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입장
1. 보수 배타주의
다른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적인 태도, 특히 보수적인 입장에 대하여 말할 때에 복음주의를 빼 놓을 수 없다.
"복음주의적 부흥"이라는 말은 독일의 경건주의, 영국의 감리교 운동, 북미의 대각성 운동 등에 의해서
18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발흥된 광범위한 운동을 포함하는 것이긴 하지만,
오늘날 그 말은 금세기에 접어 들면서 근본주의의 형태로 형성된 새로운 그리스도교 형태를 가리킨다.
한편 근본주의는 1910년과 1915년 사이에 {근본주의}라는 제목의 12권 분량의 총서가 수백만 부가 팔려 나가면서
자유주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공격을 시작함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의 계열 속에서 분열이 일어 났다.
1940년대, 1950년대를 거치는 동안 근본주의의 신학적 확신에 동참했던 사람들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신학자와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의 논쟁 지향적 심성,반지성주의,사회적 무관심에 반기를 들었다.
1941년 이들 반항자들은 "미국복음주의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를 결성했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은 기본적인 신학적인 관점들을 공유했다:
1)성서의 문자적 영감설,무오성,절대 권위,
2)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며, 인격적 신앙 경험을할 필요성에 대한 강조,
3)세계를 그리스도에게로 개종시킬 절박성에 대한 단호한 위임,
4)현대신학, 특히 역사비판적인 성서해석 방법에대한 불신 등이었다.
이러한 복음주의도 다시 분열 되었다.
1960년대, 특히 1970년대 이래 복음주의자들은 현대 세계와의 보다 적극적인 조정을 요구하여 왔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움직임은 이른바 "신복음주의"운동을 탄생 시켰다.
이들의 관심은 세가지 영역으로 집중 된다:
1)이들은 교회일치에 대해 개방적이며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미국 복음주의 운동에 참여 한다.
2)성서의 절대 무오성에서 벗어나 오히려 성서의 '제한된 무오성'혹은 '제한된 무오류성'을
역사나 과학의 문제에 있어서가 아니라 신앙의 실천적인 문제에서 확신한다.
3)이들은 과거의 복음주의자들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단순했고
그들 자신이 압박의 현상 유지를 위한 수호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분열된 복음주의의 각 계열은나름대로의 주장을 가지고 분열을 했다고 할지라도
기본적인 노선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부류의 집단은 복음주의 내의 아주 중요한 발전을 함축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하나의 복음주의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들은 신과 인간의 샹태에 관한 지식의 절대적 출처로서 성서가 가지는,
성서가 무오한 것으로 간주되든 안 되든,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수한다.
이들은 또한 세계의 유일한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보편적 주 되심과 그의 구원의 능력을 인격적으로 경험할 필요성을 선포한다.
끝으로 이들은 선교를 통해서 모든 백성들에게 주 예수를 증거 함으로써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게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른종교들의 이해에 대한 보수적 복음주의 모델의 일반적인 모습은 유명하고도 영향력 있는
"프랑크푸르트선언"(Frankfurt Declaration)에서 분명하고도 힘있게 표현 되어 있다.
이 선언의 입장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고 다른 종교를 평가하는 제1차적인 참조의 틀은 성서이고,
오직 성서일 수만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른 종교들에 대한 성서의 판단이 제시 된다.
"구원은 단 한번, 영원히 인류를 위해서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십자가 사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구원은 "오직 신앙의 참여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비그리스도교 종교들과 세계관들도 그리스도 신앙과 유사한 구원의 길들이라는 거짓된 가르침은 거부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교회와 다른 종교들의 사이에는 "본질상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거칠고도 비타협적인 성격은 1974년 7월16일에서 25일까지 스위스 로잔에서 모인
세계복음화 국제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에서 약화 되었으나 그 기본적인 메세지는 재확인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성서의 절재적 권위, 그리스도의 유일회성,
그리고 그에 따른 복음주의의 절박한 요청을 강하게 재확인 했다.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모든 종교들
혹은 이데올로기들을 통해서도 똑 같이 말한다고하는 일종의 절충주의나 대화를 일체 거부 했다.
다른 종교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은 분명하게 거부 되었다.
이 대회는 "그리스도교의 사회적인 책임성"을 인정하고 "성의 있게 들음으로써 이해에 도달하려는 대화의 방법"의 필요성을 인정 했다.
