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헬레니즘 세계
1. 헬레니즘 세계의 형성
헬레니즘 시대, 혹은 헬레니즘 세계는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 이후에 시작되었다. 헬레니즘 세계란 알렉산더 제국에 의해서 형성된 국가들이 기원전 323년에서 기원전 2, 1세기에 로마가 동 지중해를 정복하기까지의 기간동안에 가졌던 제도와 문명을 말한다. 헬레니즘 세계는 비록 알렉산더의 죽음 이후에 열려졌지만, 헬레니즘 세계가 가능했던 것은 세계정복을 꿈꾸었던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의 원정으로부터였다.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필립이 그의 딸의 결혼축하연에서 암살되자, 당시 갓 스물을 넘은 알렉산더가 그의 아버지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알렉산더가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즉위할 당시, 그때까지 역사상 최고의 제국은 페르시아였다. 페르시아는 기원전 7세기말에 중흥하여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우위를 점했던 바벨론을 밀어내고,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지배하는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다리우스1세(기원전 521-485) 때 이룩된 페르시아 제국은 역사상 위대한 제국들인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 몽고 제국 등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은 통일된 국가가 아니었다. 페르시아는 훌륭한 행정조직을 가진 제국으로서, 인종적으로 다양한 민족들을 지배하는데 성공한 최초의 제국이었지만, 통일된 왕국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은 다양한 민족들을 하나의 국가로 만드는데 실패했고, 이것이 그들의 멸망을 재촉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페르시아 제국이 갖고 있던 이러한 다양성은 근동에서 세계적 문화가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았고 볼 수 있다.
알렉산더가 역사에 등장했을 때, 그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 페르시아의 군대를 어렵지 않게 섬멸했으며, 페르시아의 지배 밑에 있던 많은 그리스의 도시들과 소아시아지역의 나라들을 빼앗았다. 알렉산더는 시리아, 팔레스틴, 이집트 등에서 페르시아인을 내쫓았으며, 나일강 델타지역의 서단에 그의 이름을 딴 새로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세웠다. 이 알렉산드리아는 동 지중해의 주요항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알렉산더가 이룩하고자 했던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그후 알렉산더는 점차로 동진하여 페르시아의 핵심부를 점령하였으며,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 인도대륙의 북서부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복을 계속했다. 결국 그가 즉위한 기원전 336에서 그가 죽은 323년까지, 12년 동안에 알렉산더는 이전에 있던 페르시아 제국을 능가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정복한 세계도 페르시아 제국과 같이 하나의 국가는 될 수 없었다. 알렉산더는 그가 정복한 다양한 국가들을 통치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정책을 세웠다. 하나는 그 지방마다 고유의 전통에 따라서 통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 문화를 제국을 묶어주는 기반으로 삼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알렉산더에 의해서 이룩된 헬레니즘 세계는 정치적으로 통일된 세계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통일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헬레니즘 세계가 정치적으로 하나로 묶이지 못했다는 것은 알렉산더 죽음 이후의 분열된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문화적인 특징을 공유하는 헬레니즘 세계가 형성되었지만, 이들은 정치적으로 마케도니아, 이집트, 시리아 등의 주도적인 몇몇 세력들에 의해서 나뉘어졌다. 이 3개의 큰 헬레니즘 국가들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끝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고, 그들은 그들의 발판이 되었던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받았던 벌을 그대로 받아야 했다.
‘헬레니즘’이라는 말은 그리스를 뜻하는 ‘헬라스’에서 나온 것으로 ‘그리스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헬레니즘 세계가 지향하는 것은 그리스적 문화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 국가들에 대한 이해는 헬레니즘 세계를 이해하는 배경이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연대순으로 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기원전 800-600년의 시기로, 해외 식민지의 건설과 정치제도의 급속한 발전을 특징으로 한다. 제2기는 기원전 600-400년의 시기로, 그리스문명의 황금기이며 정치, 경제, 사회적 제도의 발달이 극에 달했던 때이다. 제3기는 기원전 400이후의 시기로, 정치적으로 쇠퇴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 문화적인 쇠퇴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플라톤과 알렉산더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시기의 초기에 활동했다.
기원전 4세기 이후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사실상의 독립을 상실하였으며, 알렉산더와 그의 후계자들이 지배한 마케도니아의 속국이 되었다. 그리고 2세기 뒤에는 로마제국에 의해서 흡수되었다. 정치, 경제, 문화가 눈부시게 발전했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이러한 몰락은 그들이 정치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국가들에게는 전체로서의 그리스라는 의미보다는 개개의 도시국가들이 보다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갖고 있던 이러한 독립성은 결국 그들보다 더 큰 세력 앞에서 자신을 무력하게 내어놓는 결과를 차지했다. 아테네를 패배로 몰고 간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승리도 평화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후 도시국가들 간의 끝없는 전쟁과 페르시아의 사주는 그리스가 하나로 되지 못한 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스의 북쪽, 에게해의 위쪽에 있던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기원전 359-336)이 마케도니아를 부흥시키자, 결국 쇠퇴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1세기 반전의 페르시아의 원정 이후 가장 심각한 외침의 위협에 놓이게 되었다.
알렉산더가 등장하기 전 이미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페르시아의 세력을 넘어, 마케도니아의 세력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후 알렉산더의 정복으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대한 정치적인 침략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결국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세계도 페르시아 제국이나 발달된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같은 정치적 특성을 보유했으며, 이는 그들의 멸망의 공통된 원인이었다. 문화적으로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지만, 정치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할 수 없었던 헬레니즘 세계는 로마 제국에 의해서 몰락하게 되었다. 기원전 5세기에 시민들에 의한 공화정으로 시작한 로마는 그 이웃들과 이탈리아의 나머지, 그리고 지중해의 다른 지방들을 정복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결국 옥타비아누스가 기원전 27년에 확장된 로마의 단독지배자가 되면서, 로마 제국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로마 공화정의 마감으로 시작된 로마 제국은 페르시아나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헬레니즘 세계가 이루어내지 못한 하나의 통일된 거대국가의 탄생을 의미했다. 지중해연안에서 헬레니즘 세계가 지배하던 영향력은 로마에게로 이어지고, 기원 후 1, 2세기에 로마제국은 그 절정의 시기에 이르렀다. 이 때에 로마는 ‘팍스 로마나’(기원전 27-기원 후 180), 즉 ‘로마의 평화’라는 구호 속에 당시의 모든 세계를 포섭했다. 로마 제국은 정치적으로는 당시의 모든 주변국들을 하나로 묶는 통일성을 구축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새로운 것에 기여한 바가 많지 않다. 로마인들은 군사조직, 정부, 법률, 토목공사들의 실리적이고,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는 뛰어났지만, 문화적인 면에서는 주로 그리스인의 업적을 배우고, 본뜨고 보존하였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면에서의 헬레니즘 세계는 로마의 출현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지만, 헬레니즘의 문화적 영향력은 기원 후 1, 2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로마는 그리스와 근동의 오래된 문명에서 많은 것을 빌려왔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에는 그리스와 근동으로부터 사상, 종교, 제도들의 이입이 많았다. 그러므로 로마 문명에서 그리스-동방적, 혹은 헬레니즘적 요소를 구별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렇듯 로마 제국의 문명에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헬레니즘이 기원 후 1세기에 형성된 그리스도교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