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 중심적 세계관의 역사적 발전과정
1-1 신적 존재를 인간과 동물의 일치에 기초하여 파악한 이집트인, 바빌로인, 인도인과는 달리,희랍인은 그들의 신들에게 순수하게 인간적인 성격을 부여함으로서 ,인간을 신적 존재에 가깝게 이해하였다.종교심리학적으로 희랍적 신이해의 시초에 이미 인간을 신화적이고 무의식적이며 본능적인 세계와의 관련성으로부터 이탈시킨 발전방향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하겠다. 특히 요니의 자연철학(Die jonische Naturphilosophie)과 함께 서구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고,즉 신화의 자리에 말씀을, 감성의 자리에 이성을,신들의 세계에 원인의 법칙성을 앉힌 사고가 시작된다.(Eugen Drewermann,Der todliche Fortschritt - Von der Zerstorung der Erde und des Menscgen im Erte des Chrestentums,Regensburg 1981,S,67)
희랍적 세계관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단순한 자연사와 구별된다.또 사고의 합리성은 곧 옛날의 신들에 대한 신앙의 정신적 기초를 총체적으로 파괴하였다.이런 회의의 시대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순수하게 인식론적으로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선언하였고, 자연을 주관적 현현의 놀이로서만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로써 인간은 서로 낯선 존재가 되었고,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든지,아니면 자유롭게 신 없는 세계와 마주 서있게 되었다.(Eugen Drewermann,a,a,O.S.68)
1-2 세계에 대한 희랍인의 이런 이원론적인 태도가 로마 세계에서는 보다 현실적으로 드러난다.키케로(Cicero)는 세계는 일차적으로 신들과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졌으며,이 세계안에 잇는 모든 것은 그러므로 인간을 위하여 고안되고 활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키케로는 모든 동물을 살아 있는 저장식품 정도로 여겼다. 로마인에 의해 처음으로 자연이 인간의 목적성취를 위한 단순한 원자재로 생각하는 태도가 대두된 것이다.
1-3 로마인의 정치적, 문화적 유산위에 성립한 그리스도교는 자연의 소외와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더욱 강화시켰다.신적 존재를 만물안에 있는 비인격적 원칙으로 파악하거나 자연현상의 원인과 작용법칙을 연구한 희랍인과는 달리 히브리인들은 창조의 신을 명령과 능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가부장으로 이해하였다. 신화의 세계를 극복하려 했다는데서 희랍인과 히브리인은 비슷한 길을 갔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희랍인은 자연의 비밀을 합리성의 추상화로 해소시킨 반면,히브리인은 세계를 신적 능력의 단순한 현현으로 파악하였다.
구약성서는 놀랍게도 인간의 피조물성, 다른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 인간과 자연 상호간의 교차적인 위협과 대결 등에 대하여 극히 적은 보도를 할뿐이다.동물, 특히 뱀에 대한 적대감이 단 한번 표현될 뿐이다(창 3:15) 구약성서는 전적으로 인간 사이의 사회적, 정치적 관계에 관하여 언급할 뿐이다.자연에 관한 관찰은 극히 예외적으로 언급된다.예컨데 농사법을 일러주시는 하느님(사 28:23 - 29),가뭄으로 신음하는 토지와 들짐승과 새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호 4:3,렘14:5이하, 욜 1: 17 - 20)를 포함해서 지혜문서도 극히 적은 부분에서 자연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뿐이다.
자연에 대한 서술이 적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창조의 중심에 서있다는 고백과 자연은 그 마술적 능력때문에 인간과 적대적인 관계에 서있으나 결국 인간의 삶을 위해 지배되어야 할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세계관이다.시편 8편과 창세기 1장의 창조설화는 이것을 뒷받침한다.인간은 하느님 다음가는 존재이며, 만물을 다스리고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도록 위탁받았다는 것이다.홍수심판 이후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약속하는 때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지배자요 정복자일 뿐이다(창 9:2 - 7)
유목 혹은 농경사회에서 인간이 자연에 예속되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또 시편 104편(인간의 삶이 자연질서의 한 부분으로 이해된다)과 두번째 창조설화(자연보호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강조된다)를 고려하더라도, 자연에 대한 두가지 모순된 태도가 병존하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고대 오리엔트 세계의 인간의 생존자체를 위한 투쟁이 오늘날 우리가 부딪친 지구적 범위의 자멸을 초래할 만큼 심각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지배관계를 전제한 인간과 자연사이의 적대감이 이스라엘이 생각한 이상적인 과제도 아니었다. 성서는 하느님과의 새로운 계약을 통하여 자연과 인간 사이의 소외가 극복되고 치유될 것을 희망하고(호 2;20)늑대와 새끼양,표범과 숫염소,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어울려 풀을 뜯고, 어린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세계를 꿈꾼다(사 11: 6 - 9)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관계(시 104)와 지배관계(시 8) 사이에는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인간적 삶이 하느님의 창조의 영역에서 하느님이 원하신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이로써 인간적 실존방식이 다른 피조물에게 부담이 된다는 사실이 근본적으로 인정된다.자신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인간적 행동은 다른 생명을 공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이 등장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자연이 바뀌고, 경쟁적 관계에 있는 다른 피조물들이 추방당하고 인간자신의 척도에 따라 자신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환경을 변화시킨다.자연과의 거의 운명적인 대결속에 있는 인간에게 시편 104편은 모든 피조물이 생명에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제한된 삶의 영역을 허락 받았다는 것을 가르친다.그러나 시편 8편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세계변화의 공동책임을 지시한다.
그런데 서구 세계의 역사는 구약성서 안에 있는 이 두모델 가운데서 유감스럽게도 절대화된 지배모델 (시 8)을 극단적으로 추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