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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탈리온법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그 본문이 들어와 있는 전체 문맥을 보아야 한다. 우선 이 본문이 들어 있는 단원인 출 21장 22절 이하부터 보도록 하자 (역자주: 히브리 본문을 직역에 가깝게 사역함, 본문의 애매한 부분은 후에 다시 주석. 본문상의 난해한 부분은 진하게 표시함).
22절: 만일 남자들이 서로 밀치고 싸우다가 한 임신한 여인을 쳐서, 그녀의 아이들이 나왔을 경우, 단 변을 당한 게 아닐 때, 그는 그녀의 남편이 요구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 단 그 벌금의 액수는 중재자들이 정한다.
23절: 그런데 만약 변을 당했다면, 너는 목숨에는 목숨을 주어야 한다.
24절: 눈에는 눈을, 이에는 이를, 손에는 손을, 발에는 발을
25절: 화상엔 화상을, 타박상엔 타박상을, 멍에는 멍을
몸에 상해를 입은 이상의 목록들(24절 이하)이 임신한 여인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설사 그녀가 조산을 하였거나 또는 유산을 하였다 해도, 그리고 눈과 이를 다쳤다 치더라도, 화상을 입은 경우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24절은 더 이상 '아손 (변을 당함)' ???? 의 경우가 아니다. 이 단어는 요셉 이야기에 많이 나오는데 (창 42,4.38; 44,29), 이는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경우로 나온다. 이처럼 '아손' ???? 이 임산부에게 해당한 것일 경우 이는 '목숨에는 목숨을' 일 수 있다. 만약 신체상에 다친 경우라면 이에 따라 얼마간의 보상으로 해결된다. 문제는 22절에 나와 있는 경우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데 어려움들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Jakson, The Problem을 참고하라). 왜냐하면 우선 남자들이(복수) 싸운 것으로 나오는데, 그 중 한 사람만이 벌금을 내는 것으로 나온다는 것, 아이들이 복수로 나오는 문제, 남편이 가해자에 대한 요구는 "중재자들(?) 펠릴림 ????? 의 조정에 따르는 문제들이다. 이런 것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길이 없다. 특히 히브리성서 본문은 70인역 번역인 셉투아진타에 비해 본문의 뜻이 불명확하다.
특히, "웨임 아손" ???????? (변을 당했을 경우) -"웰로 이흐예 아손" ???? ???? ??? (변을 당하지 않았을 경우)가 무엇과 관련이 되는 것인지가 모호하다. 아이들인가 아니면 그녀인가? 특히 무엇 때문에 여기 일반적으로 쓰이는 '사망' 이라든가 아니면 이와 유사한 단어를 쓰지 않고 '변을 당함'이란 뜻의 '아손' ???? 이란 단어를 사용했을까? 현재 본문의 상황으론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유산이냐 조산이냐의 문제는 고대 근동 법조문들과의 대조등을 통해 다루어졌다 (코덱스 Lipit Eschtar Kol. III, 2-4(TUAT I/1 25이하), 수메르 법전 §1 이하(ANET 525), 함므라비 법전 Codex Hammurapi §209-214(TUAT I/1 69), 중기앗시리아 법전 §21.50-52(TUAT I/1 83.91), 힛타이트 법전 §17이하(TUAT I/1 100), Jungling, Auge fur Auge, 27이하를 참고하라). 이상의 고대근동의 법들에서는 조산의 경우를 다루고 있지 않다. 3개월 이후 아이의 죽음이거나 아니면 임산부의 죽음 그 둘 중에 하나다 (Loewenstamm, Exodus 21,22-25, 353이하, 는 Jakson, The Problem, 특히 98 이하, 에 반대하고 이는 조산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고 한다). 랍비 문헌들의 해석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선 D.M. Feldman, Birth Control in Jewish Law, New York 1968, 253이하를 참고하라). 그렇기 때문에 22절은 조산이 아니라 유산을 가리킨다. 그러나 23절의 불의의 사고로 인한 변을 당함은 임산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23절에서 갑작스럽게 문체가 바뀌어서 '너'라고 나온다 "너는 주어야 한다". 22절의 결의론적 법조문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대상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이 절부터 탈리온법이 삽입된 것이라고 보아왔다 (특히 Wagner, Rechtssatze, 3이하, 그리고 Alt, Talionsformel, 33이하 참고). 그렇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 23절은 22절의 배상으로 해결될 문제보다 무언가 좀 더 심한 경우 ('웨임 아손' ????????)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경우 고대 근동의 법에선 사형에 처해지는 경우이다. 이럴 경우엔 "목숨에는 목숨으로"가 해당되는 것이다 (특히 Jakson, The Problem, 94와 Jungling, Auge fur Auge, 32를 참고하라. 이들은 24절부터 삽입으로 본다). 이 유형은 구약성서 곳곳에 나오지만 이는 단편들이고 그 다음 나오는 것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성결법전의 레위기 24장 18절은 본문 20절서부터 나오는 탈리온법 유형과는 별도의 것이다. 여기선 짐승에 대한 것이다. 곧 "가축의 목숨을 때렸으면 (가축을 죽였으면) 이에 상응하는 것으로 '목숨을 목숨으로' 주는 것"이다. 이런 방법론적 근거들로 인해 출 21장 23절을 임산부에게 해당하는 경우라고 보아야 할 경우, 바로 보충된 본문은 24절부터가 되는 것이다.
22절이하에 대한 문서상, 그리고 전승사적으로 확대되었다고 보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도대체 "목숨에는 목숨으로" 네페쉬 타하트 네페쉬 ??? ??? ???" 는 무엇을 의미하고, 여기, 그리고 그 다음에 계속 나오는 "..에는" 타하트 ???"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타하트 ???"는 무언가에 대해 상응하는 '보충'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특히 Daube, Lex Talionis, 115이하, 그리고 Doron, New Look, 23이하를 참고하라). '셋'은 '아벨'을 대신하는 '보충'하는 아들로 태어난다 (창 4,25). 이 유형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열왕기서에서 두 가지 형태로 사용되어 나타난다. 보초가 포로들을 지키는 것인데, 포로들을 감시하는 것은 곧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왕하 10,24; 왕상 20,39). 또 한 경우는, "너는 은 한 달란트를 지불해야한다" (왕상 20,39)이다.
계약법전엔 분명 돈으로 형벌을 대신 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이는 바로 빚을 진 목숨으로 하여금 잃어버린 목숨을 대신하는 '보충'에 대한 것이다. 아울러 이는 사형에 처할 수 도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210) 자신의 부인이나 딸을 죽였을 경우가 사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성서의 법은 이와 같은 것이 아니다.
본문 24절은 후대 보충이다. 계약법전안에 들어 있는 탈리온법의 "네페쉬 타하트 네페쉬"는 모든 사고의 경우 우연에 의한 것이다. 돈으로 보상할지에 대한 선택은 26절과 27절에 나오는 노예법에 관한 경우다. 노예의 눈이나 이가 상해를 입었을 경우, 결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해당되지 않는다 (22-25절까지 문학적 통일성이 있는 한 단원으로 보는 이는 Westbrook인데, 특히 그는 여기서 문제는 '아손 ????'을 행한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경우를 다루는 것이라고 본다. 이 경우 23절에 있는 "너"는 공동체를 의미하고 이 공동체가 그 피해를 입은 자에게 그에 해당하는 것을 갚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24절 이하 신체상해에 관한 모든 규정들에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또한 지금까지의 주석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