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28화 동방삭 류의 음담익살이로다. (東方朔滑稽之類) 비록 사정이 있어 대궐에서 사가(私家)로 내보냈거나 내쳐진 궁녀라 하더라도 상통(相通)하면 중죄로 다스렸는데, . 그 이유는 대궐에 살 때 왕이나 왕세자 등과 관계를 맺은 전력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평생을 홀로 살아야 하였다. 선조(宣祖)때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이 "지신(知申)"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집 청지기가 궁녀와 상통하는 죄를 범하여 벌을 받게 되었는 데 불쌍히 여겼으나 해결할만한 계책이 없었다. . 이때 마침 왕이 오성을 불렀다. . 오성은 일부러 늦게 들어가서 입시하니 왕이 "경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는고 ?" 하고 물었다. . "상명(上命)을 받자옵고 들어오는 데 종로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떠들고 웃는 것을 보게 되어 ![]() 신(臣)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발길을 멈추고 들으니 한 사람이 말하기를, . 말벌이 모기를 만나 '내 배가 너무 불러 수놈이 찔러야 배설을 하겠으니 시험삼아 너의 그 날카로운 주둥이로 구멍을 뚫어 주면 어떠한가?' . 하자 모기가 말벌에게 '네 말이 어찌 나쁘다고만 할 수 있겠나. . 그러나 요즈음 들리는 말에 이승지(李承旨)의 집 청지기가 본래부터 있는 구멍을 뚫었어도 중벌을 면치 못하는데, ![]() 만약 없는 구멍을 뚫는다면 그 죄 더욱 무거우리니 내 어찌 감히 . 감당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을 듣느라고 이렇게 늦었사옵니다. . 대죄를 지었사옵니다." 이에 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것은 동방삭의 골계(滑稽)에 속하는 말이로다. . 그 청지기의 죄를 용서한다." □ 동방삭(東方朔이) 동방삭은 본래의 성이 장(張), . 자는 만천(曼倩)이고, 평원군 염차현 (지금의 산둥성 링(陵)현) 사람이다. . 야심만만한 무제가 즉위하여 사방으로 인재를 구할 때 동방삭이 글을 올려 스스로를 추천함으로써 낭(郎)이 되었다. . 그 뒤 상시랑, 태중대부 등의 벼슬을 거쳤다. ![]() 그는 성격이 유머스럽고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지혜롭고 익살스러워 늘 무제 앞에서 우스갯소리로 무제를 즐겁게 했다. . 그러면서도 “황제의 기분을 잘 살펴 때에 맞춰 적절하게 바른 소리를 했다”고 『한서』 「동방삭전」에 기록되어 있다. . 무제는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여 상림원(上林苑)이란 정원을 꾸몄는데, . 동방삭이 상림원을 조성한 것은 “백성의 기름진 땅을 뺏는 일로, . 위로는 나라의 수입을 줄이고 아래로는 농사와 누에치기의 기초를 해치는 것입니다. ![]() 이미 되어 있는 일을 버리고 잘못된 길로 나가는 일” 이라며 바른 소리를 했다 . 산둥성 링현 신두진(新都镇) 서남쪽에 동방삭의 무덤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 묘역은 분묘와 제사를 지내는 사당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 무덤 북쪽으로 독마하(篤馬河)가 흐르고 동쪽은 진한 72총(塚)이 우뚝 솟아 있다. 동방삭의 무덤은 동서 22미터, 남북 16미터, 높이 3미터의 규모다. . 무덤 앞에 원래 ‘동방삭선생지묘’라고 쓴 비석이 있었으나 사당은 무너졌고, . 당 천보 13년인 754년에 안진경이 쓴 ‘한태중대부동방선생화찬 (漢太中大夫東方先生畵贊)’ 비가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링현 현성에서 정자를 지어 옮겨서 보호하고 있다. . 