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연구 - 주의 기도문의 의미(마태의 주기도를 중심으로); 빎(9b-13a),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오며”, 나라를 오게하여 주시오며
작성자ysong777작성시간08.02.25조회수77 목록 댓글 0
빎(9b-13a)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오며”
이름을
το ονομα σου는 직역하면 ⌈아버지의 그 이름⌋으로써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하신 존귀한 이름을 가리킨다. 옛날 사람에게 이름은 단순히 관습적인 칭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본질적인 신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성서적인 사고방식에 의하면 이름은 신분의 호칭을 넘어서 그 이름이 대표하는 사람의 본성, 인격을 나타낸다.
구약성경에 있어서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며 한 인격의 본질이자 내적존재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한 인간이 출생시에 얻게되는 이름은 그 사람의 활동이나 운명, 상황을 드러내 주며, 결국 그 이름을 가진 본인 자신, 고유한 바로 그 인격임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본성 또는 본질을 의미한다.
거룩하게 하여 주시오며
이름과 관련하여 일어나기를 비는 사건은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이다. 여기서 ⌈거룩하게 하다⌋함은 어떤 무엇을 신성한 목적을 위해서 다른 일체로부터 구별하고 분리해 둔다는 뜻이다. 원래 거룩하게 하다(αγιαζω)라는 말은 70인역이 히브리어 qades를 번역한 말로서, “떼어놓다”, “자르다”, “분리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세속적인 것과 구별되어 초자연적인 것을 느끼게 하는 힘, 신비, 존엄성을 갖추고 있어서 두려움과 매혹을 느끼게 된다는 뜻을 지니는 개념이다. 이같은 의미에서 ‘영광되게 한다’든지 ‘욕되게 하지 않는다’(존경을 받으시며)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데 이 단어가 수동태로 되어 있어(αγιασθητω) 누가 거룩하게 하느냐에 애매성이 있다. 그러면,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 분은 오로지 하나님이시다. 왜 그런가?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같이 제 1, 제 2, 제 3 빎말의 내용(앞으 주기도문의 구조 참조)은 단순히 신적인 일이요, 종말론적 사건으로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존재 자체와 관련하여 일으키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종말론적 사건이요, 종말론적 약속이다(겔 36:23 ; 38:23 참조). 그래서 헬라어 원문에서도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행위의 주체이신 “아버지”가 언어형태로 전혀 명시되지 아니하였다. 만일 아버지를 행위의 주체로 분명하게 표현하려면, 헬라어로는 2인칭 단수, 명령법을 사용하여 “아버지께서는 (“당신은”의 우리 말 공손용어에 의한 번역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옵소서”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서는 그러한 표현을 피하였다. 그런데 이 거룩함 동사의 헬라어 형태는 일회적인 사건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αγιασθητω) 하나님이 언젠가 만유의 주가 되시며(고전 15:28),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땅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모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고 고백되어질 (빌 2:10-11) 마지막 성취에 대한 간구라고 볼 수 있다.
a+b
그러므로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오며”인 제 1빎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본질이 가리움없이 완전하게 나타나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해달라는 뜻이 된다.
나라를 오게하여 주시오며
나라를
⌈나라⌋ η βασιλεια σου는 직역하면 ⌈아버지의 그 나라⌋인데, βασιλεια 는 원래 히브리어 malkut에서 유래하는 말로서 왕국(kingdom), 왕권(kingship), 통치(reign), 주권(sovereignty)을 뜻한다. 따라서 여기서 나라는 곧 ‘아버지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뜻하는 말로서 모든 생명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만든 모든 피조세계)을 부자유케 하고 억압하며 파괴하는 사탄의 세력을 쳐부수는 생명과 자유와 해방의 자리로 인도하는 궁극적이고 종말론적인 하나님이 다스리는 평화의 세계를 의미하며, 예수의 복음선포의 주된 내용이었다.
오게하여 주시오며
ελθετω는 원형이 ‘온다’, ‘돌아온다’, ‘나타난다’라는 뜻을 가진 Ερχομαι의 제 2부정과거 명령 (단순과거 명령, aorist명령)으로 단회적이고 일회적인 행동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동사는 도치되어 있다(제 1, 제 2빎말 역시 도치되어 있다). 이러한 용법은 결과적 의미 동사로 쓰여져서 완전하게 임하소서란 뜻이 있고, 또 부정과거이므로 그 나라의 완성, 즉 영광의 나라만이 아니라 최후에 영광의 통치가 은혜로 다스릴 그 나라만이 아니라 앞서 있을 모든 것까지 포함한다. 그런데 이 빎말은 제 1빎말의 원인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하기 때문이다.
a+b
그러므로 이 간구의 깊은 뜻에는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게해 달라는 뜻이 있으며 이것은 또 현재적인 것과 종말적인 것 두 가지를 내포한다. 전자는 불행, 모순이 찬 땅위에 그 불행의 요소가 제거되고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되기를 원한다는 뜻이요, 후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영원한 천국을 가리킨다. 이 둘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들은 전자를 노력하고 후자를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오며”
이름을
το ονομα σου는 직역하면 ⌈아버지의 그 이름⌋으로써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하신 존귀한 이름을 가리킨다. 옛날 사람에게 이름은 단순히 관습적인 칭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본질적인 신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성서적인 사고방식에 의하면 이름은 신분의 호칭을 넘어서 그 이름이 대표하는 사람의 본성, 인격을 나타낸다.