1989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로잔대회(Lausanne Ⅱ in Manila)는 세게의 급격한 변화를 의식하고 오늘의 사회와 타종교,
이데올로기의 변천상황과 그들의 도전을 토의하고 그에 따른 신학 정리도 하였다.
이 대회를 통하여 로잔 신학은 타종교와 연관 시킨 어떠한 상대주의나 혼합주의도 반대한다고 선언하였다.
마닐라 선언은 "다른종교나 이데올로기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또 다른 길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영성은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 아니라 심판에 이른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주장한다.
또한 마닐라 선언은 기독교가 선교전선에서 "타종교 신앙인들에대한 무지. 거만, 무례,
혹은 대적의 태도를 취하는 잘못을 범해왔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회개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는 자도 모든 사람이 설혹 그들이 복음을 거절한다고 할지라도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개방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언급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때문에 흔히 갖기 쉬운 배타적이고
소외적인 태도를 지양하려고 마닐라 대회는 애썼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닐라 선언은
"타종교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전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즉음 그리고
부활에 나타난 그의 유일성을 적극적으로 증거 하면서 결코 타협조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보수적 복음주의 신학의 선민의식과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같은 태도를 지니는 타종고들과의 마찰로 인한 전쟁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기독교 국가 설립을 목적으로 비기독교인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통치자의 기반을 구축해 줄 염려가 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뜨거운 확신과 선교 열정, 성서에 대 영적 신뢰와 복종,
기독교의 고유한 초대교회 케리그마 언어 속에 표현된 메세지를 지키고 보존하며
손상 없이 전수 시키려는 전통에 대한 충실함,
또 무엇보다도 구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주적 주권에 대한 고백 등은 종교 다원적 세계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에 공헌 했다고 볼 수 있다.
2. 개방적 포용주의
모든 종교는 궁극적 실재에 관한 계시 체험을 동반하지만,
구원계시의 규범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포용주의는 타종교들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보다 대화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포용주의를 크게 개신교의 진보적 자유주의와 카톨릭의 노선, 이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카톨릭의 태도는 개신교의 태도 보다 더 진보적인 형태를 띄고 있으며 종교 다원주의를 향해 나가고 있다.
이 유형은 다른 종교를 통한 신의 은총과 구원의 행위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원 계시의 최종성, 독특성, 규범성을 주장한다.
대표적인 신학자는 카톨릭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칼 라너이다.
라너의 신학은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존중하면서 그리스도의 배타성과 보편성을 긍정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이다.
그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론에서 하나님이 보편적 구원의지와 구원을 위해 교회에 소속해야할 필요성을 동시에 받아 들인다.
이를 위해 라너는 전 인류를 교회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 한다.
여기에서 비그리스도교인들도 선험적으로 교회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 됨으로써 이들에게 특정한 그리스도교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라너는 중세의 '자연과 은총'이라는 도식을 끌어 들인다.
은총은 자연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 시키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신의 자유롭고 은혜로운 자기 전달은 신이 자신을 알릴 수 있고 신의 자기 전달을 받아 들일 수 있는 피조물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로 향하는 것을 그의 계시 속에서 인지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내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라너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그리고 그리스도교와 타종교를 실질적으로 '그리스도교성'의 동일한 평면 위에 세운다.
그러나 교회 소속성과 상이한 등급을 강조 함으로 그리스도교의 고유성을 보존하고자 한다.
그러나 교회 소속성의 등급들이 각각 다르게 규정되더라도 모든 인간은 교회에 속한다.
결국 라너의 입장은 타 종교가 그리스도의 참된 보편적인 교회로 수렴되고 성취 된다는 교회 중심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라너는 타신앙인에 대한 보다 '낙관적인' 그리스도교적 태도를 밝히고 타신앙인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줌으로서 그리스도교의 배타주의를 깨뜨리려고 했다.
개신교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성령의 편재적 활동에 근거를 둔 개방적 입장을 취한다.
그는 유한적인 현현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초월성을 확증하려고 했다.
그에 의하면 계시 경험은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모든 종교에는 계시와 구원의 능력이 있다.
계시는 유한한 인간에 의하여 수용되기 때문에 항상 왜곡되며, 따라서 신비적, 예언적, 세속적 종교 비판이 가능해진다. 고 보았다.
틸리히는 다른 종교들을 비판 하면서 동시에 타종교들로 부터의 비판을 수용하는 개방된 그리스도교의 태도를 예로 제시한다.
