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사용한 모든 비유도 바로 이 일관성과 방향성을 유지하였다. 그가 비유를 많이 사용한 이유는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기"(마 13:35) 위해서였는데, 그 감추인 것이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는 것"(엡 1:7)이었다. 예수가 그 감추인 것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엡 1:9)이기도 하다. 그래서"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눅 8:10) 모든 비유에 천국이라는 주제를 곳곳에 숨겨두었다. 아무나 구원받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천국이라는 주제로 비유를 해석하지 않는 한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비유와 말씀은 선문답처럼 환기 적이거나, 제시 적이어서 듣는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정답을 찾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미 정답으로 제시된 키워드 천국을 가지지 않고는 풀 수 없고, 또 그 키를 가지고 푸는 자는 누구에게나 그 해석이 동일하다.
젊은 예수는 이 땅에서 자유롭지만 아주 좁은 범위의 교제만 하시다 죽으셨다. 그러나 그 교제가 단순히 기성세대의 고착화된 의식을 뜯어 고치고 위선을 고발하고, 사회 개혁적인 차원에서 진정한 선을 실천하는 한 젊은 행동주의자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천국을 증거하고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예수의 말뿐만 아니라 그의 삶과 사역 또한 천국이라는 키워드를 빼면 그저 조금 비범한 성자 정도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그가 다른 사람들이 상대하기 꺼려하는 창녀나 세리나 죄인들과 자유로이 식사했다고 해서 도량이 넓고 파격적이며 일종의 히피 같은 자유 분망한 정신세계를 가진 자나, 혹은 도덕적으로 남들이 할 수 없는 사랑을 실천한 것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당시의 창녀나 세리는 단순하게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의 바리새 율법으로 따져서 절대 천국에 갈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죄인'은 단순하게 사기, 절도, 폭행범 같은 범법자라는 뜻이 아니라, 유대사회가 그 사회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결례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그 사회에 소속될 수 없고 구원 받지 못한 자로 낙인찍힌 자였다. 음식을 먹을 때 손 씻는 것을 심각하게 따진 이유가 단순하게 청결한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손 씻지 않는 자는 이방인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부류로 취급되었다. 유대 사회 제반 질서와 구조와 통념상 이들은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진노가 이미 확정된 천하의 죄인으로 도저히 가까이 해선 안 되는 부류의 사람, 그 사회에서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추방된 자들이라는 뜻이다. 유대 땅에 살기는 살되 이미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