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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현현에 관한연구

작성자ysong777|작성시간09.11.13|조회수1,289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현현에 관한연구

 

- 목 차 -

 

 

 

Ⅰ. 들어가는 말 ․․․․․․․․․․․․․․․․․․․․․․․․․․․․․․․ 1

 

Ⅱ. 특별 계시의 필요성․․․․․․․․․․․․․․․․․․․․․․․․․․․․ 1

 

Ⅲ. 특별 계시의 방법․․․․․․․․․․․․․․․․․․․․․․․․․․․․․ 1

 

Ⅳ. 데오파니(Theophany)․․․․․․․․․․․․․․․․․․․․․․․․․․․ 1

1.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의 성격상 특징․․․․․․․․․․․․․․․․․ 2

2.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의 방식 ․․․․․․․․․․․․․․․․․․․․ 2

1) 현현의 분류 ․․․․․․․․․․․․․․․․․․․․․․․․․․․․․․2

2) 그 밖의 견해들 ․․․․․․․․․․․․․․․․․․․․․․․․․․․․ 3

3) 하나님의 이름(God's name) ․․․․․․․․․․․․․․․․․․․․․․ 4

 

Ⅴ. 맺는말 ․․․․․․․․․․․․․․․․․․․․․․․․․․․․․․․․․․ 7

 

 

 

 

 

 

 

 

 

 

 

 

 

 

 

 

Ⅰ.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자연계시는 비록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참되고 정확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꼭 사역(works)을 통해서 뿐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 분은 단지 어떤 일들을 행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어떤 일들을 말씀하셨다. 특별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능하신 행위, 그리고 예언자적이며 사도적인 대변자들에게 주신 메시지를 가리킨다. 오늘날 그 내용은 성경 안에 담겨있다. 성경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명제적인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

본 주제의 연구 목적은 첫째,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존재와 성령의 도우심에 대한 당위성(필요성)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둘째로, 이러한 증명을 통해 가르치는 자들로 하여금 성도들을 옳바른 길로 인도하게 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주제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지혜로 모든 내용들을 다룬다는 것은 교만이라 생각한다. 오로지 성경에 근거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며, 이제 주제에 접근해 보도록 하겠다.

 

Ⅱ. 특별 계시의 필요성

인간 타락으로 인해 일반 계시가 흐려졌으며 인간의 이해력이 약화되었으므로 하나님과의 교류를 위해서 추가 조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특별 계시는 이미 밝힌 일반 계시의 불충분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반드시 요청되는 것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며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과 교통하기를 원하시므로 그 실현으로 특별 계시를 주셨다.

 

죄의 치유 - 일반 계시로서도 인간의 죄를 알 수는 있으나, 특별 계시는 이를 더욱 명확히 보여주며 여기서 탈피하는 방법으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제시한다.

영적 욕구의 충족 -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의 영적 갈급함은 하나님께 나 아가는 방법을 보여 주는 특별 계시로써만 해소될 수 있다.

확실한 영적 지식의 제공 - 일반 계시는 해석상 모호함을 필연적으로 갖고 있 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지는 특별 계시는 이를 명확히 한다.

구원의 진리 제공 - 특별 계시의 최종적 가치는 하나님과 더불어 나눌 영적 친 교를 이룸과,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구원에 도달함에 있다.

 

Ⅲ. 특별 계시의 방법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방법은 대략 세 가지 종류로 구별된다. 첫째, 하나님의 현현이고 둘째는 직접적 전달이며, 셋째는 이적이다.

우리는 이제 특별 계시의 방법 중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현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결코 멀리 떠나 계시는 분이 아니며,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은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이셨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진리의 현장에 한 걸음 발을 내딛도록 하겠다.

