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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두손

개혁주의 윤리학 - 개혁주의 윤리학의 성격 : 신명론(神命論,Divine Command Ethics)

작성자ysong777|작성시간11.04.10|조회수148 목록 댓글 0

개혁주의 윤리학의 성격 : 신명론(神命論,Divine Command Ethics)

기독교 윤리학을 일반 세속학문에서 구분 할 때 신명론(Divine Command Ethics)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기독교 윤리학이 하나님의 명령을 규범으로 하는 것을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개혁주의 윤리학은 기독교윤리학의 어떤 신학적인 전통보다도 이 것, 즉 하나님의 명령이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제시되든 간에) 인간들의 윤리적인 행동을 위한 규범으로서 충분하다는 신학적 입장에 기초하고 있다. 칼빈주의 윤리학의 특징은 명령자로서의 하나님 그리고 그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라는 기본적인 세계관에 터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이 입장을 일컬어 우리는 신명론Divine Command Ethics, 즉 하나님 명령의 윤리라 한다.

개혁주의 윤리학은 인간의 도덕적인 생활(윤리적인 생활)이란 하나님의 계명에 합이하게 생활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윤리적인 삶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이것은 도덕적 삶을 사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도덕적 명령과 권고는 우리들의 지혜보다 훨씬 신뢰할만하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칼빈주의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사는 것이 그 무엇보다 도덕적 삶을 살아가는데 유익하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흠이없고 인간들이 도덕적인 삶을 살수 있도록 인도하기에 부족하지 않는 분이라는 인식에 터하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우월성의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이 휠신 인간보다 탁월하다).

신명론 비판론자들의 주장

그러면 인간이 자율성이 없이 단순히 순종만 하는 것은 도덕 발달의 단계에 있어서 미성숙한 단계에 있는 자들이 하는 것이 아닌가? 즉 인간에게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율적인 성격 즉 Indicative적(서술윤리적인 성격, 묘사적, 표현윤리적 성격) 성격은 없고 오직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Imperative적인 성격만 있고 타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단순히 순종하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가르치는 하나님 명령의 윤리(신명론)은 오히려 도덕적 성숙을 방해하는 미성숙을 조장하는 윤리는 아닌가? 일부 비기독교학자들은 인간이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윤리적 존재라고 하면서 인간의 서술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이러한 서술성의 윤리적 입장을 강조한다.

우리의 주장

그러나 개혁주의 윤리학은 무엇보다도 도덕적으로 절대적이시고 탁월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질문에는 이렇게 되묻는다. 그리스도인이 인식론적으로 도덕적으로 인간보다 탁월하시고 우월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그 구체적인 인도를 받는 것이 어째서 미성숙하고 유아적인 것이냐? 오히려 지식과 도덕성에 있어서 월등하신 분의 인도와 지도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유아적, 고집적인 행동이 아닌가? 하나님의 지식의 완전하심을 부인하고 마치 자기가 하나님과 동등한 인식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하는 것 그 자체가 유아적인 자세라 할수 있지 않는가? 특히 인간의 죄인됨과 인식에 있어서 유한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인식할 때, 오히려 지식과 능력과 선하심에 있어서 우리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어쩌면 더욱 윤리적일 수 있는 첩경이 될 수 있지는 않는가?

Erich Fromm, Jean Piajet는 대표적인 반대의 인물이라 할수 있다. 이들은 인간들은 도덕적으로 성숙할수록 타율적인 삶(heteonomy)에서 자율적인 삶(autonomy)으로 전환(transition) 해 간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근거해 하나님 명령의 윤리(神命論,Divine Command Ethics)을 비판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완전한 자율성을 가지고 그대로 행동해서 도덕적인 옮음과 선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답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러한 태도는 바로 타락한 인간의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태도인데, 도덕적으로 월등한 자의 뜻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타락한 인간의 반역적인 행동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들의 자세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Commander - Obeyer 즉 명령자와 순종해야 할 자로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 개혁주의 윤리학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사는 삶이 결코 도덕적인 성숙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홉스가 말하는 것과 같이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명령하는 그러한 독재자와는 다르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위정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② 하나님은 독재자, 군주가 아닌 규칙과 규율을 통해 그리고 창조의 질서와 법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준해 스스로 분석하고 판단하여 따르도록 하셨다.

이것은 칼빈주의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법은 계시된 말씀에도 들어나 있지만 창조의 질서(자연법칙, 자연법-도덕법) 속에서도 들어 있다. 이 창조세계를 잘 관찰하면 하나님의 뜻을 어느정도 발견하게 된다. 칼빈도 창조세계야 말로 하나님의 계시이며 하나님 자신을 보여준 계시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과 창조세계는 하나님을 배워가는 학교와 같은 것이다.

소위 창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창조의 질서, 창조의 법칙(도덕법, 자연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창조세계와 인간들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변치않는 뜻이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면서 동시에 다스리시는 분이신다. 일정한 패턴을 따라서 인간들이 순종하고 사회가 질서있게 운영되는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이것을 잘 파악하고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 개혁주의 윤리학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독재자의 명령에 대해 맹목적이고 수동적으로 복종하는 것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린이로 다루지 아니하시고 Adult 성인으로 인정하시고 우리에게 책임있는 순종을 원하신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무조건적으로, 깊은 이해와 생각없이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하나님의 듯을 적극적으로 분별(Discerning)하고 아울러 책임적인 순종을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일방적인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니라 Covenantal Partnership으로서의 쌍방적인 관계 즉 신뢰에 기초한 자원적이고 또 책임있는 순종을 하고 자원적으로 의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Covenantal Partnership언약의 동반자의 관계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

이런 면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칼빈주의적 윤리학은 결코 자율적 서술적 윤리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인격적인 명령(imperative)에 대해 윤리적 동반자로서의 인간의 자원적인 순종을 강조하는 즉 Indicativ적 행동을 아울러 강조하는 윤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악한 현실 속에서 의롭게 된 죄인의 도덕적인 한계와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계명을 규범으로 주신 것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보다 잘 지키며 살아가도록 율법과 계명을 주신 것이다. 인간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Trust)와 아울러 겸손(Humility)한 자세로, 자신의 삶을 도덕적으로 이끌기에 필요한 이 하나님의 명령을 이 세상에서 책임있게 순종할려는 '성숙한 타율성'(Mature Heteronomy)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이 성숙한 타율성은 인간 자체속에서 나오는 서술성 자율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존중하고 그것에 인격적으로 반응하고 책임적으로 순종할려는 비기독교적 서술성, 자율성과 다른 기독교적 서술성이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 윤리학을 잘 설명해 주는 입장이다.

9/19

신학 : 삼위일체적 신학이다.

윤리 : 창조, 타락, 구속의 패턴 속에서 생각되어져야 한다.

시각에 있어서 우주적이다라는 윤리에 있어서 우주적이라고 하는 것. 창조 세계의 구원에 촛점을 말한다. 우리의 시각이 개인의 경건생활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신 세계에 맞추어 나갈려고 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다. 볼트 역시 종말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창조의 세계가 종말에서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현재는 창조의 회복으로써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종말론적으로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구속하신 창조질서 가운데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질서대로 행해나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CRC들은 Neo-Calvinist의 견해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란 창조, 타락, 구속을 우주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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