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어려서부터 악하기에, 노아라도 악하다는 것을 아시기에, 사람에게는 기대를 걸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께서 기대를 거는 것은, 누군가 흠 없는 제물을 바치라는 것이다. 그 향기를 기꺼이 받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새언약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즉, 무지개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 노아언약의 핵심 - 흠 없는 재물 !!
* 그래서 21절에서,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22절에, 사시사철을 통해서 농사가 잘 되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농사가 잘 되는 것은, 인간이 잘나서가 아니라, 오직 흠 없는 제물의 향기로 인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 노아언약인가, 일반은총인가?
* 이것을 두고서 ‘노아언약’ 이라고 하는데, 그 핵심이 흠 없는 제물에 있는데, 그런데 무식한(?) 조직신학자들은 이것을 두고서 ‘일반은총’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인데, 이렇게 일반은총이라고 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특별은총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특별은총에는 십자가가 들어있고 말이다. 이렇게 되니까, 일반은총에는 십자가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그냥 베풀어주신다는 것이다. 정말 과연 그러한가? 이런 무식한 교수들이 신학교에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다.
* 이것이 바로 ‘바빙크’ 라는 신학자가 주장한 것인데, 계시에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에베소서 4장의 말씀은 무엇인가? 그처럼 하나라고 해도 둘로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엡 4: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 계시의 통로는 오직 하나뿐인데, 다른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이름을 준 적이 없는데, 그 이름은 피조물의 이름이 아니라, ‘주의 이름’ 이라는 것이다.
◈ 오직 주의 이름으로 !!
* 자 그렇다면, 7장과 8장에서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하나 내는데, 노아 가족이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① 방주에서 이대로 살련다.
② 방주에서 빠져 나와서 새 땅에서 살련다.
* 그러니 방주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빠져 나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 유명한 ‘안네의 일기’가 아니라, ‘노아의 일기’ 라는 것이다. 원래 남의 일기는 살펴보는 법이 아니지만, 그래도 읽어보라고 적어놓았으니까, 한번 훔쳐(?)서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방주의 일기에 나오는 날짜가 나중에 이스라엘이 새로운 국가가 되어 가는 그 날짜와도 비슷하게(?) 맞아들어 간다는 것이다.
* 창세기 7장 8절을 보면, 아주 구체적으로 날짜를 일일이 다 기록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2월 17일로 시작을 한다는 것이다.
(창 7:11) 노아 육백 세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 노아의 일기 ▣
(2월 17일) 드디어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하나님께서 다 들어가라고 하신다. 내가 문을 닫지도 앉았는데 우리가 다 들어오고 나니까 문이 저절로 닫혔다. 밖에서 누군가 닫았는가 보다. 그 동안에 나는 얼마나 저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들었던가! 바다도 아니고 이런 산 속에서 배를 만든다고 미친놈이라고 마구 놀리던 사람들이 불쌍하기만 하구나!
(2월 17일) 드디어 비가 온다. 비가 마구 쏟아진다. 사람들이 저렇게 살려 달라고 아우성들이지만, 난들 어떻게 할 것인가! 배의 문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까! 제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안되겠지! 정말 하늘에 큰 구멍이 난 것 같다.
(3월 27일) 40일 동안 비가 줄기차게 오더니만 이제는 멈추는 것 같다. 천장에 빗소리가 그만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도 짐승들도 다 죽었겠지! 참! 사람들은 어리석구나! 진작 내 말을 들었으면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 않았을 것인데!
(7월 17일) 오늘로서 홍수 난지가 벌써 5개월이나 되었다. 도대체 언제 이 배는 항해를 그만 둘지가 궁금하다. 그때 ‘쿵’ 하는 소리가 나는데, 아니 방주가 드디어 어디에 도착을 했는가 보다. 아라랏산 꼭대기이구나. 드디어 이제밖에 나가 볼 수가 있게 되었네. 내가 다시 이곳에 오다니, 꿈만 같구나!
(10월 1일) 드디어 산봉우리가 몇 개 보이는 구나! 참, 오랜만에 산봉우리라도 보니까 너무나 기분이 좋고 반갑구나. 그런데 아직도 이 방주에서 내리기는 조금 무리인 것 같다. 조금만 더 참자!
(11월 11일) 내릴 장소가 있는지 싶어서 까마귀를 내보내었더니, 그 까마귀가 못된 까마귀인지 전혀 돌아오지를 않는다. 안 되겠다, 비둘기를 한 마리 보내 보아야겠다. 그런데 이 비둘기가 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그냥 되돌아 왔다. 아직 멀었는가 보다!
