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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이야기

現代神學의 危機와 그 近況 - IV. 미국신학의 근황 6. 結論

작성자ysong777|작성시간08.04.04|조회수45 목록 댓글 0
6. 結論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선교의 신학⌋이었던 ⌈미국신학⌋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급진적으로 좌경해서 오늘날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봤다. 우리는 현대 미국신학의 변천을 4기로 나누어서 살펴봤다. 제일 먼저는 그레샴 메이천 박사(Dr.J.Gresham Machen)가 이끌던 ⌈프린스톤 신학⌋이 1920년대에 몰락하고 자유주의가 팽배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는 라우센부쉬등의 ⌈사회복음신학⌋이 기승을 부려⌈미국 정통신학⌋이 수난당하는 울분과 후퇴의 시대였다.
다음으로 현대 미국신학의 제2기를 살펴봤다. 이 시기는 미국에서 정통신학을 고립시켜 놓고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와 불트만의 실존주의 및 폴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이 판을 치던 『거물신학자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시기는 “자유주의가 거보를 내딛는 시대”이기도 했다.
셋째로, 우리는 1960년대 초에 돌연 그 막을 올렸다가 10년도 못가서 막을 내려버린 ⌈사신신학자 시대⌋를 살펴봤다. 이 시기는 로빈슨, 올타이저, 반 뷰렌등이 나타나서 “누가 더 사신적이냐?”를 겨루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현대 미국신학이 “사신병”을 앓는 처참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 “사신병”을 앓는 시기는 오래 갈 수가 없었다. “사신병”이라는 것은 ⌈신학의 사망⌋을 필연적으로 가져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는 1960년대 말로부터 사신신학 쇠퇴로 인한 신학적 공백을 메우기나 하려는 듯이 ⌈정치신학⌋, ⌈디오니소스 신학⌋, ⌈흑인 신학⌋등 새로운 신학적 문제아들이 등장하는 이른바⌈신학적 문제아시대⌋(An Age of having forgotten of God in the midst of American cultural creativity)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기에 등장하는 세 신학 즉 ⌈정치신학⌋, ⌈디오니소스 신학⌋, ⌈흑인신학⌋을 각기 ⌈칼 마르크스와 손잡자 신학⌋(“Let's hold hands with Karl Marx” Theology)과 ⌈히피와 도시 게릴라의 신학⌋(Theology of hippies and city guerillas)과 ⌈흑인이 제일이다⌋(The "Black people are the chosen people" Theology)로 알기 쉽게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결론을 말하면
금세기 초에 미국에서 “프린스톤 신학의 몰락”을 계기로 팽창하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은 ⌈거물신학자 시대⌋에서 거보를 내딛어 그 “좌경성”을 확고히 했고, ⌈사신신학자 시대⌋에 와서는 그 급진성이 폭로되었고, ⌈새로운 신학적 문제아 시대⌋에 와서는 그 ⌈동화⌋ 또는 ⌈수필문화⌋과 같은 허구성이 증명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대 미국신학사상의 흐름과 변천을 살펴보면서 현대 미국신학이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는 절망감을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한바 있거니와 ⌈현대 미국신학⌋은 헤어날 수 없는 미로에 빠져 들어가는 듯하며 “캄캄한 심연을 내려다 보는 벼랑을 서 있는듯”하다.
이와같은 절망감과 이와 같은 위기의식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 미국신학의 전망”은 어둡고 비판적인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지금까지 위기에서 위기로 치달려 왔고 앞으로의 전망이 어둡기만한 ⌈현대 미국신학⌋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미국신학⌋은 한국교회를 선교해서 설립한⌈한국선교의 신학⌋이었건만 지금은 오히려 한국선교 당시에 가졌던 “순수한 보수주의 정통신학”을 상실하고 오늘의 신학적 위기를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의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다“(고전 9:27)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 한국교회도 교훈으로 받아야할 것이다.
둘째로, 미국 신학이 금세기 초에 윌필드와 메이천을 마다하고 ⌈신정통주의⌋와 타협했던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급진적 좌경⌋을 낳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떠나서 인간의 사고와 이론이 만들어 내는 모든 ⌈신신학⌋과 ⌈철학적 신학⌋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고 추호의 양보나 타협도 허용해서는 안될 줄로 확신한다(마5:37, 약2:10).
셋째로, ⌈현대 미국 신학⌋이 미국교회의 평신도들의 신앙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상아탑 속에서의 ⌈이론신학⌋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사신의 비극”과 “탈기독교와 친마르크스주의의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 한국교회는 신앙과 신학 사이에 어떤 갭(gap)을 두어서는 안되겠다. 우리 한국교회는 “신앙하는 신학”과 “신학하는 신앙”을 아울러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속에서 신학자와 평신도들이 혼연 일체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요3:18, 엡4:13).
그렇게 할때 우리 한국교회는 “미국 신학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의 제방으로서 든든히 설 수가 있을 것이고, 한걸음 나아가서는 ⌈한국선교의 교회⌋였던 미국교회에 대해서 ⌈복음주의 정통신학⌋을 역수출하는 새로운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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