 

Ⅳ. 데오파니(Theophany)

데오파니(Theophany)란 하나님께서 인간의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신 것을 말한다. 이 하나님의 현현(顯現)은 주로 구약성경에 국한된 사건이다. 구약에서는 그의 백성들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위를 지칭하는 데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 속에는 어느 정도 정당한 신인동형론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몇몇 경우에 있어서 그들이 신의 임재를 가리키고 육감적인 현상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각 경우에 있어서의 내재적인 요점은 하나님 자신이 부수적인 지식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임재하고,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1.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의 성격상 특징

① 종종 중대한 사건들을 소개함(출3:1-12)

② 하나님의 계획을 더 밝히 계시함(창15:1-17 \ 28:12-17)

③ 언제나 초자연적인 일들을 나타내 보여 줌(출3:2-3 \ 수5:13-15)

④ 머뭇거리는 인간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기 위한 것임(출3:2-4:17 \ 삿6:11-24)

⑤ 혹 특별히 이스라엘인이 아닌 경우도 예외적으로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창 20:3-7 \ 민22:20-35), 보통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국한되는 사건임.

 

2.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의 방식

 

1) 현현의 분류

 

ⓐ 직접 말씀을 전달함(출19:9-25), ⓑ 꿈 속에서 말씀하심(창20:3-7 \ 28:12-17), ⓒ 환상 중에 말씀하심(창15:1-21 \ 사6:1-13 \ 겔1;1-3 \ 8:1-4), ⓓ 천사를 통해 메세지를 전달하심(창16:7-13 \ 18:1-33 \ 22:11-18 \ 32:24-30 \ 출3:2-4:17 \ 수5:13-15 \ 삿2:1-5 \ 6:11-24 \ 13:2-25), 그리고 ⓔ 꿈 속에서 천사를 통해 말씀하심(창31:11-13).

비슷한 내용이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도 있다.

 

상징적 임재 - 구약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중에 상징적으로 거주 하심을 표현하는 부분이 많다. 이는 주로 무생물을 통하여 자기의 영광의 일부를 드러내 보이시는 방법이며 그 실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성소의 그룹(Cherubim) 사이에서(시80:1 \ 99:1). 둘째, 불과 연기의 구름 사이에서(창15:17 \ 출3:2 \ 19:9,16: \ 33:9 \ 시78:14 \ 99:9). 셋째, 미풍 사이에서 (왕상19:12).

 

주의 사자를 통한 임재 - 구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자는 피조(被造)된 천사 가 아니다. 즉 주의 사자를 통한 임재시는 이 사자가 하나님과는 구별되는 분으로도 묘사되나(출23:20-23 \ 사63:8-9) 때로 동일한 분으로도 취급된다(창16:13 \ 32:28). 보통 이는 3위 가운데 제2위이신 성자(聖子)의 지상 임재로 본다(말3:1).

 

성육신(成肉身)과 교회를 통한 임재 -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 신 사건으로 신현(Theophany)의 절정이다(골1:19 \ 2:9). 또한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있었던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성립된 교회는 제3위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령의 전이다(고전3;16 \ 엡2:21). 그리고 이는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룩될 하나님의 완전한 현현의 현재적 모형이다(계21:2-3).

 

2)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현현의 양식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구약의 많은 구절들에서 하나님의 얼굴(panim)이라는 말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는 곳은 브니엘(문자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얼굴” \ 창32:30)이다. 하나님은 그의 얼굴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으며, 그의 얼굴은 그들과 함께 가나안으로 가며(출33;14 \ 여기서 “임재”라는 말은 문자적인 의미로는 “얼굴”이다), 그것은 그들의 축복이다(민6:25 이하).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는 하나님의 얼굴로부터 숨는 것(신31:17)이거나 숨기우는 것(창4:14)이다. 이 경우에 얼굴은 임재를 나타내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의 음성(qol)과 말씀(dabar) 역시 그의 행동의 매개체이다. 그것들은 타오르는 가시덤불에서나 시내산에서처럼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일 수도 있고, 예언자들을 통한 그의 의지의 간접적인 선언일 수도 있다(사2:1 등).

 

하나님의 영광(kabod) 또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를 알리는 하나의 현상이다. 그것은 삼키는 불과 같다(출24:17). 그것은 성막과(출29:43) 후에는 성전을(참조, 겔10장) 충만케 하였다. 그것은 또한 모세의 얼굴에도 반영되고 있다(출34:29 \ 참조, 고후3:12-18). 하나님의 영광은 이사야와 에스겔의 부름에서 나타난 환상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광은 범해지기도 한다(사3:8). 궁극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온 세상을 충만케 하며(사6:3), 결국 계시될 것이다. 신체적인 현현의 배후에는 그의 초월적 내재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과 역사 속에 하나님 자신이 존재한다.