(11월 18일) 일주일만에 다시 비둘기를 내어 보내니, 이 비둘기가 저녁이 되어서야 되돌아 왔는데, 그런데 빈손이 아니라 새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왔다. 아! 이제는 정말로 물이 빠지고 있는 구나! 조금만 더 기다리자! 조금만 더 기다리자!
(11월 25일) 일주일 뒤에 다시 비둘기를 내어 보내었더니, 자기가 살 곳이 있었던지 그만 돌아오지를 않는다. 아마, 물이 제대로 많이 빠졌는가 보다! 이제는 나도 곧 나가야겠다. 준비를 하자.
(1월 1일) 새해 첫날이다. 물이 땅에서 제법 많이 걷혀지고 있구나! 이제 정말 밖으로 나갈 때가 다 되었는가 보다. 빨리 나갔으면 좋겠다.
(2월 27일) 오늘로서 홍수가 난지 1년하고도 17일째다. 땅에 물이 모두 말랐다. 정말 하나님 약속은 빈틈이 없구나. 하나님의 약속만 믿으면 되는구나! 드디어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방주에서 나오라고 하신다. 맑은 공기와 햇빛, 그리고 깨끗한 물, 음식이 많이 있겠구나!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우리들을 살리셨구나! 아이들이 너무나도 좋아한다. 내 아내도 신랑을 잘 만나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니까, 당분간은 바가지 안 긁고 참 좋아하겠지!
* 이것이 바로 창세기 7장과 8장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노아의 일기장인데, 물론 편의상 내용을 약간 첨가한 부분도 있지만, 그러나 성경에 보면 그 날짜를 너무나 정확하게 기록하면서, 이 사실을 밝혀 놓고 있다는 것이다.
* 우리도 이런 일기를 매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을 포기하는,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일기를 말이다.
( 0월 0일) 오늘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곗돈을 탔다. 무엇을 하나 살까? 컴퓨터, 아니면 정수기, 아니면 김치 냉장고? 몽땅 사고 싶다. 돈만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이 돈으로 그냥 복권이나 왕창 살까? 아니면 주식투자는 어떨까?
* 이런 일기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믿는 자의 일기는,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관심을 두는 일기라는 것이다. ‘나 같이 못난 놈, 그래 죽자’ 라는 것이, 우리의 일기고 노아의 일기라는 것이다. 떠나는 일기를 쓰자는 것이다. Q.T를 하면서 과연 이런 일기를 쓸 수 있는가?
☞ 성경의 중심사상 P.43 [ 8. 창세기 9장 ]
* 창세기 9장에서는 6절이 중요한데, 한번 보자.
(창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 완전히 보복개념인데, 그러면 왜 이렇게 복수를 하는가? 그것은 인간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노아언약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새롭게 창조했다는 것이다. 흠 없는 제물을 잡아서 만든 작품이기에, 어느 놈이든 내가 만든 작품에 손을 대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 그래서 심판은 하나님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인과 악인에게 햇빛을 주었는데, 왜 네가 설치느냐는 것이다. 김일성을 죽이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햇빛과 공기를 주어서 살려놓았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노아언약에 의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 사실 김일성도 죽어야 하고, 우리도 당연히 죽어야 하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치를 덮어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로서 말이다. 그래서 살아있다는 것이다. 물론 불신자들도 살아있지만, 그러나 그들에게는 ‘진노의 그릇’ 이고, 우리에게는 ‘긍휼의 그릇' 으로 살려두신다는 것이다. 못나기는 서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으면 그것으로 고마워해야지, ‘저 놈은 안 됩니다’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이 땅은 안식의 땅이기에, 흠 없는 제물의 피가 있기 때문에, 날 때부터 악한 죄 있는 인간이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이 사람을 죽이고 그 땅에다 피를 흘려놓았으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만히 둘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러한 우리의 수치가 가려졌음에 감사하는 것이지, 내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증인만 되면 그만 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못난 인간이기에 말이다. 모든 공로는 주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에 나무를 한다고, 안식일을 범했다고 그 사람을 죽이는가? 심판은 하나님께 있는데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했을 때만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 ‘사형제도’ 라는 것이다. 공연히 법과 제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 하나님께서 이러한 제도를 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형제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강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죽이라는 것은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 심지어 출애굽기에 보면, 부모가 자식을 잘못 키워서 자기 부모에게 덤벼들면, 공동체에서 그놈의 자식을 돌로 쳐서 죽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녀교육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냥 신고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