이밖에 링현에는 동방삭공원(2004년 정식 개장)을 비롯하여 관련 시설물들이 속속 조성되고 있다. [출처] 동방삭이 滑 : 익살스러울 골 稽 : 상고할 계 풀이 : 말이 매끄럽고 익살스러워 웃음을 자아내는 일 - 진나라 때 손초가 왕제에게, “돌을 베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 한다”고 . 해야 할 것을 잘못하여 “돌로 양치하고 흐르는 물을 벤다” 고 하였다. . 그러자 왕제가, “물은 어떻게 베며 돌로 어떻게 양치질 하는가?” . 하니, 손초가 “물을 베는 것은 귀를 씻고자 해서이고, . 돌로 양치질하는 것은 이를 단단하게 하고자 해서이다” 라고 하였다. . - 왕안석의 아들 원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나, ![]() 어떤 사람이 노루와 사슴 한 마리씩을 왕안석에게 보낸적이 있는데, 원택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혹자가 묻기를 “ 어느 놈이 사슴이고 어느 놈이 노루인가” 라고 하자, . 원택이 답하기를 “노루 옆에 있는 놈이 사슴이고, . 사슴옆에 있는 놈이 노루다”라고 하였다. . 그는 이후 경전을 해석할 때도 이와 같았다. ![]() ![]() 그는 성격이 유머스럽고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지혜롭고 익살스러워 늘 무제 앞에서 우스갯소리로 무제를 즐겁게 했다. . 그러면서도 “황제의 기분을 잘 살펴 때에 맞춰 적절하게 바른 소리를 했다”고 『한서』 「동방삭전」에 기록되어 있다. . 무제는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여 상림원(上林苑)이란 정원을 꾸몄는데, . 동방삭이 상림원을 조성한 것은 “백성의 기름진 땅을 뺏는 일로, . 위로는 나라의 수입을 줄이고 아래로는 농사와 누에치기의 기초를 해치는 것입니다. ![]() ![]() 이미 되어 있는 일을 버리고 잘못된 길로 나가는 일” 이라며 바른 소리를 했다 . 산둥성 링현 신두진(新都镇) 서남쪽에 동방삭의 무덤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 묘역은 분묘와 제사를 지내는 사당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 무덤 북쪽으로 독마하(篤馬河)가 흐르고 동쪽은 진한 72총(塚)이 우뚝 솟아 있다. ![]() 동방삭의 무덤은 동서 22미터, 남북 16미터, 높이 3미터의 규모다. . 무덤 앞에 원래 ‘동방삭선생지묘’라고 쓴 비석이 있었으나 사당은 무너졌고, . 당 천보 13년인 754년에 안진경이 쓴 ‘한태중대부동방선생화찬 (漢太中大夫東方先生畵贊)’ 비가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링현 현성에서 정자를 지어 옮겨서 보호하고 있다. . 이밖에 링현에는 동방삭공원(2004년 정식 개장)을 비롯하여 관련 시설물들이 속속 조성되고 있다. [출처] 동방삭이 滑 : 익살스러울 골 稽 : 상고할 계 풀이 : 말이 매끄럽고 익살스러워 웃음을 자아내는 일 - 진나라 때 손초가 왕제에게, “돌을 베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 한다”고 . 해야 할 것을 잘못하여 “돌로 양치하고 흐르는 물을 벤다” 고 하였다. . 그러자 왕제가, “물은 어떻게 베며 돌로 어떻게 양치질 하는가?” . 하니, 손초가 “물을 베는 것은 귀를 씻고자 해서이고, . 돌로 양치질하는 것은 이를 단단하게 하고자 해서이다” 라고 하였다. . - 왕안석의 아들 원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나, ![]() ![]() ![]() 어떤 사람이 노루와 사슴 한 마리씩을 왕안석에게 보낸적이 있는데, 원택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혹자가 묻기를 “ 어느 놈이 사슴이고 어느 놈이 노루인가” 라고 하자, . 원택이 답하기를 “노루 옆에 있는 놈이 사슴이고, . 사슴옆에 있는 놈이 노루다”라고 하였다. . 그는 이후 경전을 해석할 때도 이와 같았다. ![]() ![]() 동방삭 류의 음담익살이로다. (東方朔滑稽之類) 비록 사정이 있어 대궐에서 사가(私家)로 내보냈거나 내쳐진 궁녀라 하더라도 상통(相通)하면 중죄로 다스렸는데, . 