 

하나님 또는 야훼의 천사(mal'ak)는 또다른 현현의 방식이다. 천사라도 용 어 자체는 매우 일반적이며, 모든 신의 사자에게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천사는 가시적이며 가청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되고 있다(참조, 창16:7-14 \ 22:15-18 \ 출3:2,4-6). 비록 대체로 하나님 자신이 그런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약간의 구분이 지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창24:40 \ 출23:20 이하). 주의 천사(일반적인 천사들과는 구분되는)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성육신화될 성자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눅2:9에 나오는 주의 천사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천사는 하나님의 임재의 천사이다. 이것은 아마도, 적어도 몇가지 사례들에 있어서의 신의 임재에 대해서는 “얼굴”의 용법을 보다 더 잘 이해하도록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이름(sem)은 현현의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름은 그 사 람을 대표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고 알릴 수 있는 가시적이며 가청적인 어떤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그의 이름의 선포이다(출6:3 \ 33:19 \ 34:5 이하). 그의 종들은 그의 이름을 그들의 권위로부터 도출해 내고 있다(출3:13,15 \ 삼상17:45).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은 그의 이름을 의지하는 것이며(창12:8 \ 13:4 \ 21:33 \ 26:25 \ 왕상18:24-26), 그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고(신28:58),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며(삼하22:50 \ 시7:17<MT 18> \ 54:6<MT 8>),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시86:9).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고(출20:7), 그것을 모독하는 것(레24:16)은 악이다. 하나님은 그가 자신의 이름이 거하도록 선택한 곳에 거하신다(신12:11,21 \ 삼하7:13\ 왕상3:2 \ 5:3,5<MT 17,19> \ 8:16-19 \ 18:32).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백성들을 보호해 준다(시20:1<MT 2> \ 삼상30:27). 그는 자신의 이름을 위해 그들을 떠나지 않는다(삼상12:22). 이름에 대한 이같은 강조의 요점은 하나님이 그 자신을 그의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구체적인 하나님이며, 그의 계시는 그의 이름 속에 구체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지금까지 우리는 계시 중에서도 특별 계시,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현현이라는 주제에 촛점을 맞추었다. 이제는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여러 가지 현현의 방식 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관찰을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3) 하나님의 이름(God's name)

성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에 관해서 알려질 수 있는 것들을 하나님의 이름(God's name)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보다도 그것을 통해 그가 능동적으로, 객관적으로 하나님을 알리시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우리가 성경 가운데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존재 자체의 계시가 아니라, 피조물에 대한 그의 계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계시는 그의 존재에 상응한다. 그의 이름이 피조물, 특히 사람에 대한 그의 관계의 계시이므로, 성경은 신인동형론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신적인 언어로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그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속성, 기관, 감정, 행동 등이 하나님께 전용되어 표현된 것이다.

 

a. 엘로힘 - 엘로힘은 창세기 1장에서 접하게 되는 이름이다. 창세기 1장에서 만 도 31회나 나타나고 있다. 이 이름이 파생된 그 어원은 “위대하고, 전능하며, 두려운 자”라는 뜻을 가진 (El)이라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엘로힘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복수적 호칭이다. 이 점이 우선 암시하는 바는 분명히 이것이 삼위(Trinity)의 하나님을 뜻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 외에도 하나님의 완전 무결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강한 의미를 나타내는 복수형을 썼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이름 하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크고 놀라운 약속들을 하신 것이다(창 17:1. 35:11).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가 바로 엘로힘의 하나님이다. 그가 말씀하시매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의 세계로 가져오시는 분이시다.

