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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이야기

평화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평화운동 연구 Ⅰ . 서 론 A .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작성자ysong777|작성시간07.10.24|조회수51 목록 댓글 0
Ⅰ . 서 론

A .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개혁교회연맹 제1차 협의회는 1877년에 열렸고 회중교회 제1차 협의회는 1891년에 열
렸는데 이 두 세계적인 교단은 1970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통합하여 그 이름을 세계
개혁교회연맹 (WARC)이라 불렀다. 한국기독교학회, (편), 한반도의 평화신학 정착 , 신앙
과 신학 6집 (서울:강남출판사, 1989), P.127.

1982년 카나다의 오타와에서 열린 제21차 WARC 총회는 정의, 평화, 환경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교회가 이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 세계개혁교회연맹, (편),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 (대한기독교서회, 1989), P.378. 이하 WARC로 함.
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오타와 총회는 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오늘의 복음증언을 위한 소명 ) Ibid., p.379.
이라고 하는 신학문서를 채택하고 이를 1983년 2월에 제1차로 모인 새로 선출된 WARC 중
앙위원회로 하여금 집중적으로 연구케 하였다. 바로 이 연구의 결과로 나온 것이
WARC 중앙위원회의 계약명령 인 평화와 정의를 위한 계약 이었다. 곧 WARC는 이
문서를 WARC의 회원교회들과 WCC 본부에 발송하였고, 1983년 벵쿠버에서 열린 WCC는
회원교회들에게 정의, 평화, 환경 (JPIC) 문제에 상호 참여적인 협의적 과정에 참여
할 것을 요청하였다. ) Ibid., p.380.

정의, 평화, 환경 이 세 가지 문제는 오늘날 가장 긴급히 요청되는 삶의 문제이다.
이 중에서 특히 평화문제는 인류의 보편적인 관심사이며 희망이다. 그러나 평화의 개
념은 개인의 심리적 상태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사회 단체들과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 그리스도 철학 연구소, (편), 현대사회와 평화 (서광사, 1991), pp.254-255. 평화 개념은 인간의 삶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
와 함께 발전하였으므로 이 개념은 항상 삶에 대한 완벽한 보장을 의미하고 있다. ) WARC,
p.319.

그런데 서구 교회가 그래왔듯이,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 역시 평화의 가르침과 의미
를 잘못 이해하고 왜곡시켜 왔으며, 좁은 의미로만 해석해 왔다. 강력한 영성주의,
개인주의, 저세상적인 믿음 등은 평화의 개념을 역사적이고 사회구조적인 맥락에서 실
현시키는 데에 장애가 되었다. 평화는 기존 사회구조 내에서의 능동적인 사역이라기
보다는 수동적인 마음의 상태로 이해되어 왔다. 그들은 영원한 평화, 영적인 평화,
혹은 유토피아적인 평화를 강조해 왔으며, 이 평화는 인간행동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선물로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 Ibid., p.318.

그러나 예수가 가르친 평화는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이었으며 단순히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만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변화하는 역동적인 발전을 의미하는 것 이었
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되라 (마5:9)는 말은 단순히 평화로운 마음을 가
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평화가 없는 곳에 평화를 만드는 적극적인 창조노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 Ibid.

창조세계의 무질서와 인간세계의 혼란은 평화 부재의 표현이다. 또한 사회적이며 경
제적인 불평등, 정치적인 억압과 다툼은 인류사회를 평화에 두려는 하나님의 뜻에 정
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억압에 의해 평화가 파괴되었을 때, 하나님은 백성의 지도자
들을 통해 노예 상태의 속박을 풀고 다시금 평화를 세우기 위해 싸우셨다. ) Susan
Thistlethwaite, (편), 정의, 평화, 교회 , 박종화,서진한 역 (한국신학연구소, 1989), pp.38-39.

따라서 본 논고는 정의와 평화 간에는 어떠한 모순도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을 전제한
다. 평화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고 또한 정의 없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양자는
하나의 똑같은 기본현실을 두 방향에서 묘사하는 것이다. 한 쪽이 완전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쪽도 완전하지 못하다. 정의와 평화가 없는 정의는 단지 복수일 뿐이며,
정의 없는 평화란 단지 억압일 뿐이다. ) WARC, pp,273-274.
그래서 평화는 정의와 뗄 수 없이 결합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세상의 화목을 위한 것이었다. 그의 구원하시고 구속하시는 사역
을 통해, 그리스도는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평화를 얻는 길을 보여 주셨으며, 그
는 복음 안에 하나님의 정의를 계시하셨다. ) Ibid., p.263.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종(엡2:13-19)
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분단과 갈등과 억압의 역사속에서 평화와 화해와 해방의 하나
님나라를 선포하셨다(눅4:18; 요14:27). ) Ibid., p.317.

그러므로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평화의 종교이며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어야 하는
사명을 띤 종교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평화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잘못된 평화이해는 사명의 본질과 수행을 변질시킬 우려가 있다.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 본 논고는 평화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평화에 대한 올
바른 이해를 갖는 것은 기독교의 사명을 이해하고 수행하는데 무엇보다도 요청되는 선
결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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