또한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타종교인들을 개종시키려는 대신 자기 비판과 대화를 모색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자기 비판과 대화의 목적은 종교들의 습합이나 어떤 힌 종교의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며,
자기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의 종교의 심층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틸리히는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독특성이 영적인 자유로 스며들고,
인간 실존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다른 표현들에서 찾을 수 있는 영적 현존의 비젼으로 스며들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이다.
이처럼 틸리히는 인간의 궁극적 실재를 지향하는 모든 종교들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신학적 다원주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종교사에서의 결정적 승리를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출현으로 본다.
그리스도교는 타종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교이지만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라는 새로운 존재에 대해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틸리히는 그리스도교의 배타적인 우월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열등한 다른 종교들을 배제 하거나 포괄하는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최종적인 계시인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중심으로 타종교와의 관계를 맺는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관계적 절대성'(relational
absoluteness)이 입증 된다고 주장한다.
이상과 같은 틸리히의 타종교에 대한 우호적인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절대성에 대한 주장은 타종교와의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데 있어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3. 다원주의
지금까지 살펴본 배타주의와 포괄주의는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입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넘어선 종교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를 궁극적 실재에 대한 다양한 인간 반응으로 보며
모든 종교는 진지한 상호간의 대화를 통해 더 높은 차원으로 자신의 종교를 성숙 시켜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종교 다원주의는 이미 트뢸치의 역사적 상대주의, 토인비의 종교 보편주의,
칼 융의 원형론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과정 사상을 통해서 태동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급진적인 종교 다원주의자 존 힉은 오늘의 세계 신학은 '신학적 사고'(theological thinking)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거치고 있다고 보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중세의 우주관의 변화에 혁명을 가져 왔듯이
신학에서도 그리스도 중심에서 신 중심주의로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궁극적 신비로서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삶의 양식의 다양성에 따라 그에 대한 인간의 체험과 반응도 다양하다고 본다.
또한 힉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신화로 이해 함으로써 하나님을 '오직' 예수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참으로'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예수가 모든 다른 인간 존재들을 위한 중심 혹은 규범이라고 주장하지 않고도
예수가 그들의 삶을 위한 중심과 규범이 됨을 선언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폴 니터는 이러한
그리스도론은 종교간의 대화의 가능성과 동시에 그 필연성을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고 본다.
파니카는 종교 다원주의를 근본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세가 모델을 제시한다.
첫째는 물리적 모델이다. 여기서 그는 무지개 자체의 빛과 프리즘에 나타나는 그 색을 대비 시켜 말한다.
우리는 무지개 빛을 프리즘을 통해 빨강에서 보라까지의 색으로 구분해서 말한다.
그렇지만 파니카에 의하면 그러한 구분은 인위적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빛의 색은 사실 농도의 차이는 비록 있겠지만 서로가 엄밀히 구분되지 않는다.
즉 여러 색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빛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파니카는 이 빛을 실재에, 색들을 제 종교에, 프리즘을 인간 경험에 각기 연관 시켜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제 종교들을 하나의 실재(절대자, 신, 또는 절대종교)에 대한 여러 상이한 인간 경험의 구체적인 서술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기하학적인 모델이다. 여기에서는 다양한 제 종교들을 기하학적인위상의 변형으로 이해 한다.
이 위상은 근원적인 인간의 경험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파니카는 결국 여러 상이한 종교들을
근원적인 경험이 시.공 속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변화된 채로 드러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인류학적인 모델이다. 여기선 언어를 예로 들고 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언어들이 있다.
그들은 제 각기 자신의 고유힌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언어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실재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더욱 정확히 할 수 있고 잘못된 생각은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에 있어서 특정 언어가 다른 언어 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의 특정한 종교가 다른 종교 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 종교들은 다원주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원주의는 계시와 구원에 이르는 길이 다양하다고 보는데 이들은 대부분 신 중심적 모델(Theocentrism)을 취하고 있다.
신중심적 모델이란 종래의 교회중심적인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 방법을 지양하고
신학의 초점을 신을 중심으로하여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기존의 교회 중심적인 신학 방법과 모든 신학의 규범을 그리스도에게 설정하는
"그리스도 중심주의"로 부터 "신 중심주의"에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신 중심적 모델은 배타주의의 성서영감설에 바탕을 둔 예수 그리스도의 배타적 유일회성은 물론, 라너에 의해 제기 되었고
한스 큉에 의해 발전된 포용주의의 간접적인 구원과 계시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은 여러 다른 신앙을 통한 구원과 계시의 보편성을 말한다.