 

b. 엘 샤다이 - 우리는 이미 “엘”의 뜻이 “위대한 그리고 영광스러운”이란 것임 을 알아보았다. 샤다이라는 표현은 구약 성서에서 48회 나오며, 이 말은 항상 “전지전능한”(Almighty)의 뜻으로 번역된다. 이 말의 어원으로 여겨지는 것중에서 가장 유력한 말은 “젖가슴”(breast)이란 뜻으로 양육과 만족 그리고 공급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두 부분을 합치면 엘 샤다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는데, 이는 “우리를 완전 무결하게 양육하고 만족시키며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전능하신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17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려고 나타나셨을 때의 이름이다. “나는 엘 샤다이다”(전능한 하나님)라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c. 아도나이 -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이 호칭이 구약 성서에 약 300회 출현한다. 하나님을 호칭하기 위해 사용될 때 이 낱말은 거의 항상 복수형으로 쓰여진다. 물론 이 이름은 하나님의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을 뜻한다. 우리가 만일 이 이름 하나만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바뀔텐데! 이 이름은 하나님의 주 되심(Lordship)과 우리 편에서는 청지기 됨(stewardship)과 순종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사야가 이사야서 6장에 묘사한 그 장면에서 사용한 이름인데,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아도나이)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라고 하였다. 이사야가 이 땅에서 섬기던 왕은 죽었지만, 그는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그분은 너무도 생생히 살아계셔 통치하고 있었으며, 찬양 받으시기에 지극히 합당한 분이었다!

 

d. 여호와 - 이것은 성경에서 하나님께 대한 호칭으로서 가장 자주 사용된 이름이 다. 이 호칭은 6,800회 이상이나 사용되어졌다! 이것은 “존재하다”로 번역되는 동사로부터 파생된 말이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나님의 정체(identity)에 대해 묻는 모세의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대답하셨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라는 호칭의 핵심이다. 그는 항상 살아있는(ever-living) 분이며 또 유일하게 살아계시는(only-living) 분이고, 스스로 존재하는(self-existent) 분이자 자신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는 자존(self-existent)하실 뿐만 아니라 자족(self-sufficient)하시는 분이시다.

 

e. 여호와 이레 - 이와 같은 하나님의 호칭은 창세기 22장 14절에서 찾을 수 있 다. 여호와 이레라는 호칭은 “하나님이 준비(제공:provides)하신다”는 뜻이다. 이레라는 말은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의미는 우리가 자세히 살펴 보기까지는 좀 불가사이한 듯이 보인다. “준비하다”(provide)는 말은 두개의 라틴 낱말로부터 온 것인데, 우선 “처음의” 또는 “미리”의 뜻을 가진 “프로”(pro)라는 낱말과 “본다”는 뜻의 “비데”(vide)라는 말이 그것이다. 현재 쓰고 있는 “비데오”(video)라는 말이 이 말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이 두 단어가 합쳐져서 분명히 “미리 본다”는 뜻을 이룬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호칭으로서 이 합성어에서 “모든 것을 미리 보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시작에 서 계셨으며, 역사의 종말 그것도 보셨고 그것을 넘어서서 또한 모든 것을 보셨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이미 채워 주시지 않은 우리의 필요라는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다.

 

f. 여호와 로페 - 이 이름은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나온다. 아브라함에 의해 호 칭된 여호와 이레와는 달리 이 여호와 로페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 주어진 호칭이다. 이 호칭이 나타나는 장소는 엘림인데, 마라에서의 쓴물로 인한 위기가 있는 후였다. 로페라는 말은 언제나 치유하고 회복시키며 고치는 것을 의미하다. 하나님께서는 치유하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셨다. 그는 그보다도 더 좋은 것을 하셨다. 그는 “내가 바로 치유, 그 자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g. 여호와 닛시 - 이 호칭은 출애굽기 17장 15절에서 우리 앞에 등장한다.

닛시는 “표상”(stsndard) 또는 “깃발”(banner)을 의미한다. 그 당시에 집단 사회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집단임을 나타내기 위한 방편으로서 표상물이 있었다. 그것은 꼭 깃발인 것은 아니었고 때로는 모인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대(pole)가 되기도 했다.

