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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욱-침체극복을 위한 아이디어 속출

작성자ysong777|작성시간10.04.09|조회수22 목록 댓글 0

침체극복을 위한 아이디어 속출


지금 한국 교회의 상황은 '회사에서 쫓겨 나게 된 40대의 엘리트' 와 비슿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 교회은 지난 40년간 실패를 모르고 성장해 왔다. 여기 저기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들의 나왔고 세계가

놀라는 큰 부흥과 세계 제일이라는 교회들의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한국 교회는 놀란 그 자체  승리 그 자체 엿다  서구 교회가 침체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도대체 침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이냐고 되물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최초의 실패에 직면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처음 패배하고 난 다음에 '백서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

(수 7:5)고 했던 모습이 바로 지금 처음 침체를 맞이하는 한국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지금 더 이상 부흥하지 않는 모습에 당황하고 있다.

오히려 성도들의 줄어들고 있는 모습 때문에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교회는 침체와 실패 속에서 잠시 충격과 당혹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즉시 이전


침체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 몸부림' 을 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침체한 교계의 판도를 뒤집어 엎어 과거의 부흥의

영광을 되살리자고 요란하게 외치며. 권토중래하며 몸부림 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러가지 부흥의 아이디어들을 속출


하게 된 것이다.


백화점들마다 바겐세일을 내걸고 사람들을 모으듯이 교회들도 역시 총동원 주일이라는 이름 아래 믿든 안 믿든 다른 교회 교인이든

아이든 ' 한번만 '이라도 우리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신자 모시기 운동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행사장에슨 연예인과

운동선수 들 까지도 얼쩡거려야 했다.

그러나 그 곳에 동원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배보다는 모든 순서가 끝나고 난 후 나누어 누는 선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자들이었다.


어쨌든  총동원 주일을 통해서 출석 교인의 10배가 더 왔다느니 20배가 더 왔다느니 하는 말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또 이런 방법을

통해서 교인이 늘었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교역자들을 눈동자에 핏발을 세우며 앞다투어  총동원 주일을 하나의 부흥해사로 실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것도 금단 효과가 나타나 한 번 두 번 횟수를 거듭할 수록 점점 시들해지게 된 것이다.


또한 교회에슨 프로그램 개발 붐이 일어났다. 

'특별하게 ' 찬양해야 하고 ' 특별하게 ' 율동해야 하고 . ' 특별하게' 전도하지 않으면 교회의 부흥의 없는 양 프로그램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일 학교 교사 강습회를 가 보면  마치 교회 부흥을 위한 모든 이론과 방법론의 전시장 같다.

그러나 역설적인 사실은 이렇게 프로그램이 개발 되면 될 수록 교인은 점점 더  줄어 들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모든 시도 들이 ' 객기' 요 ' 몸부림' 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에은 다 헛된 것이 될 안타까운 뭄부림이라고  생각한다.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롬 1'16)의 눈물나는 발버둥이라고 생각한다.


엘리 제사장 시절에 이스라엘은 불레셋과 전재을 햇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매번 전쟁에서 패배하자. 궁지에 몰린 엘리의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즉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가자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이 혹시 우리를 도우실지도 모를 것이도.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백성들의 사기가 올라가는 것은 명약관화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큰 솔리로 외치며 (삼상 4;5)환호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까 ? 하나님의 언약궤는 배앗기고 전쟁은 패하고 엘리 제사장과 그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는 하루 아침에 다 죽게

되었다.

최근의 교회의 몸부림은 마치 흡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가는 객기를 보는 듯하다 물론 교회가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르램을 개발 하거나 넓은 공간을 활용하여 농구장 . 탁구장. 카폐 등 그들 나름대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 자체는 아닌 것이다. 이러한 환경 갱신이 결코 부흥을 위한 메시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기독교 의 생명력이 그런 것에 있는 것은 더욱 아닌 것이다.  어둡고 습기 찬 지하 무덤 카타콤에서도 생명을 걸고  찬송하며

 기도하면 믿음으로 승리 했던 것이 바로 기독교 인 것이다 이런 환경적인 개선이나 프로그램 개발의 차원에서만 몸부림을 친다면 이것은

기독교를 내용 없는 ' 문화 양식의 일종'으로 전략시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개선책으로 인하여 교인 수가 늘어 났다 하더라도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회심 전도라고 말할수  없는 것이다.  오직 수평 이동하는 교인들만 챙겼을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오직 복음 만이 영혼으로 하여금  회심 께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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