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코이노니아 倫理의 形成背景
A.코이노니아 개념의 형성배경
기독교 윤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그리고 그의 교회의 한 성원으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과 그 대답에 대한 학문적인 성찰로서 정의할 때, 기독교 윤리의 출발점은 결코 모호하거나 중립적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 윤리적 사고의 출발점이 인류의 공통된 도덕적 지각이나 세련된 인간들의 윤리적인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교회의 사실(事實)과 본질(本質)에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기독교 윤리는 도덕적 선이나 도덕적 옮음, 아니면 도적적 유용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그리고 그의 교회의 성원으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즉 기독교 윤리는 도덕성에로 향한 것이 아니라, 계시에로 향한 것이다.
기독교 윤리의 출발점이 도덕성이 아닌 계시에로 향한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기독교 윤리를 정의함에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은 ‘계시에로 향한 것’에 대한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그리고 코이노니아 개념을 통해 기독교 윤리를 성찰하고자 할 때에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은 계시가 가지는 코이노니아적 요소와 코이노니아의 계시성을 동시에 발견하는 것이다. 계시가 가지는 코이노니아적 요소에 대한 연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관계적’ 입장에서 하도록 요구하며, 코이노니아의 계시성에 대한 연구는 교회에 대한 관계적 입장에서의 성찰을 하도록 요구한다. 아울러 기독교 윤리의 정황으로서의 사회와 기독교 윤리의 실행자로서의 인간의 윤리적 책임이 코이노니아 윤리를 형성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이 네 경계, 즉 예수 그리스도, 교회, 사회, 그리고 인간의 책임이 하나로 통합되는 ‘공동체'가 기독교 윤리의 현장이며 정황인 것이다. 때문에 코이노니아는 항상 신앙 공통체 안에 있으며, 거기서는 계시에 대한 예언자-사도의 증언(證言)과 성령 안에서의 교제의 응답(應答)이 일치한다. 기독교 윤리의 내적 일관성은 “궁극적 실재”로서의 하나님의 본성과 그에 대한 인간의 합당한 응답을 함께 받아들이는 그 어떤 신앙에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표현될 때, 기독교 윤리학의 통일성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윤리학은 “기독교 신앙생활이란 곧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에 대한 복종적인 사랑의 응답으로 꽉 채워져 있다”고 하는 한가지 사실을 여러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롱(Edward LeRoy Long)은 신학적 언어의 사용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기독교 전통 속에 서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의 이 공동체는 교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공동체에는 하나의 공동체적 경험이 있는데 이 공동체적 경험은 그것이 충성의 대상이 되며, 동일시의 수단이 되는 사람들에 의해서 까지도 분석과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리챠드 니버(Richard Niebuhr)는 공동체적인 것과 비판적인 것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하여 파악하고 있다.
역사 안에 있다는 것은 어느 특별한 사회 안에 있다는 것다. 이와 같은 사회 안에 있어서 개인의 유한한 입장에서 보편적인 것을 보는 견해는 같은 방향과 입장에서 보는 동료들의 경험으로 비교, 시험되어야 하며, 또한 같은 공동체에서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탈피해 버린 그런 원칙 및 개념들과의 일관성의 시험을 받아야 한다. 기독교 역사 안에서의 교회의 사상과 행동을 이해하며 비판하는 제한된 일을 수행하는 신학은 또한 그것의 비판적인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시험을 위해서도 교회에 의존하는 것이다. 사회적 역사 안에 있으므로 신학은 개인적인 또는 사적인 학문이 될 수 없으며, 또는 정치 역사나 문화 역사의 어떤 비교회적 분야에서 살 수도 없다. 그것의 집은 교회이며, 그 언어는 교회의 언어이다. 그리고 교회와 더불어 그것은 보편적인 것으로 지향하고 있으며, 교회는 그의 존재를 이 보편적인 것에서 끌어낸 것을 알며, 또한 모든 교회의 믿음과 행위에 있어서 그 보편성을 지적한다.
니이버는 이 글에서 공동체의 코이노니아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공동체의 코이노니아적 특성을 유기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는 니이버는 비치와 함께 공동 저술한 ⌈기독교 윤리⌋ Christian Ethics: Sources of the Living Tradition에서 이러한 공동체의 코이노니아적 특성을 삼중적 관계로 ꄙ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 윤리 이론의 여러 변화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삼중적 관계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 하나님을 믿고 행동하는 나 사이의 ‘수직적’인 관계와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 그리고 하나님이 개입해 계시는 ‘중심적 위치’가 계시는 관계이다.
