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열심당(혁명당원들)
열심당(Zealots)의 기원은 멀리 마카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바리새파가 하시딤의 후계자라면 열심당은 마카비왕조의 정신적인 후계자라고 볼 수 있다. 즉 유대인 중에는 투쟁적인 민족주의 노선에서 유대교의 활로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카비 전쟁의 중추적 역활을 했고 종교의 자유뿐 아니라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였다. 그후 A.D.6년에 유대인 통치자 아르케라우스(Archelaus)가 해임되고 로마인 스스로가 유대땅을 지배하게 되었을때 애국적 민족주의자들은 여기에 분개하였고 다시 민족주의 감정은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신약시대에 들어와 소위 열심당이 나타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과격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이 혁명당원들은 모든 교회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후 바리새파 사람들의 이해와 일치하였으나 “그들은 아주 끈기있게 자유에 매달려 있으며 하나님만을 그들이 주와 왕으로 인정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황제를 주로 인정하고 세금을 납부한 사람은 첫째 계명을 범하는 것이 되었다.
혁명당원들은 로마 황제의 지배에 복종하고 그를 퀴리오스(主)라고 부르기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미래의 메시아적인 전환기를 참고 기다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서 역사의 진행을 결정하려교 하였다. 그들의 창시자인 갈리의 유다는 기원후 1세기 초에 그의 지휘하에 백성의 큰 무리를 선동하였다.(행 5:37) 유다처럼 다른 메시아적 예언자들이 등장하여(행 5:36, 21:38)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 기적적인 종말의 시작을 체험하기 위하여 광야로 나아갔다. 친 로마적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열심당을 산적,강도나 그와 비슷한 무리들로 간주했으나 그들은 그들대로의 깊은 종교적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로마의 통치에 항거한 근본 동기는 토라에 대한 그들의 열심때문 이었다. 그들은 토라를 위하여 싸울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강력한 로마군에 대항하여 정규적인 전투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로마군이 접근하기 힘든 산악지대에 은신하여 점령군을 기습하였고, 그래서 로마인들에게는 그들이 도둑이나 노상강도들로 보였다. 로마인들은 그들에 대해서 아주 냉혹하고 격렬하게 공격했지만 추종자들은 더욱 늘어났으며 이는 이들이 율법에 대한 정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심당원들은 이방인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들은 유대 전쟁의 추진력이 되었다.
예수의 제자 가운데도 열심당원이었던 시몬이 있었으나 예수의 의도나 활동은 그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예수는 정치적 메시아는 아니었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폭력은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열심당은 과격한 행동도 서슴치 않아 악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살해하는 과격단체로서 마지막 저항 집단들의 전멸과 함께 혁명당은 비참한 종말을 초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