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내린 카카오 택시, '상생'은 허울 좋은 엑시트(Exit) 전략
13억 지원에 간접비 22억…‘무늬만 상생’ 뒤에 숨은 거대 플랫폼의 꼬리 자르기
T블루 지우고 신사업 띄우기…리스크는 떠넘기고 과실만 챙기는 얄팍한 쇄신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구글 제미나이(Gemini) 나노바나나(Nano Banana))
| 내외경제TV=정창규 편집국장 | 거리의 풍경을 바꾸었던 카카오프렌즈 래핑 택시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자사의 1세대 가맹택시 서비스인 '카카오 T블루'를 순차적으로 종료하고, 수수료를 대폭 낮춘 '네모택시'로의 전면 전환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사측은 이를 두고 택시업계와의 '상생'을 위한 중대한 결단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겹겹이 쌓인 논란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는 상생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꼬리 자르기'이자, 신사업으로의 무게중심 이동을 위한 전략적 엑시트(Exit)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 책임은 덜어내고 혁신만 취하려는 계산된 셈법
카카오 T블루는 지난 몇 년간 카카오모빌리티의 외형 성장을 견인한 핵심 동력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20% 선취 수수료라는 기형적 구조로 '매출 부풀리기' 논란을 야기했고, 자사 가맹택시에 콜을 몰아주었다는 의혹으로 금융당국의 중징계와 검찰 수사까지 초래한 진원지이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T블루를 포기하고 실질 수수료 2.8%의 네모택시로 전환하는 것을 순수한 반성의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치명적인 사법 리스크와 운영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에 가깝다. 네모택시 체제에서는 지역 가맹본부가 직접 운영을 맡는다. 중앙집중형 가맹 사업이 안고 있던 현장의 각종 갈등과 관리 책임은 지역 사업자에게 이양하고, 플랫폼은 배차 솔루션 제공이라는 본연의 가벼운 역할로 한 걸음 물러서는 구조다.
그 빈자리는 자율주행과 로봇 플랫폼 등 이른바 '피지컬 AI'라는 미래지향적 신사업이 채우고 있다. 2대 주주인 TPG의 투자금 회수 압박이 가중되는 시점에서, 법적 리스크가 크고 수익성이 악화된 기존 택시 사업은 '상생'이라는 적절한 명분 아래 축소하고, 기업 가치를 견인할 신성장 동력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셈법이다.
◆ 종사자 몫은 16%… '상생'의 본질 잃은 재단의 현주소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자체는 기업의 고유한 권한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과오를 씻기 위해 사측이 내놓은 진정한 의미의 '상생'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카카오가 500억 원 조성을 약속하며 야심 차게 출범한 '카카오모빌리티상생재단'의 첫해 성적표를 보면 그 진정성에 깊은 의문이 남는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구글 제미나이(Gemini) 나노바나나(Nano Banana))
재단이 첫해 출연한 80억 원 중, 일선 택시기사들의 의료비와 생활 지원 등 실질적인 수혜로 이어진 금액은 13억 2,000만 원으로 전체의 16.5%에 불과했다. 반면, 사업 수행 명목으로 지출된 간접 비용은 기사들에게 돌아간 몫의 두 배에 가까운 22억 원에 달했다.
재단의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욱 씁쓸하다. 상근 직원 하나 없이 외부 용역과 위탁에 의존하다 보니 용역비, 행사비, 캠페인비 명목으로 막대한 예산이 소진되었다. 모빌리티 상생을 연구하겠다며 글로벌 컨설팅사에 1억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했지만 그 결과물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심지어 모기업인 카카오모빌리티에 재단 사무실 임차료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지급하는 촌극마저 벌어졌다. 이 재단이 과연 현장 종사자를 위한 상생의 구심점인지, 기업의 ESG 홍보를 위한 외주 창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 간판을 내린다고 시장의 불신까지 지워지진 않아
카카오모빌리티의 최근 행보는 매우 명확한 궤적을 그린다. 택시 생태계를 기반으로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했지만, 그에 수반되는 사회적 갈등과 책임이 임계점에 달하자 '상생'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우아한 퇴장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계의 최전선에서 땀 흘리는 기사들에게는 면피성 지원을 남긴 채, 기업은 더 가볍고 높은 미래 산업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다.
상생은 기업의 평판 관리를 위한 일회성 마케팅 수단이 아니다. 현장에서 운전대를 잡고 생계를 잇는 종사자들이 실질적인 온기를 체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상생을 위장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진정한 미래 모빌리티 혁신 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한다면, 껍데기뿐인 재단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성장을 지탱해 준 생태계에 대해 막중하고 실천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
택시에 씌워진 화려한 캐릭터 래핑은 스티커를 떼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시장과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책임 회피'의 꼬리표는 단순히 간판을 바꿔 단다고 해서 결코 쉽게 떼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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