이 말은 “번쩍이다”(to glisten)는 뜻을 가진 말에서 파생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기적”이라는 말로서 자주 사용했다. 모세가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하나님은 우리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상이며, 승리의 깃발이자 우리가 모여드는 중심 장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투가 매우 치열해질 때면 우리는 그 “표상”(여호와 닛시)에서 떠나지 말고 있어야 한다.

 

h. 여호와 카데쉬 - 이 호칭은 레위기 20장 7절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우리에게 거룩할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더불어서 나타난다. 거룩함이란 우리의 인간성으로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속성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호칭이 얼마나 우리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나는 여호와 카데쉬”(너희를 거룩케 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정말로 우리의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다. 이 낱말은 성화(聖火:sanctification)를 가리키는 것이며, 구약 성서에서 약 700회 정도 사용되었다. 그것은 “거룩하게 쓰기 위해서 갈라놓는 것”(to set apart)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위해 봉헌된 제물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자,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이다! 그는 바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이시다.

 

i. 여호와 샬롬 - 이 호칭은 사사기 6장 24절에서 보게된다. “샬롬”이란 말은 “평화(평안)”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충만한, 완전한, 완성된 또는 완벽한” 등의 의미로도 번역된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안식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전한 평안이시다.

 

j. 여호와 로히 - 시편 23편 1절의 첫 부분에 우리의 찬양에 관계있는 하나님에 대한 또 다른 호칭이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shepherd)”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호칭이 갖는 분위기는 이 시편의 나머지 부분에서 완벽하게 나타나 있다. 그 어떤 호칭도 이 이름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부드럽고 친밀한 감각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계시록 7장 17절은 무어라고 말하는지 들어보라.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이외에도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이정도만 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이제 이쯤해서 우리가 다루어 왔던 총주제인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

 

Ⅴ. 결 론

우리는 이제까지 특별 계시의 방식 중에서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여러 가지 다양한 내용들을 서술해 봤지만, 결국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는 그의 아들 안에서 주어졌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충분히 본 적이 없었다.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인 동시에 계시자(both the revelation and the revealer of God)이시다(요1:18).

그리스도께서는 전에는 결코 알려진 적이 없었던 하나님의 인격(Person)을 드러내셨다. 그는 인간에게 성부를 선포하셨다(요1:18 \ 14:8-9 \ 딤전3:16 참조).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에 의해 알려졌다(요1:15 \ 고후4:6 \ 사40:5). 하나님의 권능이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드러났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거듭거듭 이 일을 하셨다(요3:2 \ 고전1:24) 하나님의 지혜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알려졌다(요7:24 \ 고전1:24). 또한 하나님의 생명이 그에 의해 선포되었다(요일1:1-3).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 구세주에 의해 계시되고 증명되었다(요3:16 \ 롬5:8 \ 요일3:16). 하나님의 은혜-그분께서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분에 넘치는 호의-도 역시 주 예수에 의해 계시되었다(눅2:40 \ 요1:17 \ 살후1:12).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이러한 연구가 학적인 연구 그 자체로만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학을 공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드리고, 또 우리에게 맡겨주신 평신도들을 하나님 앞으로 잘 인도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다면 신학이 죽은 신학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시말하면, 먼저 신학하는 자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야 한다. 그의 능력과 그를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이 연구자 안에서 넘쳐흘러야 한다. 그리고 계속 연구되어지는 학문 속에 하나님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평신도들로 하여금 잘 이해하게 하고 그대로 행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또 한가지, 가장 중요한 것인데 다른 어떤 것 보다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신학을 한다는 것은, 자기 만족에 도취된 욕심장이이거나 아니면 몇백 톤의 폭탄을 어깨에 메고 거리를 활보하는 무법자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자기를 계시하심으로 인간과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인간 스스로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능동적, 적극적 자세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지금도 기다리고 계신다. 힘써 하나님의 마음을 알자. 힘써 하나님의 생각을 알자. 힘써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자.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우리 모두 이 땅에서도 하늘의 영광을 맛보는 자가 되자.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진 사랑의 빚진 자들에게도 이 기쁨을 밝히 전하자.

오늘의 조그만 노력이 내일의 하나님의 영광이 되리라는 아름다운 확신을 가지고, 본 주제에 대한 글을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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