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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이야기

교부 오리겐의 삶과 신학. - 오리겐의 신학 3

작성자ysong777|작성시간08.08.21|조회수135 목록 댓글 0
오리겐은 희랍 철학에 완전히 익숙한 자였다. 그는 지도적인 이교 철학자들
에게서 사사받았다. 어떤 이들은 그가 신플라톤주의 창시자인 암모나우스 사카
스에게서 배웠다고 생각하나 확실하지 않다. 저스틴에서 클레멘트, 오리겐으로
옮아가면서 점점 더 확실하게 철학적인 관념에 열중함과 함께 점점 더 철학에
대한 적대감이 증대된 것은 역설적인 현상이다. 철학적인 요소는 특히 오리겐
에게서 뚜렸했다. 그의 정통성은 그의 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어오고
있다. 4세기에는 반 오리겐주의자 운동이 강력했다. 6세기에는 공식적으로 그
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희랍 신학의 가장 영향력있는 교부
로 남아있다.
오리겐의 목표는 정통 기독교에 충성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저술의 대부분은 성경을 힘써 성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이것
까지도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오리겐은 풍유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는 성
경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보다 심오하고 감추인 의미를 찾아
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것은 풍유적 해석방법에 의해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
다. 풍유적 방법을 오리겐이 말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희랍인들이 신들을 공적
에 대한 재미없는 전설에서 어떤 교훈을 이끌어 내기 위한 시도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A.D 1세기에 유대인 필로가 구약 성경에 이것을 최초로 사용했다.
그의 주된목적은 구약성경을 희랍사상에 일치시키고자 한것이었다. 오리겐의
접근 방법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성경이 문자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때에 문자
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또한 희랍 사상과 조화를 모색하기 위하여 풍유적
해석 방법을 채택하였다. 그렇지만 그가 이것을 [의식적]으로 시도한 것이 아
니었다. 그는 단지 본문의 참되고 합리적인 의미를 끌어내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그가 "희랍 문화
에 눈이 멀었다"는 4세기의 비난은 진실되다. 한 이교도 적대자는 그가 "플라
톤적 관념을 이질적인 신화에 이입했다"고 비난했다. 즉, 플라톤주의를 성경의
뜻으로 해석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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