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학적 축의 변동
칼 바르트가 실각하고 루돌프 불트만이 무너져버린 뒤의 유럽신학계는 후기 불트만파와 구원사학파와 중간 보수파로 불리우는 신진 신학자들의 난립으로 신학적인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하는 ⌈혼란기⌋를 맞이하였으나 1970년이 지나자 서서히 혼란기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하면서 유럽신학을 이끌어나갈 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환언하여, 그동안 거성신학자들의 사망에 뒤따르는 많은 소장급의 신학자들의 신학적인 불협화음으로 빚어진 유럽신학의 어지러운 파도가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로 돌입하면서 몇몇 사상적인 독창성과 추진력을 가진 신학자들로 말미암아 질서와 안녕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즉 이 몇몇 신학자란 앞에서 지적하고 거론한 바있는 판넨베르그, 몰트만, 에벨링, 옷트와 같은 신학자들이다. 그리고 한가지 부기해야 할 것은 이들 신학자외에 1980년대에 그 신학적 리더쉽과 영향력을 크게 기대해볼 만한 신학자로서 헬무트 골비쳐(Helmut Gollwiter;1908-)와 에벨하르트 용겔(Eberhard Jungel)을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골비쳐는 성경과 기독교를 한 두가지 진리로 축소시키려고 하는 ⌈축소주의 신학자들⌋(실존주의 해석학파와 구원학파 등)을 비판하면서 성경적인 하나님 사사잉 보존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 용겔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로서의 삶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더욱 동력적이며 활동주의적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골비쳐와 용겔은 둘 다 칼 바르트의 감화를 받았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만 용겔은 칼 바르트와는 달리 하나님은 인간들이 가지는 진정한 사랑과 신뢰의 관계들 속에 남 몰래 존재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일종의 ⌈자연신학⌋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의 신학적으로 특이한 점이다. 그리고 특히 용겔은 현재 튜빙겐 대학에서 교수하면서 많은 신학도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데 앞으로 판넨베르그와 몰트만과 같은 선배 신학자들을 물리치고 유럽신학을 리드할 수 있는 유망주로 평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유럽신학은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가? 20세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바르트와 부룬너, 불트만과 같은 거성 신학자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부터 유럽신학계에서는 사상적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켜서 저자는 맥퀘리 교수(Dr.John Macquarrie)와 함께 ⌈사상적인 축의 변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있어서 유럽의 사상계를 지배한 것은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이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신의 사망을 전제로 하는 인간의 정신적인 고뇌와 자아와 세계를 초극하고자하는, 실존성의 추구를 강조하는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이 1970년대로부터 서서히 헤겔-마르크스-불로흐 노선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르스트 불로흐(Ernst Bloch, 1885-1977)의 대작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1954-1977)이 유럽사상계에 알려지면서부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특히 1970년에는 헤겔의 탄생 이백 주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학계의 행사와 더불어 헤겔주의의 回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전시대의 유럽사상계를 지배하던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의 신학자들이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의 유럽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내면적인 사색의 세계로 몰입하여 ⌈주관의 우물⌋을 너무 깊이 파고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말부터 유럽의 인민들은 서구 민주주의에 대하여 비록 그것이 그 둘에게 미증유의 『경제적 번영⌋와 ⌈사회발전⌋을 가져 왔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일변도적인 변증을 수정하고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호기심에찬 접근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유럽사람들의 사고의 보편적인 변화에 자극되어 유럽의 학계는 ⌈주관의 우물⌋을 너무 깊이 파면서 20세기 후반기의 급변하는 유럽의 정치적이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해 버리고 ⌈구 사상 노선⌋의 학자들과 사상가들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유럽학계의 ⌈사상적 진자⌋는 실존주의에서 신마르크스주의(neo-Marxism)로 하이덱거의 사색으로 부터 불로흐의 행동성으로, 주관적 사색의 우물을 파는 일로부터 정치참여를 통한 사상의 가두 시위로 크게 흔들리며 이동해가고 있다.
따라서 유럽의 신학계 역시 이러한 유럽학계와 문화계의 동향에 민감한 영향을 받아서 소위 ⌈사상적 축의 변동⌋을 자체 내에 초래케 되었으니 ⌈바르트-불트만-본훼퍼 축⌋이 ⌈판넨베르그-몰트만-에벨랑-옷트 축⌋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특히, 유럽신학의 축의 변동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소위 ⌈신마르크스주의⌋가 차지하는 사상적 비중이다. ⌈신마르크스주의⌋는 칼 마르크스로부터의 영향은 시인하나 정치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간격을 유지하면서 미래학적인 인생관과 기술사회에 대한 비판(자본주의 사회든지 공산주의 사회를 불문하고)과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능력, 그리고 혁명적 사회개조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럽신학계에서 일기 시작한 기독교와 공산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대화와 일치의 운동”은 현금 1980년에 와서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데 이것은 유럽신학의 축의 변동에 기인한 것이며, 1980년대를 걸머지고 나아가는 유럽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에게 신마르크스주의가 사상적으로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유럽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이 기독교 신학에 대하여 과다한 ⌈미래학적 의식구조⌋와 ⌈종말론적 사회의 실현⌋을 위한 ⌈혁명적 행동성⌋을 부여함으로써 결과하는 ⌈기독교 신학⌋의 “마르크스주의화”를 어떻게 미연에 방지하면서 그들이 말하는대로 ⌈무신론이 그 인생관이 되어버린 오늘의 서구사회⌋속에서 그나마 기독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큰 문제거리가 아닐 수 없다.
