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예수는 없다. - 5. 지금 여기에서의 Mission : 지금, 여기‘에서의 mission- 하나님 나라의 건설 1.
작성자ysong777작성시간10.02.27조회수34 목록 댓글 0지금, 여기‘에서의 mission- 하나님 나라의 건설
목사가 설교 중에 가장 쉽게 유혹에 넘어가 잘못을 범하는 것이 있는데, 잘 믿기만 하면 만사형통한다는 것이다. 믿음을 만병통치약으로 소개하고 선전하는 것이다. 이는 큰 잘못이다. 성경의 어디를 찾아봐도 그런 내용은 없다.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고, 암에 걸리고, 교통사고를 당하는 확률은 신자나 불신자나 똑같다. 얼마 전 미국의 US Airway라는 유수의 황공사가 9.11 테러 여파로 법원에 부도를 신청했다. 그런데 수많은 직원을 해고하면서 기독교 신자는 열외로 치겠는가? 그렇지 않다. 가장 많은 경비절감의 효과가 있고 정상 업무에 지장이 없는 부서부터 평소의 근무성적이나 업무처리 능력을 평가해 해고한다.
물론 하나님은 특별히 신자를 구별하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언제나 보호하고 인도하시지만 항상 ‘하나님의 뜻안에서’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따라 오게 마련이고 그 뜻을 잘 이해해야 하지 믿기만 하면 만사형통하는 것은 아니다. 목사가 이런 유혹을 자주 받는 데는 목사 본인의 신학에도 문제가 있지만, 역설적으로는 신자들이 그런 설교를 좋아하고 기대하고 심지어 요구까지 하는 잘못도 있다.
목사가 신자들은 강도 만나 피 흘리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그것이 다 하나님 잘 믿어서 받는 축복이니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가르치기 이전에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잘 믿으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고 모인다. 어느 잘못이 시간적으로 꼭먼저라고 할 것도 없지만 신자들의 잘못된 기대를 고쳐주어야 하는 것이 목사이므로 목사의 잘못이 훨씬 크다. 그런데 엄격히 따지자면 이런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종교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문제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현실의 고통과 어려운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하려는 것이지 어떤 면에선 거창한 깨우침과 영적 성장에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모든 종교의 지조자들은 사람들의 그런 기대를 고의든 아니든 이용하게 마련이다.
기독교를 변명하고자 다른 종교를 함께 물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종교와 인종과 문화와 나라와 시대가 아무리 달라도 자기만의 탐욕을 채우려는 모든 인간의 본성은 동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말이다. 종교를 이용하거나 하나님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유익을 채우려는 바로 이것이 인간의 죄의 본질이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에게 받은 십계명에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가 첫째 계명이고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가 둘째 계명이다. 우상이라는 것이 꼭 나무를 깎아 만들거나 철로 부어 만든 어리석다는 정도는 누구나 알게 되었다.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우상의 정의(definition)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 외에 스스로 만든 어떤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를 이용하거나 하나님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유익을 챙기는 자는 우상 숭배의 죄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