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 3세기의 예배
한 세기 전 저스틴이 마련한 예전과 비교할 때 말씀 예배와 성례 그리고 그리스도를 중심하는 예배의 근본 구조나 성격에는 별 변화가 없으나 좀 더 의식이 부가된 것을 알 수 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와 회중들간의 인사가 그런 것이다. 즉 목사가 “주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계실지어다.” 혹은 “여러분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라고 하거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여러분과 함께 있을 지어다”라고 기원하면, 회중은 “당신의 영에게도 함께 있을 지어다”라고 화답한다.
3세기에는 보다 예전의 형식이 많이 첨가되기는 했어도 예배하며 기도 하는 데는 아직 상당히 자유롭게 하는 편이었다.
3. 제 4세기의 예배
313년 황제 콘스탄틴의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고서부터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였다.
이 시기부터 예배와 목회에서 맡는 임무를 따라 주교, 장로, 집사, 서리집사, 성경봉독자, 성가대원 등으로 교직자들의 교계제도(敎階制度)가 서서히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예배에서 상징하는 것이나 예전을 좇아 하는 행위가 점차로 신약보다는 구약적인 전통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로마의 국가적인 제의(祭義)의 요소와도 접합이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초기의 예배 정신이 왜곡되게 되었다.
4세기에 이르러 예배에는 교회가 살고 있는 세계의 문화가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심미적(審美的)인 것을 추구하는 헬라 문화(Hellenism)권에 있는 동방교회에서 그러한 점은 더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예배에서 요한계시록에 묘사되고 있는 천상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예배 광경을 재현한다는 것이었다. 신비성을 위하여 예배실을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하듯이 철책 휘장으로 두 부분의 장소로 구분하였다.
동방교회가 서방교회보다 예배를 더 현란하게 드리게 된 이유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으로는, 서방교회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은혜의 교리가 발전한데 반하여, 동방에서는 보다 율법주의적인 공로주의에 머물었던 것을 그 이유로 들기도 한다.
한 세기 전 저스틴이 마련한 예전과 비교할 때 말씀 예배와 성례 그리고 그리스도를 중심하는 예배의 근본 구조나 성격에는 별 변화가 없으나 좀 더 의식이 부가된 것을 알 수 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와 회중들간의 인사가 그런 것이다. 즉 목사가 “주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계실지어다.” 혹은 “여러분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라고 하거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여러분과 함께 있을 지어다”라고 기원하면, 회중은 “당신의 영에게도 함께 있을 지어다”라고 화답한다.
3세기에는 보다 예전의 형식이 많이 첨가되기는 했어도 예배하며 기도 하는 데는 아직 상당히 자유롭게 하는 편이었다.
3. 제 4세기의 예배
313년 황제 콘스탄틴의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고서부터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였다.
이 시기부터 예배와 목회에서 맡는 임무를 따라 주교, 장로, 집사, 서리집사, 성경봉독자, 성가대원 등으로 교직자들의 교계제도(敎階制度)가 서서히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예배에서 상징하는 것이나 예전을 좇아 하는 행위가 점차로 신약보다는 구약적인 전통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로마의 국가적인 제의(祭義)의 요소와도 접합이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초기의 예배 정신이 왜곡되게 되었다.
4세기에 이르러 예배에는 교회가 살고 있는 세계의 문화가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심미적(審美的)인 것을 추구하는 헬라 문화(Hellenism)권에 있는 동방교회에서 그러한 점은 더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예배에서 요한계시록에 묘사되고 있는 천상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예배 광경을 재현한다는 것이었다. 신비성을 위하여 예배실을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하듯이 철책 휘장으로 두 부분의 장소로 구분하였다.
동방교회가 서방교회보다 예배를 더 현란하게 드리게 된 이유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으로는, 서방교회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은혜의 교리가 발전한데 반하여, 동방에서는 보다 율법주의적인 공로주의에 머물었던 것을 그 이유로 들기도 한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