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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야화 521

작성자석양 등대|작성시간26.04.25|조회수167 목록 댓글 10

까막눈 뱃사공


꽃피고 새 우는 어느 봄날 해거름,
운포나루 뱃사공 고씨가 허달스님을 강 건네 주려고 닻을 올리는데
때마침 기생들을 데리고 천렵을 갔던 고을 세도가 자제들이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며 나루터로 몰려왔다.

사또 아들, 천석꾼 오첨지 아들, 관찰사 조카가 기생을 하나씩 끼고 꼴사납게 치마 밑으로 손을 넣으며 키득거리고 다가와
“친구가 아직 안왔으니 배 띄우지 말고 기다려!”라며 큰소리를 쳤다.
패거리 중 하나가 어지간히 급했는지 기생을 끼고 솔밭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스님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지체했다간 날이 어두워집니다.
스님을 먼저 건네드리고 오겠습니다요.”
늙은 뱃사공이 사정을 해도 그들은 막무가내다.
“지금쯤 옥문을 닦으며 치마를 추스르고 있을 게야.
기다려!”

사또 아들은 뱃사공을 부르더니 땅바닥에 ‘내 천(川)’ 자를 쓰고는 “이게 무슨 글자인지 아는가?” 하고 물었다.
눈만 끔벅거리며 뱃사공이 “모르겠습니다요.”하자 웃음보가 터졌다.
사또 아들은 오십 줄에 접어든 뱃사공을 부뚜막에 올라간 강아지 때리듯 막대기로 때리며
“하루에 수십번 내를 건너며 내 천 자도 모르다니.
아는 것이라곤 낮에 배 타고 밤이면 마누라 배 타는 것 뿐이지!”
그 말에 또 웃음이 터졌다.

보다 못한 스님의 대갈일성.
“젊은이들이 언행이 거칠구먼!”
하지만 오첨지 아들은 “공산에 달이 뜨니 개 짖는 소리 요란하도다.”라며 도리어 스님을 비꼬았고, 기생들까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스님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기생을 끼고 솔밭으로 들어갔던 황부잣집 아들이 돌아오자 모두 배에 올랐다.
스님이 오르려는데 노를 잡고 밀어서 스님은 엉덩방아를 찧었고 배는 떠나버렸다.
또 웃음이 터졌다.
배 위에서는 춤판이 벌어졌다.
“안됩니다.
배가 뒤집힐 수도 있습니다요.”
“당신이 노로 균형을 잡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기어코 강 한가운데서 배가 뒤집어졌다.
며칠 전 큰 봄비로 강물이 불어 강 한가운데는 아수라장이 됐다.
뱃사공이 헤엄을 치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비님들 헤엄 못치시오?”
“못쳐, 못쳐, 어푸~어푸!”
“내를 건널 땐 내 천 자는 몰라도 헤엄은 칠 줄 알아야지요.”
뱃사공은 유유히 헤엄쳐 나루터로 돌아왔다.

그날 밤 혈혈단신 뱃사공 고씨가 살던 나루터의 초가삼간이 불길에 휩싸였다.
아우성을 집어삼킨 강물은 말없이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흘러갔다.
스님과 뱃사공 고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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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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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강송 | 작성시간 26.05.01 new 기고 만장하더니 제 바람에 물귀신이 되었네요
  • 작성자노준식 | 작성시간 26.05.01 new 사랑방 야화 잘 보고감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미경 | 작성시간 26.05.01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초수동 | 작성시간 26.05.01 new 내용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황포돗대 | 작성시간 26.05.01 new 사랑 방 야화 잘 보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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