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아이를 입영시키는 날
권갑숙권사
2014.05.26 이른아침.
낡은 아디다스 백팩에 일주일 분량의 속옷과 훈련에 필요한 물품을 담았다. 팬티 세 장과 반팔 티셔츠 세장 ,그리고 몇 개의 대일밴드와 후시딘연고, 그리고 현금 2만원.......
마지막으로 깨알같이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과 2년 동안의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허전함도 압축해서 담았다. 진주 공군훈련소로 떠나는 날 아침, 긴장감이 극에 달했는지 우겸이는 화장실을 여러번 들락거렸다. 그리고는 짧게 자른 머리가 어색한지 자꾸 손으로 빗어 넘긴다.
아침부터 우린 서둘러 진주로 출발했다.
4년 전 봄날, 큰 아이를 논산 훈련소로 데려다주는 날도 이른 새벽에 출발했었다. 그 해 봄날도 이렇게 짦았다. 두 시간 가까이 달리는 차 안에서도 참새처럼 종알거리던 평소와는 달리 휴대폰만 만지작거릴 뿐 뒷 좌석에는 낮은 침묵만이 대신 앉아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우리는 점심을 먹으려고 진주시내로 차를 돌렸다.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게 없고 넘어 갈것 같지 않다는 아이 말이 내내 가슴 아리게 했다. 평상시에는 식당 간판만 봐도 그냥 지나치질 못 하고 맛있겠다며 입맛 다시는 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던 고기도, 중국요리도 다 싫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제일 잘 넘어가는 냉면을 먹기로 하고 냉면집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머리를 깎은 청년들과 가족들이 보였다. 얼굴마다 마른버짐처럼 피어있는 긴장감이 그대로 내 눈에 포착되었다.
.
오월의 끝자락은 엄청 더웠다.
오월의 신록 사이로 부는 푸른바람들은 벌써 휴가를 갔는지 한 줄기도 보이질 않고 훈련원 마당에는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따가운 햇살만 일직선으로 내리꽂으며 사열을 하고 있었다. 배급해 주는 종이모자를 쓰고 사람물결로 이루어진 운동장으로 갔다. 입영하는 군인보다 서너 배가 많은 식구들,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자식들을 떠나보내듯 현장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한 곳에서는 자기아이의 소속을 확인하고 한 곳에서는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적어서 종이비행기를 접느라 소란스러웠다. 매번 하는 말이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말을 서두로 꺼내며 사랑한다는 상투적인 말을 마지막으로 적어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입영식이 끝나고 운동장으로 날리면 그것을 주워 아이들에게 전달해 준다는 것이다. 역시 공군다운 발상이다. 두 번째 경험하는 것이라 좀 더 담담할거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이 헤어짐의 슬픔이 슬펐다.
입영식 식전 행사가 간단히 시작되고 드디어 가족과의 마지막 이별의 시간이 왔다. 애써 웃음을 보이고 잘 다녀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넓은 운동장으로 우르르 뛰어나가는 아이들...... 눈 깜짝 할사이 운동장은 그 넓은 입을 벌려 스무 살대의 푸르름을 모조리 먹어 치워버렸다. 마치 블랙홀처럼. 저 푸른 기백을 2년 동안이나 자르고 억누르고 굽혀서 만든 분재처럼 만들다니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게 한 것이 잠시나마 억울함이 스쳤다.
한꺼번에 수 백 명이 집합하다보니 도대체 어디에 줄을 섰는지 보이질 않았고 찾을 수도 없었다. 몇 가지 의식을 치르고 난 뒤 마지막으로 가족들 앞에서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아들어갔다. 가족들은 마치 전쟁터로 가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듯 발 뒷꿈치를 치켜들고 아들을 찾기에 기를 썼다. 나 역시 사람들로 이루어진 벽을 뚫고 맨 끝 줄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아들을 찾았다. 방금 함께 있다 보내놓고도 몇 년을 못 본 듯이 아들을 찾는 내 열정은 과연 대한민국의 엄마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대단했다. 한번이라도 아들모습 더 보려고 마치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처럼 끝까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아빠들은 옷자락을 당겼다. 주차장에서 빨리 빠져 나가려면 지금 가야한다고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수 백대의 차가 빠져 나가려면 빨리 움직여야 한다면서 손을 잡아 이끌었다. 운동장 한 바퀴 돌고 어딘가의 건물로 들어가는데 마치 한 마리 긴 뱀이 미끄러지듯 찾을 수 없는 구멍으로 들어가는것 같았다. 마지막 꼬리까지 감추는것을 보고 돌아서는데 젖은 물기를 감추느라 꾹꾹 눌러야만했다.
돌아 오는 길엔 아침안개가 흔적없이 걷혀 햇살은 작열하듯 뜨거웠고 하늘은 푸르다못해 시렸다. 돌아오는 내내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뒷 자석에 묻은 아들의 흔적을 자꾸 쓰다듬었다. 갑자기 얼마전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너무 그리웠다. 오빠 셋을 입영시켰던 친정 엄마의 저렸던 마음이 느껴져왔다. 처음 큰 아들을 보내고는 잠을 못 잤고 첫 휴가 나올 때는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고 했는데 이제 그 옛날 엄마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았으리라. 일주일쯤 후면 입고 갔던 옷과 신발이 소포로 돌아 올 때면 마치 아들이 온 것처럼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고 했는데 나 역시 여늬 엄마들처럼 그러겠지. 저녁 해가 뉘엿거릴 때쯤이면 버릇처럼 쓸쓸해지겠지. 그렇게 기다림의 미학으로 아들을 그리워하겠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본다. 국가의 의무를 할 수 있도록 건강한 아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이렇게 군 입대란 이별 앞에 자식과 헤어지는 슬픔을 맛 볼 수 있어서 감사하고, 다시 씩씩한 아들이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대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마음을 바꿨다.
오늘부터 6주 후면 다시 만날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하나님께서 그 고된 훈련도 다 이겨내게 하리라. 분명 눈동자같이 지켜 주리라 믿으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믿고 대한민국을 믿어보기로 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강문수 작성시간 14.07.09 자녀에 대한 내리사랑!^^ 부모님을 신발끈 풀기에도 못미치는 나약함 부모님앞에서는 말입니다...
아들 군대 잘 갔다와라!^^ 건강하고 -
작성자하얀독수리(박정식) 작성시간 14.07.10 지금쯤은 둘째 아들이 휴가를 다녀갔을텐데 그때의 상황이 리얼 하게 잘 묘사되고
아버지와는 좀 다른 어머니의 애잔한 사랑이 뭉클 느껴집니다.
권 권사님, 주신 재능을 잘살려 많은 글로 유익하게 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샬롬!! -
작성자못골미디어 작성시간 14.08.04 가슴시린 사연을 구구절절이 졸려주신 우리 회장님 사모님!
그래도 우짜겠심니꺼,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