1. 보수 배타주의
다른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적인 태도, 특히 보수적인 입장에 대하여 말할 때에 복음주의를 빼 놓을 수 없다.
"복음주의적 부흥"이라는 말은 독일의 경건주의, 영국의 감리교 운동, 북미의 대각성 운동 등에 의해서
18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발흥된 광범위한 운동을 포함하는 것이긴 하지만,
오늘날 그 말은 금세기에 접어 들면서 근본주의의 형태로 형성된 새로운 그리스도교 형태를 가리킨다.
한편 근본주의는 1910년과 1915년 사이에 {근본주의}라는 제목의 12권 분량의 총서가 수백만 부가 팔려 나가면서
자유주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공격을 시작함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의 계열 속에서 분열이 일어 났다.
1940년대, 1950년대를 거치는 동안 근본주의의 신학적 확신에 동참했던 사람들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신학자와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의 논쟁 지향적 심성,반지성주의,사회적 무관심에 반기를 들었다.
1941년 이들 반항자들은 "미국복음주의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를 결성했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은 기본적인 신학적인 관점들을 공유했다:
1)성서의 문자적 영감설,무오성,절대 권위,
2)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며, 인격적 신앙 경험을할 필요성에 대한 강조,
3)세계를 그리스도에게로 개종시킬 절박성에 대한 단호한 위임,
4)현대신학, 특히 역사비판적인 성서해석 방법에대한 불신 등이었다.
이러한 복음주의도 다시 분열 되었다.
1960년대, 특히 1970년대 이래 복음주의자들은 현대 세계와의 보다 적극적인 조정을 요구하여 왔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움직임은 이른바 "신복음주의"운동을 탄생 시켰다.
이들의 관심은 세가지 영역으로 집중 된다:
1)이들은 교회일치에 대해 개방적이며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미국 복음주의 운동에 참여 한다.
2)성서의 절대 무오성에서 벗어나 오히려 성서의 '제한된 무오성'혹은 '제한된 무오류성'을
역사나 과학의 문제에 있어서가 아니라 신앙의 실천적인 문제에서 확신한다.
3)이들은 과거의 복음주의자들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단순했고
그들 자신이 압박의 현상 유지를 위한 수호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분열된 복음주의의 각 계열은나름대로의 주장을 가지고 분열을 했다고 할지라도
기본적인 노선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부류의 집단은 복음주의 내의 아주 중요한 발전을 함축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하나의 복음주의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들은 신과 인간의 샹태에 관한 지식의 절대적 출처로서 성서가 가지는,
성서가 무오한 것으로 간주되든 안 되든,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수한다.
이들은 또한 세계의 유일한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보편적 주 되심과 그의 구원의 능력을 인격적으로 경험할 필요성을 선포한다.
끝으로 이들은 선교를 통해서 모든 백성들에게 주 예수를 증거 함으로써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게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른종교들의 이해에 대한 보수적 복음주의 모델의 일반적인 모습은 유명하고도 영향력 있는
"프랑크푸르트선언"(Frankfurt Declaration)에서 분명하고도 힘있게 표현 되어 있다.
이 선언의 입장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고 다른 종교를 평가하는 제1차적인 참조의 틀은 성서이고,
오직 성서일 수만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른 종교들에 대한 성서의 판단이 제시 된다.
"구원은 단 한번, 영원히 인류를 위해서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십자가 사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구원은 "오직 신앙의 참여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비그리스도교 종교들과 세계관들도 그리스도 신앙과 유사한 구원의 길들이라는 거짓된 가르침은 거부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교회와 다른 종교들의 사이에는 "본질상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거칠고도 비타협적인 성격은 1974년 7월16일에서 25일까지 스위스 로잔에서 모인
세계복음화 국제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에서 약화 되었으나 그 기본적인 메세지는 재확인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성서의 절재적 권위, 그리스도의 유일회성,
그리고 그에 따른 복음주의의 절박한 요청을 강하게 재확인 했다.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모든 종교들
혹은 이데올로기들을 통해서도 똑 같이 말한다고하는 일종의 절충주의나 대화를 일체 거부 했다.
다른 종교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은 분명하게 거부 되었다.
이 대회는 "그리스도교의 사회적인 책임성"을 인정하고 "성의 있게 들음으로써 이해에 도달하려는 대화의 방법"의 필요성을 인정 했다.
