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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이야기

평신도를 위한 신학입문 - 초자연성, 자연주의 양극단

작성자ysong777|작성시간08.06.07|조회수174 목록 댓글 0
초자연성, 자연주의 양극단
천주교는 그 근본이 펠라기안니즘에 많이 기초하고 있다는 겁니다. 펠
라기안주의라는 것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원죄를 부인하며 인간은 아담
과 같이 죄없이 탄생되고 선악을 택할 자유의지를 가짐으로 하나님 은혜가
인간의 구원에 도움은 되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입니다.
초자연성만이 신적인 것이고 자연적인 것은 신적이지 않다라는 구별을
갖게 하는 오류로서,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계시가 자연
속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놓아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자연의 참된 가
치를 놓치게 됩니다.
이 사상이 중세 시대에 얼마나 강했었냐 하면, 초월과 자연이 부딪히게
되면 누가 이긴다고 생각했습니까? 초월이 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서 일반 재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 재판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종교
재판은 일반 재판보다 더 엄격한 권위를 갖고 있는데 어떤 종교 재판이라
할지라도 마지막에 그의 피고가 항변하는 방법으로 결투를 신청할 수 있었
습니다. 결투를 해서 자기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었는데 왜 결투라는 방
법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냐 하면, 칼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
라 하나님께서 옳고 그른 일에 대하여 세상의 법칙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방법으로 진위를 구별하실 것이다라는 사상 때문에 최후의 자기 방어를 위
한 결투를 요구할 수 있고 허락되는 법이 생긴 것입니다. 피고가 자신이
할 수 없으면 대리사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면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영적인 해석을
하려고만 들면 그가 살면서 당하는 어떤 재난이든지 다 형벌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누가 교통사고를 당했으면 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십니
까? 첫 번째 떠오르는 생각은 죄에 대한 보응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게 바로 이겁니다. 맨 처음 부주의가 떠올라야 정상입니다. "졸았습니
까?", "과속하셨읍니까?", "아니 그럼, 상대방이 그랬군요"가 먼저 생각이
나야 됩니다. 교통사고는 왜 나는 겁니까? 이쪽이 잘못했거나 저쪽이 잘못
했거나, 이게 상식적으로 제일 먼저 생각해야하는데 신자들은 뜻밖에 무슨
생각부터 합니까? 죄입니다. 그게 초자연주의적 발상입니다. 우리나라 신
앙에 이 뿌리가 얼마나 깊으냐 하면 내가 소원하던 것이 뭐든지 안 이루어
졌을 때는 와서 뭐부터 하나보면 알 수 있읍니다. 회개부터 합니다. 우리
얘가 학교에 떨어졌어도 어떻게 합니까? 회개부터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말고 뭘 잘못 가르쳤는가, 영어를 잘못 했는가? 수학을 잘못 했는가?
학교를 너무 높여서 본 것이 아닌가 하는 것부터 생각을 해야 되는 겁니
다.
우리는 지금 두 가지 극단을 경계해야 됩니다. 자연신론(Deism)으로 가
자는 게 아니고 초자연주의의 본성이 우리에게 얼마나 만연되어 있느냐 하
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자연주의, 이것도 신앙에 있어서 신앙을 잡아 먹으려고 기다리는 큰 함
정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들어 놓고, 자체적으로 돌아가게
해 놓고 가서 장기 두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얘기하는게 자연신론
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들어 놓고 가셨다 이겁니다. 지금은 자연이 혼
자 돌아간다 이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순간도 이
역사와 이 우주의 모든 운행에 실제로 그 힘으로, 지혜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혼자 돌아가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
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한대로 법칙을 따라 움직인다고 자꾸 생각합니다.
법칙은 하나님이 나는 이렇게 일한다고 공개 하신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
이 모든 법칙들로 공개 되어 있는 것이지 그 법칙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힘은 아닙니다.
바로 자연주의란 말입니다. 내가 어떤 원인을 집어 넣는 한 결과는 당연
히 따라와야 된다는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성경을 많이 본 한, 나는
당연히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잘 보세요, 이게 어디에 뿌리가 제일
많이 뻗쳐지는지 아십니까? 젊은이들의 신앙단체에 이 자연주의가 가장
폭 넓게 뿌리를 넓히고 있습니다. C.C.C.나 네비게이토나 I.V.F.나 어디
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거기 가면 가장 큰 자랑이 뭐냐 하면, Check하는
겁니다. 하루에 성경 본 분량, 하루에 기도한 시간, 그런 것을 자꾸 Check
합니다. 그것은 결국 그렇게 한 것만큼 틀림없이 결과가 온다는 법칙하에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자꾸 배제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뜻밖에도 인간의 자유의지,
인간의 행위의 법칙이 자꾸 은혜를 밀어냅니다.(인본주의(인본주의)의 극
치!) 자연주의에서는 이 은혜의 개입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이 두 가지를 살펴보면서 어떤 재미있는 것을 발견
하게 되느냐 하면,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가 충돌되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자연스레 공존하는 것을 보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신비주의입니다. 하나님
께서 우리가 애걸복걸하면 얼마든지 좋은 것을 초자연주의적인 방법으로
주실 것을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 초월적인 것을 주실 것을 자연 법칙으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둘이 묘하게 짬뽕이 되어 있습니다. 그
러니까 은혜는 초자연에다가 요구하고, 방법론에 있어서는 분명한 자연주
의를 외치는 자리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잘 보십시오. 그런 것이 여러분
의 신앙 형태 속에 생각 속에, 얼마나 많은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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