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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교회사 여행/ 제7장 로마제국의 멸망과 교회의 분열

작성자파비|작성시간20.03.05|조회수367 목록 댓글 2

7장 로마제국의 멸망과 교회의 분열



(십자군 전쟁)

  

로마는 5세기 초반 훈족에 쫓겨 남하한 게르만족에 점령당했다.

로마황제는 게르만족 왕에 의해 476년 폐위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이 왔다고 믿었고, 이교도들은 옛 종교의 신들이 형벌을 내렸다고 믿었다.

점령한 게르만에게도 세상을 다스려야할 제도와 종교가 필요했고 교회의 조직을 새로운 제국의 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 황제와 주교의 관계가 신앙보다는 세속적 이해관계로 연결되었다.

로마의 멸망과 더불어 교회의 주도권을 놓고 로마교회(서로마)와 동방교회(동로마)도 경쟁관계에 빠진다.

 

한편으론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일어난 무슬림의 바람이 북상했다.

7세기 등장한 알라를 믿는 이슬람 세력은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 알렉산드리아, 페르시아, 카르타고를 거쳐 스페인까지 점령했고 게르만족의 중심부인 프랑크왕국까지 몰려갔다. 예루살렘을 잃어버린 동로마 교구는 성지회복을 위해 로마교회에 지원병력을 요청했다.

 

11세기 로마교회는 성지 회복의 기치를 내걸고 십자군을 조직했다.

십자군전쟁은 이후 약 200년에 걸쳐 유럽전역에서 감행됐다. 처음엔 동방교회의 요청에 지원군을 보낸다는 이유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로마교회는 전쟁의 주도자로 등장했고 전쟁의 당초 목적은 변질되었다. 십자군은 이슬람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명분과는 달리 유태인을 학살했고, 심지어 동방교회 기독교인들을 이단으로 몰아 죽이기도 했다.

마침내 "이슬람보다 더 악랄한 놈들"이라며 십자군을 증오하는 소리가 나타났다.

십자군전쟁은 결국 기독교 권위의 쇠퇴와 동서교회의 결별을 초래했다.

 

천년을 결별했던 동서교회의 화해 노력1965년 바오로6세 교황과 정교회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간 과거의 사실들에 공동유감을 표시하고 성령의 역사로 서로 이해하고 극복해 나가자는 공동선언문을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1054년 서로 상대측 주교를 파문까지 했던 교회사의 깊은 골을 벗어나자는 화해의 시작이었다.   

200035 교황청<회상과 화해/교회의 과거범죄>라는 문건에서 십자군을 "교회가 저지른 범죄"라고 공식 인정했다. 2001년 요한바오로2세 교황은 그리스를 방문하여 십자군의 침략과 약탈과 학살 등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5세기에서 11세기를 교회 역사의 어두운 시기로 보기도 한다.

이 시기 교회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사랑의 하느님보다는 형식과 세속주의에 빠졌다. 한편 그리스도교는 게르만족, 슬라브족, 노르만족 등에 전파 되었고 동방교회의 여세는 러시아까지 확장 되었다.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희미한 불빛이 더 넓게 퍼진 현상도 있었다.

 

이 시대엔 주교나 사제의 임명권을 행사한 왕들이 종교적인 자질보다는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로 임명했기에 주교나 교황들 중에도 비윤리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성직을 사고팔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마을 단위의 작은 교회가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복음화에 앞장선 수도자들에 의해 교리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전례예식이 지나치게 구약의 정신으로 빠져 예식주의와 규정주의로 편향되기도 했다. 사제는 신자들에게 등을 보이며 미사를 거행했고 로마 미사경본을 낮은 소리로 읊어 라틴어를 모르는 신자들에게 미사는 신비롭고 거룩한 공연처럼 느껴졌다.

 

빛이 다하면 어둠이, 어둠이 다하면 빛이 오는가, 세상의 변화 가운데 빛도 어둠도 한결같을 수는 없었다. 빛과 어둠의 조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이 있는 걸까.

 

(2020.3.5.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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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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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황율리 | 작성시간 20.03.05 평소에 어렵게만 느껴지던 교회사를 이리 간추려 주시니 그리 어렵지않게 교회사가 이해됩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파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3.05 곱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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