라 하더라도
상통(相通)하면
중죄로 다스렸는데,
.
그 이유는 대궐에 살 때  
왕이나 왕세자 등과
관계를 맺은 전력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평생을 홀로
살아야 하였다.
선조(宣祖)
오성(鰲城이항복(李恒福)
"지신(知申)"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집 청지기가
궁녀와 상통하는 죄를
범하여 벌을 받게
되었는 데
불쌍히 여겼으나
해결할만한 계책이 없었다.
 .
이때 마침 왕이
오성을 불렀다.
.
오성은 일부러
늦게 들어가서 입시하니
왕이
"경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는고 ?"
하고 물었다.

"상명(上命)을 받자옵고
들어오는 데 종로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떠들고
웃는 것을 보게 되어






()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발길을 멈추고
들으니 한 사람이
말하기를,

말벌이 모기를 만나
'내 배가 너무 불러
수놈이 찔러야 배설을
하겠으니
시험삼아 너의 그
날카로운 주둥이로
구멍을 뚫어 주면 어떠한가?'
.
하자 모기가 말벌에게
'네 말이 어찌
나쁘다고만 할 수 있겠나.

그러나 요즈음 들리는 말에
이승지(李承旨)
집 청지기가 본래부터
있는 구멍을 뚫었어도
중벌을 면치 못하는데,






만약 없는 구멍을
뚫는다면
그 죄 더욱 무거우리니
내 어찌 감히

감당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을 듣느라고
이렇게 늦었사옵니다.

대죄를 지었사옵니다."
이에 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것은 동방삭의
골계(滑稽)에 속하는
말이로다.
.
그 청지기의 죄를
용서한다."






□ 동방삭(東方朔)
 
동방삭은 본래의 성이
(),
.
자는 만천(曼倩)이고,
평원군 염차현
(지금의 산둥성 링())
사람이다.

야심만만한 무제가
즉위하여
사방으로 인재를 구할 때
동방삭이
글을 올려 스스로를
추천함으로써
()이 되었다.
.
그 뒤 상시랑,
태중대부 등의 벼슬을 거쳤다.


 




그는 성격이 유머스럽고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지혜롭고 익살스러워
늘 무제 앞에서
우스갯소리로 무제를
즐겁게 했다.
.
그러면서도
황제의 기분을 잘 살펴
때에 맞춰 적절하게
바른 소리를 했다
한서
동방삭전에 기록되어 있다.

무제는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여
상림원(上林苑)이란
정원을 꾸몄는데,
.
동방삭이 상림원을
조성한 것은
백성의 기름진 땅을
뺏는 일로,
.
위로는 나라의 수입을
줄이고
아래로는 농사와
누에치기의
기초를 해치는 것입니다.






이미 되어 있는 일을
버리고
잘못된 길로 나가는 일
이라며 바른 소리를 했다

산둥성 링현 신두진(新都镇)
서남쪽에 동방삭의 무덤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
묘역은 분묘와
제사를 지내는
사당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
무덤 북쪽으로
독마하(篤馬河)가 흐르고
동쪽은 진한 72()
우뚝 솟아 있다.


 
동방삭의 무덤은
동서 22미터,
남북 16미터높이 3미터의
규모다.
.
무덤 앞에 원래
동방삭선생지묘라고
쓴 비석이 있었으나
사당은 무너졌고,

당 천보 13년인
754년에 안진경이 쓴
한태중대부동방선생화찬
(漢太中大夫東方先生畵贊)’
비가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링현 현성에서
정자를 지어 옮겨서
보호하고 있다.
.
이밖에 링현에는
동방삭공원(2004년 정식
개장)
비롯하여 관련 시설물들이
속속 조성되고 있다.
[출처동방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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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작성자노준식 | 작성시간 26.01.07 잘 보고감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효천대운 | 작성시간 26.01.07 잘 보고 갑니다
  • 작성자황포돗대 | 작성시간 26.01.07 사랑방 야화 잘 보구갑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마두산 | 작성시간 26.01.07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고운글2 | 작성시간 26.01.07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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