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발 뚜껑
당대의 권문세가 김대감 집엔 아첨꾼들이 들락거린다.
온갖 뇌물을 다 받아 챙겼지만 요 근래 받은 것 중의 으뜸은 안성 사또가 가지고온 방짜 금주발이다.
김대감 밥상에 방짜 금주발이 오르면 온 방이 금빛으로 휘황찬란해진다.
“요즘 왜 이리 밥맛이 당기는지 모르겠소.”
김대감의 말에 안방마님이 생긋이 웃으며 금주발 예찬을 한다.
“대감, 금주발이 밥에 기를 불어넣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아침 김대감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금주발 뚜껑이 없어진 것이다.
대감이 아침상에 수저도 안 대고 “주리를 틀어서라도 찾아내라!” 고함치며 집을 나서자
마님은 우선 찬모 둘을 꿇어앉혀놓고 자백을 종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싸리 회초리로 피가 흐르도록 등줄기를 때려도 찬모들은 한사코 결백을 주장했다.
집안의 하인들, 침모, 행랑아범 등 모두를 불러모아놓고 으름장을 놨지만 금주발 뚜껑을 훔쳐갔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마님은 몸종을 시켜 먹골 사는 신 무당을 불러오도록 했다.
새빨간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신 무당이 왔다.
마님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신 무당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배시시 웃더니
“이건 굿판을 벌일 필요도 없어.
장닭 한마리와 송곳을 갖고와.”
그 말에 마님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안마당에 집안 사람들 모두를 모아놓고 봉당에 올라선 신 무당이
왼손엔 장닭의 모가지를 움켜쥐고 오른손엔 송곳을 쥔 채 찢어지는 쇳소리로
“지금도 늦지 않았어.
금주발을 훔쳐간 사람은 빨리 나와.
이 장닭의 눈을 찌르면 금주발 뚜껑을 훔친 사람은 장님이 될 거야!
빨리 나오지 못해!”
적막이 흘렀다.
“찔러!”
독기를 품은 마님이 소리쳤다.
“꽥!”
송곳에 눈을 찔린 장닭이 선혈을 뿌리며 날개를 퍼덕이자 신 무당의 얼굴도 피범벅이 되었다.
피를 쏟던 장닭이 마침내 다리를 축 늘어뜨리며 조용해지자 마님과 신 무당은 안마당을 내려다봤다.
장님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침 삼키는 소리뿐이었다.
그때 서당 훈장과 학동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데 나이 먹은 학동에게 업혀 들어오는 아이는
바로 늦게 본 김대감의 외동아들이다.
“엄마, 앞이 안 보여!”
마님이 장님이 된 외동아들을 잡고 통곡하며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훈장 왈
“조금 전에 글을 읽다가 갑자기 꽥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싸안지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