1989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로잔대회(Lausanne Ⅱ in Manila)는 세게의 급격한 변화를 의식하고 오늘의 사회와 타종교,
이데올로기의 변천상황과 그들의 도전을 토의하고 그에 따른 신학 정리도 하였다.
이 대회를 통하여 로잔 신학은 타종교와 연관 시킨 어떠한 상대주의나 혼합주의도 반대한다고 선언하였다.
마닐라 선언은 "다른종교나 이데올로기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또 다른 길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영성은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 아니라 심판에 이른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주장한다.
또한 마닐라 선언은 기독교가 선교전선에서 "타종교 신앙인들에대한 무지. 거만, 무례,
혹은 대적의 태도를 취하는 잘못을 범해왔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회개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는 자도 모든 사람이 설혹 그들이 복음을 거절한다고 할지라도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개방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언급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때문에 흔히 갖기 쉬운 배타적이고
소외적인 태도를 지양하려고 마닐라 대회는 애썼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닐라 선언은
"타종교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전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즉음 그리고
부활에 나타난 그의 유일성을 적극적으로 증거 하면서 결코 타협조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보수적 복음주의 신학의 선민의식과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같은 태도를 지니는 타종고들과의 마찰로 인한 전쟁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기독교 국가 설립을 목적으로 비기독교인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통치자의 기반을 구축해 줄 염려가 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뜨거운 확신과 선교 열정, 성서에 대 영적 신뢰와 복종,
기독교의 고유한 초대교회 케리그마 언어 속에 표현된 메세지를 지키고 보존하며
손상 없이 전수 시키려는 전통에 대한 충실함,
또 무엇보다도 구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주적 주권에 대한 고백 등은 종교 다원적 세계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에 공헌 했다고 볼 수 있다.
2. 개방적 포용주의
모든 종교는 궁극적 실재에 관한 계시 체험을 동반하지만,
구원계시의 규범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포용주의는 타종교들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보다 대화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포용주의를 크게 개신교의 진보적 자유주의와 카톨릭의 노선, 이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카톨릭의 태도는 개신교의 태도 보다 더 진보적인 형태를 띄고 있으며 종교 다원주의를 향해 나가고 있다.
이 유형은 다른 종교를 통한 신의 은총과 구원의 행위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원 계시의 최종성, 독특성, 규범성을 주장한다.
대표적인 신학자는 카톨릭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칼 라너이다.
라너의 신학은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존중하면서 그리스도의 배타성과 보편성을 긍정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이다.
그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론에서 하나님이 보편적 구원의지와 구원을 위해 교회에 소속해야할 필요성을 동시에 받아 들인다.
이를 위해 라너는 전 인류를 교회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 한다.
여기에서 비그리스도교인들도 선험적으로 교회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 됨으로써 이들에게 특정한 그리스도교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라너는 중세의 '자연과 은총'이라는 도식을 끌어 들인다.
은총은 자연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 시키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신의 자유롭고 은혜로운 자기 전달은 신이 자신을 알릴 수 있고 신의 자기 전달을 받아 들일 수 있는 피조물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로 향하는 것을 그의 계시 속에서 인지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내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라너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그리고 그리스도교와 타종교를 실질적으로 '그리스도교성'의 동일한 평면 위에 세운다.
그러나 교회 소속성과 상이한 등급을 강조 함으로 그리스도교의 고유성을 보존하고자 한다.
그러나 교회 소속성의 등급들이 각각 다르게 규정되더라도 모든 인간은 교회에 속한다.
결국 라너의 입장은 타 종교가 그리스도의 참된 보편적인 교회로 수렴되고 성취 된다는 교회 중심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라너는 타신앙인에 대한 보다 '낙관적인' 그리스도교적 태도를 밝히고 타신앙인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줌으로서 그리스도교의 배타주의를 깨뜨리려고 했다.
개신교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성령의 편재적 활동에 근거를 둔 개방적 입장을 취한다.
그는 유한적인 현현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초월성을 확증하려고 했다.
그에 의하면 계시 경험은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모든 종교에는 계시와 구원의 능력이 있다.
계시는 유한한 인간에 의하여 수용되기 때문에 항상 왜곡되며, 따라서 신비적, 예언적, 세속적 종교 비판이 가능해진다. 고 보았다.
틸리히는 다른 종교들을 비판 하면서 동시에 타종교들로 부터의 비판을 수용하는 개방된 그리스도교의 태도를 예로 제시한다.