구약성경에 있어서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며 한 인격의 본질이자 내적존재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한 인간이 출생시에 얻게되는 이름은 그 사람의 활동이나 운명, 상황을 드러내 주며, 결국 그 이름을 가진 본인 자신, 고유한 바로 그 인격임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본성 또는 본질을 의미한다.
거룩하게 하여 주시오며
이름과 관련하여 일어나기를 비는 사건은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이다. 여기서 ⌈거룩하게 하다⌋함은 어떤 무엇을 신성한 목적을 위해서 다른 일체로부터 구별하고 분리해 둔다는 뜻이다. 원래 거룩하게 하다(αγιαζω)라는 말은 70인역이 히브리어 qades를 번역한 말로서, “떼어놓다”, “자르다”, “분리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세속적인 것과 구별되어 초자연적인 것을 느끼게 하는 힘, 신비, 존엄성을 갖추고 있어서 두려움과 매혹을 느끼게 된다는 뜻을 지니는 개념이다. 이같은 의미에서 ‘영광되게 한다’든지 ‘욕되게 하지 않는다’(존경을 받으시며)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데 이 단어가 수동태로 되어 있어(αγιασθητω) 누가 거룩하게 하느냐에 애매성이 있다. 그러면,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 분은 오로지 하나님이시다. 왜 그런가?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같이 제 1, 제 2, 제 3 빎말의 내용(앞으 주기도문의 구조 참조)은 단순히 신적인 일이요, 종말론적 사건으로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존재 자체와 관련하여 일으키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종말론적 사건이요, 종말론적 약속이다(겔 36:23 ; 38:23 참조). 그래서 헬라어 원문에서도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행위의 주체이신 “아버지”가 언어형태로 전혀 명시되지 아니하였다. 만일 아버지를 행위의 주체로 분명하게 표현하려면, 헬라어로는 2인칭 단수, 명령법을 사용하여 “아버지께서는 (“당신은”의 우리 말 공손용어에 의한 번역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옵소서”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서는 그러한 표현을 피하였다. 그런데 이 거룩함 동사의 헬라어 형태는 일회적인 사건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αγιασθητω) 하나님이 언젠가 만유의 주가 되시며(고전 15:28),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땅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모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고 고백되어질 (빌 2:10-11) 마지막 성취에 대한 간구라고 볼 수 있다.
a+b
그러므로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오며”인 제 1빎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본질이 가리움없이 완전하게 나타나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해달라는 뜻이 된다.
나라를 오게하여 주시오며
나라를
⌈나라⌋ η βασιλεια σου는 직역하면 ⌈아버지의 그 나라⌋인데, βασιλεια 는 원래 히브리어 malkut에서 유래하는 말로서 왕국(kingdom), 왕권(kingship), 통치(reign), 주권(sovereignty)을 뜻한다. 따라서 여기서 나라는 곧 ‘아버지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뜻하는 말로서 모든 생명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만든 모든 피조세계)을 부자유케 하고 억압하며 파괴하는 사탄의 세력을 쳐부수는 생명과 자유와 해방의 자리로 인도하는 궁극적이고 종말론적인 하나님이 다스리는 평화의 세계를 의미하며, 예수의 복음선포의 주된 내용이었다.
오게하여 주시오며
ελθετω는 원형이 ‘온다’, ‘돌아온다’, ‘나타난다’라는 뜻을 가진 Ερχομαι의 제 2부정과거 명령 (단순과거 명령, aorist명령)으로 단회적이고 일회적인 행동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동사는 도치되어 있다(제 1, 제 2빎말 역시 도치되어 있다). 이러한 용법은 결과적 의미 동사로 쓰여져서 완전하게 임하소서란 뜻이 있고, 또 부정과거이므로 그 나라의 완성, 즉 영광의 나라만이 아니라 최후에 영광의 통치가 은혜로 다스릴 그 나라만이 아니라 앞서 있을 모든 것까지 포함한다. 그런데 이 빎말은 제 1빎말의 원인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하기 때문이다.
a+b
그러므로 이 간구의 깊은 뜻에는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게해 달라는 뜻이 있으며 이것은 또 현재적인 것과 종말적인 것 두 가지를 내포한다. 전자는 불행, 모순이 찬 땅위에 그 불행의 요소가 제거되고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되기를 원한다는 뜻이요, 후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영원한 천국을 가리킨다. 이 둘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들은 전자를 노력하고 후자를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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