칼 바르트가 실각하고 루돌프 불트만이 무너져버린 뒤의 유럽신학계는 후기 불트만파와 구원사학파와 중간 보수파로 불리우는 신진 신학자들의 난립으로 신학적인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하는 ⌈혼란기⌋를 맞이하였으나 1970년이 지나자 서서히 혼란기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하면서 유럽신학을 이끌어나갈 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환언하여, 그동안 거성신학자들의 사망에 뒤따르는 많은 소장급의 신학자들의 신학적인 불협화음으로 빚어진 유럽신학의 어지러운 파도가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로 돌입하면서 몇몇 사상적인 독창성과 추진력을 가진 신학자들로 말미암아 질서와 안녕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즉 이 몇몇 신학자란 앞에서 지적하고 거론한 바있는 판넨베르그, 몰트만, 에벨링, 옷트와 같은 신학자들이다. 그리고 한가지 부기해야 할 것은 이들 신학자외에 1980년대에 그 신학적 리더쉽과 영향력을 크게 기대해볼 만한 신학자로서 헬무트 골비쳐(Helmut Gollwiter;1908-)와 에벨하르트 용겔(Eberhard Jungel)을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골비쳐는 성경과 기독교를 한 두가지 진리로 축소시키려고 하는 ⌈축소주의 신학자들⌋(실존주의 해석학파와 구원학파 등)을 비판하면서 성경적인 하나님 사사잉 보존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 용겔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로서의 삶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더욱 동력적이며 활동주의적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골비쳐와 용겔은 둘 다 칼 바르트의 감화를 받았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만 용겔은 칼 바르트와는 달리 하나님은 인간들이 가지는 진정한 사랑과 신뢰의 관계들 속에 남 몰래 존재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일종의 ⌈자연신학⌋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의 신학적으로 특이한 점이다. 그리고 특히 용겔은 현재 튜빙겐 대학에서 교수하면서 많은 신학도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데 앞으로 판넨베르그와 몰트만과 같은 선배 신학자들을 물리치고 유럽신학을 리드할 수 있는 유망주로 평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유럽신학은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가? 20세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바르트와 부룬너, 불트만과 같은 거성 신학자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부터 유럽신학계에서는 사상적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켜서 저자는 맥퀘리 교수(Dr.John Macquarrie)와 함께 ⌈사상적인 축의 변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있어서 유럽의 사상계를 지배한 것은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이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신의 사망을 전제로 하는 인간의 정신적인 고뇌와 자아와 세계를 초극하고자하는, 실존성의 추구를 강조하는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이 1970년대로부터 서서히 헤겔-마르크스-불로흐 노선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르스트 불로흐(Ernst Bloch, 1885-1977)의 대작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1954-1977)이 유럽사상계에 알려지면서부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특히 1970년에는 헤겔의 탄생 이백 주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학계의 행사와 더불어 헤겔주의의 回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전시대의 유럽사상계를 지배하던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의 신학자들이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의 유럽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내면적인 사색의 세계로 몰입하여 ⌈주관의 우물⌋을 너무 깊이 파고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말부터 유럽의 인민들은 서구 민주주의에 대하여 비록 그것이 그 둘에게 미증유의 『경제적 번영⌋와 ⌈사회발전⌋을 가져 왔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일변도적인 변증을 수정하고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호기심에찬 접근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유럽사람들의 사고의 보편적인 변화에 자극되어 유럽의 학계는 ⌈주관의 우물⌋을 너무 깊이 파면서 20세기 후반기의 급변하는 유럽의 정치적이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해 버리고 ⌈구 사상 노선⌋의 학자들과 사상가들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유럽학계의 ⌈사상적 진자⌋는 실존주의에서 신마르크스주의(neo-Marxism)로 하이덱거의 사색으로 부터 불로흐의 행동성으로, 주관적 사색의 우물을 파는 일로부터 정치참여를 통한 사상의 가두 시위로 크게 흔들리며 이동해가고 있다.
따라서 유럽의 신학계 역시 이러한 유럽학계와 문화계의 동향에 민감한 영향을 받아서 소위 ⌈사상적 축의 변동⌋을 자체 내에 초래케 되었으니 ⌈바르트-불트만-본훼퍼 축⌋이 ⌈판넨베르그-몰트만-에벨랑-옷트 축⌋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특히, 유럽신학의 축의 변동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소위 ⌈신마르크스주의⌋가 차지하는 사상적 비중이다. ⌈신마르크스주의⌋는 칼 마르크스로부터의 영향은 시인하나 정치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간격을 유지하면서 미래학적인 인생관과 기술사회에 대한 비판(자본주의 사회든지 공산주의 사회를 불문하고)과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능력, 그리고 혁명적 사회개조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럽신학계에서 일기 시작한 기독교와 공산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대화와 일치의 운동”은 현금 1980년에 와서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데 이것은 유럽신학의 축의 변동에 기인한 것이며, 1980년대를 걸머지고 나아가는 유럽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에게 신마르크스주의가 사상적으로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유럽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이 기독교 신학에 대하여 과다한 ⌈미래학적 의식구조⌋와 ⌈종말론적 사회의 실현⌋을 위한 ⌈혁명적 행동성⌋을 부여함으로써 결과하는 ⌈기독교 신학⌋의 “마르크스주의화”를 어떻게 미연에 방지하면서 그들이 말하는대로 ⌈무신론이 그 인생관이 되어버린 오늘의 서구사회⌋속에서 그나마 기독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큰 문제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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