또한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타종교인들을 개종시키려는 대신 자기 비판과 대화를 모색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자기 비판과 대화의 목적은 종교들의 습합이나 어떤 힌 종교의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며,
자기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의 종교의 심층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틸리히는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독특성이 영적인 자유로 스며들고,
인간 실존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다른 표현들에서 찾을 수 있는 영적 현존의 비젼으로 스며들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이다.
이처럼 틸리히는 인간의 궁극적 실재를 지향하는 모든 종교들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신학적 다원주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종교사에서의 결정적 승리를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출현으로 본다.
그리스도교는 타종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교이지만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라는 새로운 존재에 대해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틸리히는 그리스도교의 배타적인 우월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열등한 다른 종교들을 배제 하거나 포괄하는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최종적인 계시인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중심으로 타종교와의 관계를 맺는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관계적 절대성'(relational
absoluteness)이 입증 된다고 주장한다.
이상과 같은 틸리히의 타종교에 대한 우호적인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절대성에 대한 주장은 타종교와의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데 있어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3. 다원주의
지금까지 살펴본 배타주의와 포괄주의는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입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넘어선 종교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를 궁극적 실재에 대한 다양한 인간 반응으로 보며
모든 종교는 진지한 상호간의 대화를 통해 더 높은 차원으로 자신의 종교를 성숙 시켜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종교 다원주의는 이미 트뢸치의 역사적 상대주의, 토인비의 종교 보편주의,
칼 융의 원형론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과정 사상을 통해서 태동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급진적인 종교 다원주의자 존 힉은 오늘의 세계 신학은 '신학적 사고'(theological thinking)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거치고 있다고 보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중세의 우주관의 변화에 혁명을 가져 왔듯이
신학에서도 그리스도 중심에서 신 중심주의로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궁극적 신비로서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삶의 양식의 다양성에 따라 그에 대한 인간의 체험과 반응도 다양하다고 본다.
또한 힉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신화로 이해 함으로써 하나님을 '오직' 예수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참으로'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예수가 모든 다른 인간 존재들을 위한 중심 혹은 규범이라고 주장하지 않고도
예수가 그들의 삶을 위한 중심과 규범이 됨을 선언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폴 니터는 이러한
그리스도론은 종교간의 대화의 가능성과 동시에 그 필연성을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고 본다.
파니카는 종교 다원주의를 근본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세가 모델을 제시한다.
첫째는 물리적 모델이다. 여기서 그는 무지개 자체의 빛과 프리즘에 나타나는 그 색을 대비 시켜 말한다.
우리는 무지개 빛을 프리즘을 통해 빨강에서 보라까지의 색으로 구분해서 말한다.
그렇지만 파니카에 의하면 그러한 구분은 인위적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빛의 색은 사실 농도의 차이는 비록 있겠지만 서로가 엄밀히 구분되지 않는다.
즉 여러 색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빛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파니카는 이 빛을 실재에, 색들을 제 종교에, 프리즘을 인간 경험에 각기 연관 시켜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제 종교들을 하나의 실재(절대자, 신, 또는 절대종교)에 대한 여러 상이한 인간 경험의 구체적인 서술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기하학적인 모델이다. 여기에서는 다양한 제 종교들을 기하학적인위상의 변형으로 이해 한다.
이 위상은 근원적인 인간의 경험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파니카는 결국 여러 상이한 종교들을
근원적인 경험이 시.공 속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변화된 채로 드러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인류학적인 모델이다. 여기선 언어를 예로 들고 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언어들이 있다.
그들은 제 각기 자신의 고유힌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언어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실재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더욱 정확히 할 수 있고 잘못된 생각은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에 있어서 특정 언어가 다른 언어 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의 특정한 종교가 다른 종교 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 종교들은 다원주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원주의는 계시와 구원에 이르는 길이 다양하다고 보는데 이들은 대부분 신 중심적 모델(Theocentrism)을 취하고 있다.
신중심적 모델이란 종래의 교회중심적인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 방법을 지양하고
신학의 초점을 신을 중심으로하여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기존의 교회 중심적인 신학 방법과 모든 신학의 규범을 그리스도에게 설정하는
"그리스도 중심주의"로 부터 "신 중심주의"에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신 중심적 모델은 배타주의의 성서영감설에 바탕을 둔 예수 그리스도의 배타적 유일회성은 물론, 라너에 의해 제기 되었고
한스 큉에 의해 발전된 포용주의의 간접적인 구원과 계시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은 여러 다른 신앙을 통한 구원과 계시의 보편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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