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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두손

성령강림의 역사적 의미(2)[행 1:4-5] 1

작성자ysong7777|작성시간11.03.31|조회수21 목록 댓글 0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강림을 약속하시면서 사도들로 하여금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기까지는 사역을 시작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왜 예수님은 성령강림을 약속하셨고 왜 성령을 보내시는 것일까? 성경이 성령 강림에 대한 약속을 하는 것은 어떤 목적과 어떤 의미로 하고 있는 것인가?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9)”

이것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누가복음 마지막 장에 기록한 말씀이다. 성령강림에 대한 약속이 누가에 의하면 능력을 입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선 사도들에게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약속하시고 성령강림 이후에 능력을 받고 나가서 그들의 사역을 완수했다고 하면 쉬운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그 사역을 우리가 생각하는 형태의 성공으로 약속한 예는 없다. 구약이나 신약을 통틀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먼저 나가서 전파하고 깨우치는 사역자들의 사역이, ‘그것으로 인해 상대방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것이다’라고 약속되어 시행되는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

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

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

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

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8-10)”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전하기 위한 사역자로서의 일을 자청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고 보내시지만 보낼 때의 약속이 ‘네가 가서 하는 것을 아무도 못 알아 들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왔을 때 세상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

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내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

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

를 따르라 하시니(요 21:18-19)”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누가 보아도 순교인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그가 원치 아니하는 죽음을 당해야 하고 그가 하고 싶은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들에게 주께서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는 사뭇 다르다. 성령강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령의 간섭은 지금도 있고 또 있어야 마땅하고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할 약속 중의 하나이지만 그 뜻과 약속들을 우리 마음대로 오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순절 성령강림에 관한 약속은 구약 요엘서에 예언되었던 일의 성취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

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

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 16:13-14)”

요한복음 16장에서는 성령을 보내시는 가장 큰 목적을 진리에 대한 깨우침, 진리에로의 인도, 진리 가운데서의 보호라고 설명하고 있다. 요엘서 2장의 말씀과 요한복음 16장의 말씀 가운데 공통분모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령의 오심과 성령을 약속하신 가장 큰 목적을 진리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래 일이라는 공통된 단어가 등장한다. 우리는 위의 두 요절 가운데서 몇 가지 공통되는 내용을 추리해야 한다.

①장래 일을 말할 것이다.

②그것은 진리와 연관이 있다.

③이 진리는 주님에 관한 것이다.

누가복음 24장에서 성령강림을 약속하시며 제자들이 사역에 들어가기 이전에 성령이 오시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를 능력에 두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 능력이라는 것은 신.구약 성경을 통해 추적해 보면 능력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고 장래 일과 진리에 대한 것으로 압축되었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고 초점을 모으고 있는 것을 만나게 된다. 이것을 차례로 살펴 보기로 하자.

능력, 진리, 그리스도 이 셋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밀접한 관계이며 같은 내용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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