그 이유는 대궐에 살 때 왕이나 왕세자 등과 관계를 맺은 전력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평생을 홀로 살아야 하였다. 선조(宣祖)때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이 "지신(知申)"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집 청지기가 궁녀와 상통하는 죄를 범하여 벌을 받게 되었는 데 불쌍히 여겼으나 해결할만한 계책이 없었다. . 이때 마침 왕이 오성을 불렀다. . 오성은 일부러 늦게 들어가서 입시하니 왕이 "경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는고 ?" 하고 물었다. . "상명(上命)을 받자옵고 들어오는 데 종로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떠들고 웃는 것을 보게 되어 ![]() ![]() 신(臣)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발길을 멈추고 들으니 한 사람이 말하기를, . 말벌이 모기를 만나 '내 배가 너무 불러 수놈이 찔러야 배설을 하겠으니 시험삼아 너의 그 날카로운 주둥이로 구멍을 뚫어 주면 어떠한가?' . 하자 모기가 말벌에게 '네 말이 어찌 나쁘다고만 할 수 있겠나. . 그러나 요즈음 들리는 말에 이승지(李承旨)의 집 청지기가 본래부터 있는 구멍을 뚫었어도 중벌을 면치 못하는데, ![]() ![]() 만약 없는 구멍을 뚫는다면 그 죄 더욱 무거우리니 내 어찌 감히 . 감당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을 듣느라고 이렇게 늦었사옵니다. . 대죄를 지었사옵니다." 이에 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것은 동방삭의 골계(滑稽)에 속하는 말이로다. . 그 청지기의 죄를 용서한다." □ 동방삭(東方朔이) 동방삭은 본래의 성이 장(張), . 자는 만천(曼倩)이고, 평원군 염차현 (지금의 산둥성 링(陵)현) 사람이다. . 야심만만한 무제가 즉위하여 사방으로 인재를 구할 때 동방삭이 글을 올려 스스로를 추천함으로써 낭(郎)이 되었다. . 그 뒤 상시랑, 태중대부 등의 벼슬을 거쳤다. ![]() ![]() 그는 성격이 유머스럽고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지혜롭고 익살스러워 늘 무제 앞에서 우스갯소리로 무제를 즐겁게 했다. . 그러면서도 “황제의 기분을 잘 살펴 때에 맞춰 적절하게 바른 소리를 했다”고 『한서』 「동방삭전」에 기록되어 있다. . 무제는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여 상림원(上林苑)이란 정원을 꾸몄는데, . 동방삭이 상림원을 조성한 것은 “백성의 기름진 땅을 뺏는 일로, . 위로는 나라의 수입을 줄이고 아래로는 농사와 누에치기의 기초를 해치는 것입니다. ![]() ![]() 이미 되어 있는 일을 버리고 잘못된 길로 나가는 일” 이라며 바른 소리를 했다 . 산둥성 링현 신두진(新都镇) 서남쪽에 동방삭의 무덤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 묘역은 분묘와 제사를 지내는 사당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 무덤 북쪽으로 독마하(篤馬河)가 흐르고 동쪽은 진한 72총(塚)이 우뚝 솟아 있다. ![]() 동방삭의 무덤은 동서 22미터, 남북 16미터, 높이 3미터의 규모다. . 무덤 앞에 원래 ‘동방삭선생지묘’라고 쓴 비석이 있었으나 사당은 무너졌고, . 당 천보 13년인 754년에 안진경이 쓴 ‘한태중대부동방선생화찬 (漢太中大夫東方先生畵贊)’ 비가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링현 현성에서 정자를 지어 옮겨서 보호하고 있다. . 이밖에 링현에는 동방삭공원(2004년 정식 개장)을 비롯하여 관련 시설물들이 속속 조성되고 있다. [출처] 동방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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