이제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의 유기적(有機的) 관계를 삼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글에서 코이노니아 윤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A.코이노니아 개념의 형성배경
기독교 윤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그리고 그의 교회의 한 성원으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과 그 대답에 대한 학문적인 성찰로서 정의할 때, 기독교 윤리의 출발점은 결코 모호하거나 중립적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 윤리적 사고의 출발점이 인류의 공통된 도덕적 지각이나 세련된 인간들의 윤리적인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교회의 사실(事實)과 본질(本質)에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기독교 윤리는 도덕적 선이나 도덕적 옮음, 아니면 도적적 유용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그리고 그의 교회의 성원으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즉 기독교 윤리는 도덕성에로 향한 것이 아니라, 계시에로 향한 것이다.
기독교 윤리의 출발점이 도덕성이 아닌 계시에로 향한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기독교 윤리를 정의함에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은 ‘계시에로 향한 것’에 대한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그리고 코이노니아 개념을 통해 기독교 윤리를 성찰하고자 할 때에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은 계시가 가지는 코이노니아적 요소와 코이노니아의 계시성을 동시에 발견하는 것이다. 계시가 가지는 코이노니아적 요소에 대한 연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관계적’ 입장에서 하도록 요구하며, 코이노니아의 계시성에 대한 연구는 교회에 대한 관계적 입장에서의 성찰을 하도록 요구한다. 아울러 기독교 윤리의 정황으로서의 사회와 기독교 윤리의 실행자로서의 인간의 윤리적 책임이 코이노니아 윤리를 형성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이 네 경계, 즉 예수 그리스도, 교회, 사회, 그리고 인간의 책임이 하나로 통합되는 ‘공동체'가 기독교 윤리의 현장이며 정황인 것이다. 때문에 코이노니아는 항상 신앙 공통체 안에 있으며, 거기서는 계시에 대한 예언자-사도의 증언(證言)과 성령 안에서의 교제의 응답(應答)이 일치한다. 기독교 윤리의 내적 일관성은 “궁극적 실재”로서의 하나님의 본성과 그에 대한 인간의 합당한 응답을 함께 받아들이는 그 어떤 신앙에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표현될 때, 기독교 윤리학의 통일성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윤리학은 “기독교 신앙생활이란 곧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에 대한 복종적인 사랑의 응답으로 꽉 채워져 있다”고 하는 한가지 사실을 여러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롱(Edward LeRoy Long)은 신학적 언어의 사용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기독교 전통 속에 서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의 이 공동체는 교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공동체에는 하나의 공동체적 경험이 있는데 이 공동체적 경험은 그것이 충성의 대상이 되며, 동일시의 수단이 되는 사람들에 의해서 까지도 분석과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리챠드 니버(Richard Niebuhr)는 공동체적인 것과 비판적인 것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하여 파악하고 있다.
역사 안에 있다는 것은 어느 특별한 사회 안에 있다는 것다. 이와 같은 사회 안에 있어서 개인의 유한한 입장에서 보편적인 것을 보는 견해는 같은 방향과 입장에서 보는 동료들의 경험으로 비교, 시험되어야 하며, 또한 같은 공동체에서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탈피해 버린 그런 원칙 및 개념들과의 일관성의 시험을 받아야 한다. 기독교 역사 안에서의 교회의 사상과 행동을 이해하며 비판하는 제한된 일을 수행하는 신학은 또한 그것의 비판적인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시험을 위해서도 교회에 의존하는 것이다. 사회적 역사 안에 있으므로 신학은 개인적인 또는 사적인 학문이 될 수 없으며, 또는 정치 역사나 문화 역사의 어떤 비교회적 분야에서 살 수도 없다. 그것의 집은 교회이며, 그 언어는 교회의 언어이다. 그리고 교회와 더불어 그것은 보편적인 것으로 지향하고 있으며, 교회는 그의 존재를 이 보편적인 것에서 끌어낸 것을 알며, 또한 모든 교회의 믿음과 행위에 있어서 그 보편성을 지적한다.
니이버는 이 글에서 공동체의 코이노니아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공동체의 코이노니아적 특성을 유기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는 니이버는 비치와 함께 공동 저술한 ⌈기독교 윤리⌋ Christian Ethics: Sources of the Living Tradition에서 이러한 공동체의 코이노니아적 특성을 삼중적 관계로 ꄙ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 윤리 이론의 여러 변화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삼중적 관계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 하나님을 믿고 행동하는 나 사이의 ‘수직적’인 관계와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 그리고 하나님이 개입해 계시는 ‘중심적 위치’가 계시는 관계이다.
이제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의 유기적(有機的) 관계를 삼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글에서 코이노니아 윤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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