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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이야기

이 단 - Ⅲ. 통 일 교 A . 기원

작성자ysong777|작성시간08.04.05|조회수35 목록 댓글 0
Ⅲ. 통 일 교

A . 기원

통일교회의 공식 명칭은 ‘세계기독교 통일 신령협회’이며, 그 회의 교주는 문선명이다. 그는 1920년 음력 정월 초 엿새날 평북 정주군 덕인면 상사리 2221번지에서 부친 문경유와 모친 김경계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기독교와 관계는 첫째 형인 문용수가 문교주 나이 열여섯때 정신병으로 사망하고 둘째 누이도 미쳐버려 그 일가가 기독교에 귀인하게 되었다. 문교주의 원명은 ‘용명’이었으나 1955년 혼음파동이후 1964년 8월 11일 서울민사지방법원 판결을 통해서 ‘선명’으로 개명했다. 문교주는 1945년 4월 28일 최선길 여인과 결혼하여 첫아들 ‘성진’을 낳고 1957년 1월 8일 최여인과 이혼하고, 1960년 3월 1일 현재의 부인 한학자 여인과 ‘어린양 혼인자치’를 베풀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문선명은 소년시절 부터 환상을 많이 보았고 일찍부터 백남주의 후계자의 주변을 맴돌면서 신비주의의 분위기에서 살았고, 자칭 메시아로 자처하면서 1954년 5월 1일 범교단적으로 사회적으로 숱안 무리와 이단시비를 받아 오면서 창설된 통일교가 약 37년 후인 1991년 8월 29일 세계일보 강단에서 문교주의 통일교 해체선언으로 그들 내부는 물론이요 기독교내에서도 충격을 가져온 바 있다.
문교주는 17세때인 1936년 4월 17일 부활절 아침에 예수를 직접 만나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중보자로 세웠다고 주장하며, 그 계시를 받고 재림하는 예수로 오게 되었다고 통일교 교리서인 ‘원리강론’에서 말하고 있다. 문교주는 10대 학생시절 신비주의 부흥사 이용도 목사파의 교회와 오순절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비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그 후에 당시 교회가 이단으로 간주했던 김백문의 이스라엘 수도원에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해방후 1946년 4월에 평양에 광해교회를 세우고 김병문으로 부터 배운 ‘원리강론’을 전파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통일교의 시작이라고 하겠다. 문씨의 모든 주의(主義), 사상(思想) 및 종교(宗敎)까지도 하나로 천하 통일시킨다는 뜻으로 통일교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것이 1970년대 미국과 일본에서 갖가지 물의를 일으키며, 마침내는 미국에서 1984년 말에 탈세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구속되기도 하는 등등 초창기 부터 혼음시비, 청소년 가출, 이화여대 교수사건, 사상논쟁, 정치, 경제, 사회관여 등 수차례 국내에서도 구속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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