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기독교의 박해
어쨌든 네로는 이러한 방화책임에서 빠져 나가기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당시 국가적인 재앙의 원인은 신들의 저주로 돌리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는데 네로는 그와 같은 소문들을 가라앉히기위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던 [크리스쳔] 들에게 그 혐의를 뒤집어 씌워 그들을 마구잡이로 처형하였다. 어떤이는 십자가에, 어떤이는 불에 태워서, 또 어떤이에게는 들짐승의 가죽을 씌워 개에게 찢겨 죽게까지 하였다. 전통에 의하면 베드로와 바울의 로마에서의 순교는 그 여파에 의한 것이었다. 팔레틴에서의 유대인 대반란은 66년에 발생했고, 베스파시안이 반란 제압의 책임자가 되었다. 네로의 헬라 물건들 애호, 체육과 예술 대회에서의 아마추어적인 참여에 대한 나쁜 평판은 그가 제정한 포악한 정치에 대한 반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D.네로의 최후
결국 서부의 군단들 중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로마의 친위대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네로는 로마에서 도주해서 31세의 나이에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과 함께 줄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막을 내렸다. 아우구스투스로부터 네로까지의 모든 황제들은 줄리우스와 클라우디우스 원로원 족벌에 어떤식으로든 관련되어 있었고 같은 지위의 다른 족벌은 꾸준히 제거되어 나갔다. 네로의 사망 후에 야기된 혼란은 68-69년에 내란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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